브이넥 톱은 피어리스니스, 팬츠는 에드,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4개 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올해의 음악인’상이 의미가 깊을 것 같은데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앨범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각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완성하는 결과물임을 알게 됐어요. 비트를 찍는 사람이 있으면, 그 비트를 받아 멜로디를 입히는 사람이 있고요. 곡을 듣고 비주얼을 상상하고, 뮤직비디오로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기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팀플레이가 완벽했기에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고, 이 행운을 누려서 즐거웠어요.

<뽕>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앨범이 아니라 소리를 찾아 발로 뛰며 만든 앨범이에요. ‘뽕’을 찾는 여정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혼자 리믹스 작업을 할 때는 비슷한 작업의 연속이었어요. 앨범 주제를 ‘뽕’으로 정한 다음에는 ‘뽕’이 느껴지는 소리를 찾아다녔어요. 인터넷에 공유된 소리가 아닌 저만의 소리를 갖고 싶었거든요. 집 밖에서 찾아내 제 손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소리요. 누구에게도 없는 사운드 소스를 가진다는 건 대단히 큰 작업 동기예요. 방에서 미디를 찍고, 모니터를 보면서 마우스로 음악을 완성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즐거움이죠. 세상에 하나뿐인 신발을 소장한 것과 같은 기분이에요. 

 

 

폴로 셔츠는 코스, 팬츠와 슈즈,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만의 소리’가 작업을 시작하게 하는 동력이라는 뜻이죠?
네. 알고 있던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을 요즘 스타일로 할 수도, 아니면 생각지 못한 스타일로 전할 수도 있어요. 큰 틀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소리를 들었을 때, 창작자의 의도가 뭔지가 느껴져야 해요. 소리만큼 전달력이 빠른 건 없거든요. 자신의 의도에 맞는 소리를 찾거나 만들 수 있다면 다음 과정은 쉬워요. 듣기 좋은 팝 음악처럼 듣기 쉬운 음악을 만들어 내놓으면 되니까요.

청취자로서는 소리가 조합된 음악을 듣는 건지, 일상의 소리에서 의미를 찾는 건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건 소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맞아요. 자동차 경적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잖아요. 아주 작게라도 클랙슨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면 스트레스가 될 거예요. 왜냐하면 ‘빵’ 하는 소리에 놀란 경험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죠. 감정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가 되는 소리가 있어요. 코드 진행일 수도 있고, 코드 진행을 만들어내는 악기 소리일 수도 있어요. 이박사님의 음악을 예로 들면, 2000년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 이박사님이 악기를 바꾸면서 음향이 변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때의 이박사님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1990년대 김수일 선생님이 악기 하나로 만든 소리를 선호했어요. 제가 힙합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예전 힙합은 샘플 사운드 기반이었고, 동시에 연주하는 게 아닌 드럼이나 피아노, 베이스 같은 사운드를 각각 따로 추가하는 방식이었어요. 각각의 사운드 요소가 분리된 음악을 좋아한 습관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뽕’에는 사람을 뭉클하고 짠하게 하는 소리가 있어요. 타이틀곡 ‘로얄 블루’에 나오는 오케스트라는 제가 과거에 많이 듣던 가요에 나온 소리예요. 옛날에 들은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해요. 제 나이 정도 되면 어릴 적 자주 접하던 명랑 만화를 봐도 아련하고 슬픈 마음이 들어요. 그 만화를 보던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뽕> 작업을 하면서 사운드는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중심으로 접근했어요. 그래서 오승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필요했고요.

 

‘뽕’에는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뽕에서 이런 특성이 나타난 배경은 뭔가요?
예전에 보던 만화는 주인공들의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둘리, 까치, 하니 모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에요.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짙게 깔려 있죠.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실향민이 많았고, 부모를 잃은 전후 세대의 정서가 대중문화 기저에 깔려 있었죠.

 

 

 

 

상실과 이별의 정서가 1980년대생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거죠? 
네, 명랑 만화지만 주인공은 명랑하지 못한 환경에 놓여 있어요. 야구 만화지만 주인공은 부모가 없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슬픈 캐릭터예요. 아무리 즐거운 에피소드라도 마지막에 주인공이 혼자 집에 돌아오면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당시 대중문화 정서가 슬픔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서울의 달>, <엄마의 바다> 같은 인기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우는 장면이었어요. 대중이 콘텐츠에서 원한 것은 눈물을 쏙 빼는 거였죠. 최루탄 영화라고, 관객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도 유행했고요. 한국인이 만든 콘텐츠는 슬픔을 담는 게 주된 방식이었기에 아이들이 보는 만화조차 그 정서를 공유한 것 같아요.  

오늘날 콘텐츠는 대리 만족, 현실 도피, 고발성이 많은 반면, 과거의 콘텐츠는 대중의 서러움에 공감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할 수 있네요. 부모님 세대는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요?
한국 사회는 변화가 빨라요. 급하게 개발하고, 빠르게 사라져요. 산업화 시대를 보낸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의 개념이 옅어요. 고향이라고 해도 재개발되어 예전의 모습이 아니고요. 급속한 발전에 가려진 상실감이 우리 정서에 스며든 것 같아요. 일본처럼 역사 깊은 가게나 거리가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조금만 오래되어도 새로 개발하니까요. 부모님 세대는 돌아갈 곳을 잃은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그 상실감에는 꿈과 자아도 포함되겠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설움도 분명 있을 테고요. 
대가족 틈에서 자랐지만,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오면서 부모와 떨어지잖아요. 지금은 독립하는 게 낯설지 않은데, 당시에는 의미가 달랐을 거예요. 독립보다는 이별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러니 타지에서 자식이 밥은 잘 먹는지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있을 테고, ‘저는 잘 있습니다’라는 부모님 전상서의 감성도 있겠고요. 서러움을 느낄 이유는 충분했어요. 그리고 대중매체는 그 감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선보인 것 같아요. 

뽕의 출현도 산업화 시대의 산물로 봐야 할까요? 
‘뽕짝’ 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이박사가 시초라고 생각해요. 19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즈음이죠. 

 

 

티셔츠는 자라, 재킷은 트렁크프로젝트, 데님 팬츠는 세터,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박사님이 나온 MBC <인간시대>를 보면 배경이 1990년대 초반이었어요. 
두 편인데, 1980년대 초반 이박사님 데뷔 초기에 찍은 오래된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국내 관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인데, 아주머님들이 관광버스를 빌려서 전국 일주를 떠나요. 관광버스에는 이박사님 혼자만 남자예요. 일종의 놀이꾼이죠. 아주머님들은 난생처음 전국 여행이라는 일탈을 하고, 이박사님은 아주머님들의 흥을 돋우는데, 그 아주머님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노래는 아무래도 슬플 수밖에 없겠죠.

어떻게 신나면서도 슬픈,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 음악을 만들었을까요? 
지금은 트로트도 뽕짝이고, 뭐도 뽕짝이라지만 그 모든 영역을 포괄해 아이콘이 된 사람은 이박사님이에요.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으니까요. 음악사 전체로 봐도 이박사님처럼 한 사람이 장르를 창시하고, 사운드로 규정하고, 완성한 경우는 없을 거예요.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삶이 묻어나요. <뽕>에선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련함이 계속 이어져요. 앨범을 듣고 나서 우리는 왜 과거를 파고들려고 하는지 궁금해졌어요. 
너무 많은 것이 디지털화됐어요. 손으로 만지는 것이 줄어들었죠. 소중한 것을 손으로 매만지던 시기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모든 걸 손으로 만들던 시대에는 투박함이 있고, 그 투박함이 편안함을 주기도 해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만든 걸 보면서 소중하게 여긴 뭔가가 줄어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는데, 예전 것을 보면 투박해서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CG를 이용해 의도가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요즘 영화나 애니메이션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더 많이 들어간 것에 감정이입이 잘되는 것 같아요. 

250님은 어떤 소년이었나요? 
혼자 집 밖을 돌아다니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매일 다니던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굉장한 모험이잖아요. 그래서 옆 동네에도 자주 간 것 같고, 걷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걸으면서 어떤 생각에 빠지는 아이였어요. 

 

 

셔츠는 코스, 니트는 H&M, 팬츠는 세터.

 

홀로 걸으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기는 습관은 지금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 
그때를 흉내 내는 것 같아요. 공상을 많이 했거든요. 만화를 보고 나서 산책하며, 다시 만화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때는 재방송도 없으니, 다시 볼 수 없잖아요. <피구왕 통키>를 보고 걸으면서 다음 화는 이런 내용일 거야라고 상상하는 거죠. 

<피구왕 통키>에도 슬픔의 정서가 있죠. 당시 문화 콘텐츠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하다못해 통키도 아버지가 없어요. 그 이전에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가 있었죠. TV에서 방송할 수 있는 콘텐츠 중 이산가족 상봉보다 더 슬픈 건 없었어요. 당시 콘텐츠가 가진 슬픔의 깊이가 지금보다 훨씬 깊었죠.

그 슬픔의 정서가 지금도 대중문화 콘텐츠에 남아 있다고 보나요? 
요즘은 덜한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가벼워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슬픈 발라드도 자취를 감췄고요. 예전 음악 방송에서는 댄스 가수가 춤추고 들어간 다음에 슬픈 노래를 부르고, 그다음에는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가 나왔는데, 요즘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가벼운 게 아닌가 싶고요. 슬픔의 정서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달리 보면 세대 간에는 갈등이 있으니, 이전 세대가 선호한 것이 교체되는 시기로 볼 수도 있겠죠. 

나운도 선생님과 작업한 ‘춤을 추어요’는 참 좋은 곡인데, <뽕>에는 없더군요. 앨범에 담지 못해 아쉬운 트랙이 더 있나요? 
없습니다. ‘춤을 추어요’는 저도 좋아하고 잘 만들어진 곡이에요. 앨범과 별개로 있을 때 더 멋있어요. ‘춤을 추어요’가 7분짜리 곡이기에 앨범에는 마무리 곡으로 넣어야 하는데, ‘휘날레’ 이후에 마무리 곡이 한 번 더 나오는 건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로 존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위) 관광버스 뽕 음악을 재현한 싱글 <뱅버스> (아래 왼쪽부터) 거장 이정식과 함께한 ‘로얄 블루’ 뮤직비디오, 앨범 <뽕> 커버 이미지.

 

 

오승원 선생님이 부른 ‘휘날레’는 1980년대생의 노스탤지어를 완성하는 곡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선생님과의 작업은 원래 계획에 있었나요? 
한동안 안면도에 칩거한 적이 있는데요. 별로 할 게 없다 보니 밤에 유튜브 보는 게 큰 낙이었어요. 그러다 2013년이었나, 오승원 선생님이 한 공연에서 노래하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놀랐어요. 선생님이 <아기공룡 둘리> 주제곡의 첫 소절을 부를 때 관객도 저처럼 반응하더군요. 순식간에 울적해지고 반갑고, 제가 뭘 느끼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어요. 어린 시절의 그 시간은 세상 어딘가에서 변치 않고 존재해왔지만, 저만 달라진 기분이었어요. 댓글에는 그 시절이 ‘그립다’거나, ‘엄마 보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새삼스럽게 소리의 힘을 느꼈어요. “요리 보고” 한마디에 1000여 명이 댓글을 달게 만드는 힘이죠. 

다음 행보도 궁금해요. 
<뽕>을 내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프로듀서의 앨범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등등. 결과가 좋으니 제가 해온 음악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다음 행보는 지금껏 해온 방식대로 음악을 하는 거예요. 

하나의 주제를 깊게 탐구하고, 그 여정을 앨범으로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250의 다음 탐구를 기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는 컴퓨터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제멋대로 음악을 만들어요. 제 작업을 기대한다면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음악을 하지는 않아요. 음악은 제가 좋아해야 하고, 재밌어야 해요. 제가 얼마나 제멋대로 음악을 할지 기대해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페스티벌의 계절이 왔어요. 250의 공연을 기대해도 되겠죠? 
그럼요, 지금 일본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5월 페스티벌과 7월 공연도 준비하고 있고요. 4월은 공연 준비로 일정을 꽉 채워볼 생각입니다.   

 

HAIR & MAKEUP 스텔라 심 STYlist 박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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