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그리는 작가는 많다.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스타일과 철학을 갖고 있는가, 무엇보다 지속적인가,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면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을 라이징 아티스트로 꼽은 이유다.
2023.01.11
NFT라는 새로운 매체가 동시대 미술의 지형도를 바꾸는 지금. 디지털 페인터 람한은 중심에 서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그가 국내 아트신에 등장한 것은 2017년. 그를 알아본 것은 갤러리도 평론가도 아닌, 흐름을 좇는 가장 힘있는 집단 ‘대중’이었다. 모바일 기기의 디스플레이어를 통해, SNS를 통해, 람한은 인기라는 동력을 얻었다. 자신의 작업을 ‘AI와의 협업 롤플레잉’이라고 언급했듯, 인공지능 기반의 이미지 생성 플랫폼을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를 재창조한다. 화려한 색상의 끈적이고 반짝이는 괴생명체. 산란하듯 폭발하는 그의 화면은 생생한 촉감마저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디지털 세대의 기억과 감성을 함께 걷는 람한에게 대중은 뜨겁게 화답 중이다. VR, 3D 조각까지, 그 확장성도 다채롭다.

식물,너무 빤한 소재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소하고 특별할 것 없는것 들을 생경하고 낯설게 하기, 그것 또한 회화의 오랜 특기가 아닌가. 다양한 빵의 모양을 그린 연작 ‘Baked Shapes’, 여름밤의 풍경과 밤에 그려본 얼굴을 모은 ‘밤-긋기 Night Moves’, 그리고 식물 그림 ‘푀이유(Feuilles)’까지. 엄유정은 매우 성실하고 예민한 관찰자의 자세로 일상의 그것들을 관찰하고 자신만의 감성과 이야기로 풀어낸다. 덤불에서 찾아낸 선과 그 선을 감싼 (적어도) 두 개의 색.... 작가는 최소한의 형태와 색으로 식물의 힘(본질)을 드러내며,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 회화의 본질 앞에 다가서는 중이다. 소문난 미술 애호가 BTS의 RM이 엄유정의 전시장을 찾은 이유일 것이다. 엄유정은 그저 매일의 삶과 풍경을 ‘꾸준하게’ 그릴 뿐이다.

한국 컬렉터를 움직이는 장르는 회화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힘 있는 장르는 영상과 설치가 아닐까. 현대사회의 이면을 리서치하고 비디오와 설치로 선보이는 무니페리. 실체를 교묘히 감춘 무니페리라는 이름도,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계 없는 족적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불온 한 존재로 낙인찍힌 빈랑시스(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빈랑 열매를 판매하는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빈랑은 각성과 환각 효과가 있다)를 담아낸 ‘빈랑시스’, 반려동물 복제에 관한 논의에서 대리모 산업까지 연결시킨 ‘실종: 유령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무니페리의 리서치 위드 미, 실종: 유령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까지. 페미니즘, 비거니즘이라는 묵직한 담론을 흥미롭게 포착한다.

‘꽈당’, ‘상한 계란’ 등 일상적이고 유쾌한 제목과 달리 박다솜의 화면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전형적인 사각의 캔버스 대신 울퉁불퉁하게 변형된 프레임, 비정형적인 화면의 틀안에 보이는 녹아내리는 듯한 곡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덩어리, 그리고 미묘한 색채. 올 초 열린 <몸의 기술 The Art of Matter> 전시는 불가항력적으로 변형이 일어나는 ‘몸’에 관한 관심에서 시 작되었다. 사람의 몸도, 사물도, 곤충도, 다가오는 변형의 순간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어떤 변형과 왜곡의 죗값을 치르지 않는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내가 믿었던것들이 즐겁게 무너지는 상상을 해본다.” 변형과 왜곡이라는 삶의 보편적 두려움 앞에서, 즐겁게 무너질 준비를 하는 작가의 유연한 탄성과 방법론. 이내 두려움도 슬쩍 자취를 감춘다.

알 수 없는 패턴이 지배적인 화면 사이로 노란 수선화가 초연하게 들어앉은 풍경. 우정수가 이 작품 앞에 붙인 제목은 ‘Narcissus’, 신화 속 그 이름 ‘나르키소스’다. 다양한 시대의 삽화와 신화, 서사극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단편을 해체하고 재편집해 자신만의 화면을 구성해온 우정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페인터에게 포착된 신화와 삽화라는 단어는 더욱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온다. 전통적 관념의 상-하위 문화를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고 이를 재사유하는 젊은 페인터의 하이브리드적 감수성. 이 지점은 우정수의 회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오마주, 차용, 전복이 수없이 반복되는 화면과 이를 뒷받침하는 밀도 있는 레이어와 자유롭고 과감한표현. 더욱 깊어진 작가의 사유를 목도하는 순간이다.

보통의 작가라면 아마 색면 추상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오랜 역사 위에, 소위 거장으로 통하는 쟁쟁한 작가들이 그려놓은 족적이 너무 깊게 각인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과 ‘회화’라는 전통적인 관념과 매체에 관심을 쏟는 이 작가의 기개는 더욱 호기심을 끈다. 배혜윰이 아니라 ‘배헤윰’인 독특한 이름도. 그의 화면은 색종이가 찢기고 접힌 듯한 형태다. 그가 천착하는 것은 추상적도 상간의 관계와 연속성, 암묵적 소통, 그리고 인간의 사유로 대변되는 사고와 감각의 힘겨루기를 통해 일어나는 ‘운동성’에 관한 집요한 실험이다. 그 때문일까. 그의 화면에는 원색에 가까운 여러 색이 존재하지만, 결코 부딪치거나 거슬리지 않고 유기적이고 힘 있게 흐른다. 회화에 관한 날 선 질문을 품은 채.

GPS, 3D, VR, 딥페이크 등의 기술을 통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김희천. 영상 작업에 관한 관심이 덜한 이라도, 그의 작업이라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1989년생의 젊은 작가지만 상당한 전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될 만큼 그는 견고한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생중계 게임 방송, 페이스 스왑 앱 등 오늘날의 대중문화 요소를 차용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풍자적으로 비튼 ‘썰매’ (2016), 운동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사용하는 ‘감각 차단 탱크’인 부유 탱크를 끌어들인 ‘탱크’(2019), VR을 이용한 ‘사랑과 영혼’(2021) 등. 기술에 의해 세계가 어떻게 작동되며, 우리가 그 세계를 어떤식으로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사실적이고 동시대적인 화두를 던진다.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에게 ‘빛’은 영원한 탐구 대상이다. 박민하의 빛 탐구는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도시 안에서 이루어진다. 12월 31일까지 휘슬에서 열리는 <Tunnels> 전에서는 ‘터널’이 작업의 개념으로 등장한 다. 작가에게 터널은 과거와 예측된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로, 외부와 단절된 채 오롯이 시간성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터널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각형과 사선의 희미한 형상과 도형, 그리고 헤드라이트와 섬광 등 최소한의 단서만이 이곳이 도시임을 말해줄 뿐. 터널을 통과하는 빛을 기록하듯 작가는 수차례의 붓질로 켜켜이 시간을 쌓고, 은빛 안료로 빛을 더했다. 덕분에 보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광택과 빛을 드러낸다. 그 틈에서 기억, 감각, 순간의 미세한 진동이 읽힌다.

귀엽지만 무표정한 얼굴의 소녀(?)와 고양이와 버섯과 조개껍데기.... 이미주의 화면은 인물과 동식물, 사물이 대소의 구분 없이 평등하게 수납장을 차지한 채다. 직접 줍고 모은 컬렉션을 그리는 이미주. “우리는 매일 수 많은 사물과 스쳐지나가는 수백만 가지의 감정과 장면 중 어떤 것을 고르고, 다듬고 때론 이야기를 덧대어 각자의 고유한 곳에 귀하게 모아둔다. 끊임 없는수집과 선택 배치를 통해 쌓는 무언가는 곧 개인의 역사가 된다.” 값비싼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수집품은 기억과 사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새로운 개인성을 입는다. 이렇듯 이미주는 거대한 세상의 의미보다는 사라져가는 개인성의 가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진열해놓는 것이다. 모든 미술이 거대한 담론을 좇을 필요는 없다는 듯이.


회화는 더는 새로울 것이 없다?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회화는 여전히 새롭다. 김수연, 그는 날씨를 데이터로 채집해 이를 시각화한다. 전작이 식물도감, 춘화 등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입체 물로 구현하고 그것을 정물화 형식으로 담아냈다면 최근작 ‘오늘의 날씨’에서는 바람의 데이터를기록하고,날씨에어울릴법한도구를매일교체해그형태를변주한다.바람의채집방법 은 지진계의 추가 진동을 기록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끈에 붓이나 펜과 같은 회화 도구를 매달아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린 후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긁힌 촉의 궤적을 따라간다. 다양한 ‘오늘’이 기록된 그것들에는 묘한 힘의 변화가 감지된다. 채집의 주제는 확장되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림으로 붙잡고 싶은 작가의 염원은 한결같이 흐른다.
EDITOR : 설미현PHOTO : <더네이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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