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지금 다시, 백남준 - 백남준의 9가지 결정적 순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3월 3일부터 9월 18일까지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가 개최된다. 전시는 백남준의 주요 작품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그의 예술성의 근원인 아방가르드에 접근한다. 백남준의 결정적 순간이 응축된 전시작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와 삶의 변곡점을 짚어보았다.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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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정원’, 1974, CRT TV 모니터, LCD TV 모니터, 살아 있는 식물, 앰프, 비디오 분배기, 스피커, 1-채널 비디오, '글로벌 그루브', 컬러, 유성,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어린 시절 기억이 만든 하나의 세계

‘TV 정원’ & ‘글로브 그루브’

하늘하늘 움직이는 아열대식물의 잎사귀, 그 사이로 보이는 흙바닥에서 솟아난 TV들은 열매 혹은 꽃봉오리인 듯하다. 백남준은 1974년 뉴욕 보니노미술관에서 ‘TV 정원’을 처음 선보였다. 바닥에 놓여 하늘을 바라보는 TV 20대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이후 식물을 추가해 시러큐스의 에버슨미술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전시되고 1977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도 출품됐다. 꽃이자 열매인 이 TV들의 꽃술 혹은 과육은 ‘TV 정원’ 공개 1년 전 선보인 비디오 영상 ‘글로벌 그루브’가 대신한다. TV 속에서는 한국의 부채춤,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인디언 나바호족 여인, 전신 타이츠를 입고 추는 탭댄스 등의 장면이 어떠한 서사나 인과 없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양극단에 위치한 듯한 자연과 테크놀로지는 작품 안에서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양 어우러지고,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이들이 노래와 춤을 매개로 이어진다. 백남준의 대표작인 ‘TV 정원’의 근원은 그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2년 종로 서린동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1949년 홍콩으로 일가족이 이주하기 전까지 대지 3000평에 달하는 창신동의 대저택에서 보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큰 마당은 훗날 작품의 모태가 되어 자연과 기술, 그리고 세계를 잇는다. 

 

TV 정원’에서 흘러나오는 ‘글로벌 그루브’는 우리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 흥(그루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디오를 통해 어떠한 공유지(글로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_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이수영

 

 

 

백남준, ‘TV 부처’, 1974, 석불좌상 1기, CRT TV 모니터 1대, 폐쇄회로 카메라 1대,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을 매료시킨 선불교

‘TV 부처’

백남준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가족과 함께 선불교의 본산인 도쿄 가마쿠라로 이주해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자연스레 선불교를 접했다. 또한 평생의 스승인 존 케이지(John Cage)는 선불교의 대가 스즈키 다이세쓰(D. T. Suzuki)를 통해 선사상에 깊이 심취했다. 그는 스승을 매료시킨 선불교에 관심을 갖고 몇 년 동안 이론적 성찰을 하다 1967년 어느 일본 사원에서 선 수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내면에 축적돼 훗날 그가 ‘TV 부처’, ‘머리를 위한 선’, ‘TV를 위한 선’ 등 선불교적인 사유를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중 ‘TV 부처’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백남준의 대표작이다. 가부좌한 부처 앞에 설치된 TV, 그리고 TV 뒤 비디오 카메라로 담은 부처의 얼굴을 화면을 통해 내보내는 이 작품은 1974년 뉴욕 보니노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인다. 단순한 구조지만 동양의 선과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기계문명과 형이상학적 세계는 과연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비평가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에릭 안데르시,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1980)을 선보이고 있는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에릭 안데르시 아카이브 컬렉션, ©Erik Andersch

 

백남준,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 1980, 엔진이 있는 바이올린 1대, 원격 조종기 1대, 21×59.8×11.8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예술 세계의 근간이 되는 음악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

1940년대, 국내에 딱 두 대밖에 없었다던 캐딜락 중 한 대를 보유했을 만큼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백남준과 그의 형제자매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렸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의 누이가 집에 피아노를 두고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어린 백남준은 그 모습을 눈여겨보았다가 나중에 혼자 쳐보곤 했다. 1947년 백남준이 재학한 경기보통학교(현 경기중학교)의 음악 교사였던 작곡가 이건우는 어린 시절부터 발현된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작곡을 가르쳤다. 이때 현대음악의 아버지 쇤베르크를 알려주는데, 백남준은 그의 음악 세계에 푹 빠진다. 도쿄대학교 졸업 논문도 쇤베르크에 대해 썼을 정도.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로 떠난 백남준은 그곳에서 만난 존 케이지에게 큰 영향을 받아 ‘존 케이지가 무작곡을 했다면, 나는 무음악을 추구하겠다’ 선언하고 최초의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인다. 독일로 향할 때의 목표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음악은 평생에 걸쳐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1980년 뒤셀도르프에서 공개한 수신기가 달린 바이올린을 물 위에 띄워 무선 조종장치로 작동시키는 퍼포먼스 오브제 ‘MS-플럭서수스(교향곡 7번)’에서도 그 흔적이 엿보인다. 첫선을 보인 이후 1986년에는 독일 홈브로이히의 작은 연못에서 ‘아쿠아 콰르텟’이라는 제목으로 연주가 네 명과 함께 작품을 이용해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물에서 바이올린을 건져내 하나의 활로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연주하기도 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교향곡 7번’이라는 부제인데, 관현악이 내는 다양한 소리가 한데 모여 교향곡이 되듯 바이올린을 비롯해 물결과 물결을 일으키는 바람, 그리고 주변 소리가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예술이 취할 수 있는 형태의 급진적 변화를 모색한 백남준에게 넓은 의미의 음악은 예술의 원천과도 같았다.
_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이수영

 

 

 

백남준, ‘닉슨’, 1965, CRT TV 모니터 2대, 에나멜 코일 2개, 신호 발생기 1대, 매킨토시 앰프 1대, 콘덴서 2대, 비디오 분배기 1대, 스위처 박스 1개,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VHS 테이프,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비디오 아트를 창시하다

‘닉슨’

텔레비전 두 대에서 미국의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 영상이 나온다. 그러나 닉슨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화면을 감고 있는 구리선 때문이다. 모니터를 감은 코일에 전류를 흐르게 해 브라운관의 전자빔을 왜곡시킨 것. 1965년 제작한 ‘닉슨’은 앞으로 백남준의 철학을 표현할 중요한 매개체가 될 TV를 연구하며 다양한 실험을 했던 초기 작품 중 하나다. 많은 비평가들은 비디오 아트의 탄생을 1963년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찾는다. 막 도살한 황소의 머리가 입구 천장에 걸린 전시장에는 피아노 4대와 레코드플레이어와 테이프레코더를 주제로 삼은 작품, 그리고 13대의 TV 작품 등이 설치됐다. 아내 구보타 시게코(Kubota Shigeko)가 쓴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의 내용에 따르면 독일로 건너와 전자음악에 몰두하던 시기 백남준은 머지않아 누군가가 TV 예술을 시도할 것임을 직감했지만 주인공이 자신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하면 왜 안 되나?’란 의문이 들었고 갖고 있던 돈을 전부 투자해 TV를 구입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스튜디오에서 두 기술자의 힘을 빌려 화면을 변형하거나 관객이 조작해야 작동되도록 작품을 완성했다. 당시 이 작품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구보타 시게코는 전시 이후 백남준이 ‘죽은 황소 머리를 13대의 TV가 당해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고. 그러나 종국에 승리해 역사에 남은 것은 13대의 TV였다. 

 

 

 

피터 무어,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창조적 매체로서의 TV>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 1969,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Peter Moore

 

음악에 성(Sex)을 도입하다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 ‘TV 첼로’

1964년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백남준은 1967년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과 퍼포먼스 공연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기획한다. 그리고 공연 소개 글에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적어 내려갔다. ‘진지함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음악에서 성을 제거하는 것은 도리어 음악의 진지함을 해치는 행위다. 음악도 문학, 미술과 동등한 위치의 고전 예술이다. 따라서 음악도 음악계의 D.H. 로런스, 음악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필요한 것이다.’ 총 4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첼로 연주를 하는 샬럿 무어먼이 각 막이 지날 때마다 몸에 걸치고 있던 것들을 벗고 마지막엔 전라가 되도록 구성됐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보수적인 국가였고 2막의 시작과 동시에 샬럿 무어먼은 경찰에 연행된다. 긴 법정 싸움 끝에 샬럿 무어먼은 선고 유예 판결을 받는다. 예술의 자유와 외설 사이 논쟁에 불을 지핀 작품을 선보인 두 사람은 뉴욕 예술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후로도 그들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TV 첼로’를 가지고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음악은 고상해야 한다는 관념에 반기를 든다. 

 

 

 

백남준, ‘TV 첼로’, 2002, CRT TV 모니터 3대, 비디오 분배기 1대, 플렉시글라스, 첼로 헤드, 첼로 테일피스, 첼로 현, 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DVD, 48×51×145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백남준, ‘로봇 K-456’, 1964, PCB, 서보모터, 센서, 스피커, 앰프, 배터리, 원격 조종기, 팬, 철 구조물, 185×70×55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휘트니미술관 회고전의 하이라이트

‘로봇 K-456’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8번 B플랫 장조’의 쾨헬 번호를 따서 이름 붙인 작품 ‘로봇 K-456’은 백남준의 첫 로봇 작품이다.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20채널로 원격 조종되는 이 로봇은 거리를 활보하고, 라디오 스피커가 부착된 입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따라 하는가 하면 배변하듯 콩을 배출한다. 이후로도 ‘로봇 K-456’은 백남준의 여러 퍼포먼스에 등장하는데, 가장 크게 화제를 모은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최후의 퍼포먼스에서였다.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회고전에서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인 것. 이 퍼포먼스는 인간적 고뇌와 감성을 지닌 인간화된 기계에게 삶과 죽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기계적 합리성의 허구를 드러냈다. 

 

 

 

(위)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백남준아트센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전시 설치 전경,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아래)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비디오 스틸 컷,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Nam June Paik Estate

 

1984년의 시작과 함께 생중계된 위성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84년이 도래하면 TV와 같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백남준의 의견은 달랐다. ‘이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고 말하며 되려 바보상자 혹은 인간성을 앗아가는 기계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TV 덕분에 인간의 삶은 한층 더 풍요롭고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최초의 위성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상영하는 것이었다. 1984년 1월 1일, 뉴욕 WNET 방송국 스튜디오와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11개국에 생중계로 송출했다. 이 작품에는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이브 몽탕(Yves Montand)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 30여 팀, 100여 명이 등장해 음악, 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시청한 사람만 2500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엔 한국인도 다수 포함됐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괴짜 미술가 정도로 인식된 백남준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며 국내에서 엄청난 인지도를 얻은 것은 물론,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게 된다. 

 

보통 이원생방송은 한쪽에 컨트롤 타워를 두고, 다른 한쪽의 영상을 받은 다음 편집 후 동일한 내용을 양쪽으로 송출한다. 그러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파리와 뉴욕이 서로 방송 소스를 주고받은 뒤 각자 자유롭게 방송 내용을 송출했다. 이로써 백남준이 텔레비전에서 응당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했던 소통 방식, 쌍방향 텔레비전이 실현됐다.
_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이수영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로봇·비디오, 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217×110×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베니스 비엔날레에 등장한 예술 유목민

‘칭기즈 칸의 복권’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Yellow Peril, C’est Moi!)’. 백남준이 루이 14세의 화법을 빌려 자신을 정의한 말이다. 황색 재앙은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해 동서양을 호령하던 칭기즈 칸을 의미한다. 실제 수많은 나라를 떠돌며 사회 관념을 뒤흔드는 문화 테러리스트를 자처했던 백남준은 칭기즈 칸과 닮은 구석이 있다. 작품 활동에 따라 거처를 옮기던 유목민이었던 그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스 하케(Hans Haacke)와 함께 독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다. 이때 백남준은 ‘전자 초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를 주제로 동서양의 교류와 융합을 시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머리에는 잠수 헬멧을, 말 대신 자전거에 TV를 싣고 달리는 ‘칭기즈 칸의 복권’을 비롯해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물들을 모티프로 삼아 ‘마르코 폴로’, ‘알렉산드로스’ 등 10여 개의 비디오 조각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이동수단을 발판으로 권력을 쟁취하던 과거 방식은 이제 광대역 통신을 이용한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갈 것임을 시사했다. 백남준과 한스 하케의 작품은 ‘전위적이면서도 심오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백남준은 ‘전자 초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란 전시 주제를 통해 동서양의 교류와 소통을 다뤘다. 이는 그가 28년 전 예견했던 ‘전자 초고속도로’, 즉 인터넷 시대가 실현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매체에 대한 기억과 역사를 다루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_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 이수영

 

 

 

백남준, ‘삼원소’, 2000, 레이저, 나무 틀, 거울, 반투명 플렉시글라스, 광학계, 프리즘, 모터, 모터 전원 공급장치, 연무기, 325×375×122cm(삼각형), 309×246×122cm(사각형), 287×234×122cm(원),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Nam June Paik Estate

 

새로운 장르를 또다시 개척하다

‘삼원소’

1996년 4월 9일, 저녁을 먹던 백남준은 갑자기 심한 재채기를 하다 쓰러진다. 뇌졸중이었다. 오랜 시간 힘겨운 재활 기간을 거친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왼쪽은 못 쓰지만 내 몸의 오른쪽은 살아 있어. (…) 이건 내가 아직 더 창작해야 한다는 계시야.’ 2000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백남준은 레이저를 이용해 물, 불, 흙의 이미지를 도형으로 형상화한 ‘삼원소’를 포함해 레이저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다수 선보인다. 사실 레이저 아트에 대한 구상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1980년대 초에는 동료 예술가와 함께 레이저를 이용한 비디오 작품을 시도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다듬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작품들은 비디오를 통해 실험해온 비선형적인 시공간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며, 전 세계, 더 나아가 우주와 소통하고자 하는 백남준의 비전을 형형하게 비췄다. 이번 전시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에서는 ‘삼원소’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백남준의 영상을 상영한다.

 

Cooperation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National Gallery Singapore
Reference <나의 사랑 백남준>(아르테), <백남준-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아르테),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백남준아트센터)

 

 

 

 

►지금 다시, 백남준 I - 나의 아흔 살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지금 다시, 백남준 II- 백남준의 9가지 결정적 순간

►지금 다시, 백남준 III- 예술과 삶을 함께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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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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