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크색 사탕 같은 프란츠 웨스트의 작품이 초입에서 관광객을 환영한다. ‘Autostat’ (1996) by Franz West on Hauser & Wirth Menorca © Archiv Franz West © Estate Franz West Private Collection.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조각 작품이 어우러진 정원. ‘Elogio del vacío VI’ (2000) by Eduardo Chillida on Hauser & Wirth Menorca © Zabalaga Leku. San Sebastián, VEGAP, 2021, Courtesy of the Estate of Eduardo Chillida and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레이섬 위에 들어선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 사진 속 길쭉한 직사각형 별관이 아트 센터 건물이다. Hauser & Wirth Menorca on Isla del Rey,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Be Creative, Menorca
세계 3대 갤러리로, 글로벌 미술계를 리드하는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가 또 한 번 놀라운 꿈의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 꿈의 목적지는 메노르카(Menorca). 메노르카는 마요르카, 이비사 섬 등으로 이뤄진 스페인 지중해변의 발레아레스제도 중 하나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절대 청정 구역이다. 바로 이곳의 자연 위에 세워진 특별한 아트 센터,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Hauser & Wirth Menorca)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지중해 최고의 자연 항구인 메노르카 마온(Mahon)에서 다시 보트로 15분 거리에 자리한 작은 섬, 일라 델 레이(Ila del Rei)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다소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2021년 7월 공식 오픈 이후, 방문객을 5만8000명 이상 이곳으로 이끈 저력은 무엇일까.

전시 공간과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조각, 지역의 토종 식물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Elogio del vacío VI’ (2000) by Eduardo Chillida on Hauser & Wirth Menorca © Zabalaga Leku. San Sebastián, VEGAP, 2021, Courtesy of the Estate of Eduardo Chillida and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하우저 앤 워스의 공동 대표인 이완 & 마누엘라 워스(Iwan and Manuela Wirth)는 전기도 없고 바위투성이인 이 버려진 외딴섬을 왜 아트 센터 부지로 선택했을까. 원래 이곳은 마온시 소유의 공공 섬으로 18세기 영국인이 지은 해군 병원과 일련의 부속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40년 이상 방치된 섬은 2005년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재단(Hospital de la Isla del Rey)과 지역 당국의 노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입기 시작했다. 그들은 병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만들고 섬을 보호하고 알리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완과 마누엘라 역시 이곳을 방문한 후 사랑에 빠졌고, 재단과 협력하여 아직 복원되지 않은 별관 2개 동과 주변 지역에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를 조성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하우저 앤 워스가 오래된 유산을 보존하는 일에 앞장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취리히의 뢰벤브로이(Löwenbräu) 양조장 건물의 재활성화를 시작으로, 2014년 런던 근교의 버려진 농장을 개조한 하우저 앤 워스 서머싯 아트 센터까지, 오래된 보석 같은 건축물을 새롭게 복원하는 일에 동참해왔다. 하지만 탄탄한 노하우를 지닌 이들에게도 메노르카 프로젝트는 큰 도전이었다. 물류는 물론 전기도 없고 그야말로 철저히 폐허가 된 섬을 아트 센터로 복원하는 일. 이 험난한 프로젝트를 위해 그들이 파트너로 삼은 이가 바로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Luis Laplace)였다.

1 호안 미로의 조각과 어우러진 야외 정원으로,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피트 오우돌프가 디자인을 맡았다. ‘Le Père Ubu’ (1974) by Joan Miró on Hauser & Wirth Menorca © Successió Miró / VEGAP, 2021, Private Collection.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2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루이스 라플라스. Luis Laplace, Photo: Daniel Schäfer
“나는 이완과 마누엘라를 수년간 알고 지냈고 그들과 다양한 갤러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머싯이 그 시작이었다. 나는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며, 현대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그들의 비전에 영감을 받았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플라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990년대에 발레아레스제도의 마요르카에 살았고, 메노르카에도 방문한 적이 있던 터라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달랐다.
아트 센터의 규모는 1500m2. 8개의 전시 공간과 교육연구실, 현지 농산물을 이용한 제철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칸티나(Cantina), 루이즈 부르주아, 프란츠 웨스트, 호안 미로, 에두아르도 칠리다 등의 작품을 전시한 조각 정원, 지역 제작자들의 예술 출판물과 공예품을 판매하는 숍 등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인 건물인 만큼 메노르카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해군 병원이라는 본래의 성격을 보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건물의 외피는 유지하고 지붕을 다시 지어야 했는데, 상태가 매우 열악했다. 원래의 목제 기둥과 지역 사암 같은 재료를 복원하여 새로운 건축물로 탈바꿈시켰다.” 전통적 기와지붕, 테라조 바닥재 등 현지의 건축 자재를 사용하고 기존 질감과 색상을 존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손으로 짠 짚 램프 등 메노르카 전통 공예와 재활용 재료를 최대한 사용해 섬을 보존하기 위해 힘썼다. 갤러리 문을 감싼 파란색 노끈, 외부에 설치된 붉은색 금속 램프, 레스토랑 내부를 장식한 범선의 깃발 등 해양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는 섬의 역사와 해군 병원의 유산을 상기시킨다.

안과 밖을 잇는 오픈형 창을 통해 어디서든 풍경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Hauser & Wirth Menorca on Illa del Rei,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레이섬은 시각적으로 바다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섬 전체에 빛을 반사하는 물로 둘러싸인 이곳은 일상과 완벽히 분리된 공간으로, 도시에서 섬으로 가는 여정은 마치 순례를 나서는 것 같다. 나는 이 점이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자연은 채광창과 창문을 통해 갤러리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건축물은 자연을 수용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고요하다.” 일상과 완벽히 차단된 온전한 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고요와 평온의 시간. 도시를 벗어나 메노르카로 향하는 길은 루이스 라플라스의 말마따나 순례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을 통해 최고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노라는 그의 꿈은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에 완벽히 구현되었다.

1 모성을 상징하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 ‘거미’가 공간을 따뜻이 품고 있다. ‘Spider’ (1994) by Louise Bourgeois on Hauser & Wirth Menorca © The Easton Foundation/DACS, Courtesy of The Easton Foundation and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2, 3 제철 재료와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칸티나’. Cantina at Hauser & Wirth Menorca, Courtesy Hauser & Wirth. Photo: Daniel Schäfer
이 꿈의 공간에 태초의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여유 한 스푼을 풀어놓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경 디자이너 피트 오우돌프(Piet Oudolf)다. 그는 지중해 기후에 적합한 토착 다년생 식물을 중심으로 조성한 정원을 갤러리 건물과 나란히 배치했다. 정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이 말을 건네고, 토종 식물과의 낯선 조우는 태초의 세계로 초대된 듯 평온이 뒤따른다. 아트 센터는 단지 아름다운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빗물 수집을 통해 물을 재사용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고, 탄소제로, 토종 도마뱀을 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등 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그들의 올곧은 철학까지 더해져 순례의 여정은 더욱 의미 깊다.
이쯤이면 이미 당신의 마음은 메노르카를 향해 요동치고 있을 터.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전시 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곳 갤러리는 계절별로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현재는 전시가 없어 갤러리 문을 닫은 상태로, 다음 전시는 흑인 아이덴티티의 역사를 담아내는 흑인 현대미술가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이 갤러리의 여름을 채울 예정이다. 아트 센터 입장료는 무료이며, 마온 항구에서 매 시간 운행하는 정기 셔틀 보트는 1인당 성인 기준 왕복 5유로다. 역사적 건물 보존은 물론 교육, 지속가능성, 미식이 어우러지고 무엇보다 자연과 예술이 건네는 낯선 호기심과 영감이 넘실대는 꿈의 공간. 하우저 앤 워스 메노르카, 이 작은 섬의 기적은 지금부터다.
cooperation Hauser & Wirth Menorca(www.hauserwir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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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더네이버>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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