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아트로 맛보는 밸런타인데이의 달콤함

초콜릿과 꿀이 흐르고 크림을 잔뜩 올린 셰이크가 튀어 오른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눈으로 먼저 맛보는 진득한 달콤함.

2022.02.10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김재용, ‘아주아주 큰 흐르는 노랑 하트 도넛 014’, 2019, 섬유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색,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95×100×36(d)cm.  

 

마음을 비추는 도넛

김재용

흰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하트 도넛 위에 초콜릿과 노란 아이싱이 녹아내린다. 반짝이는 크리스털은 흐르는 초콜릿과 아이싱을 따라 스프링클처럼 흩뿌려져 있다. 색과 빛으로 둘러싸인 도넛의 중앙은 앨리스를 환상의 세계로 이끈 토끼굴을 연상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재용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도넛 연작은 인생의 벼랑 끝에서 탄생했다. 결혼 후 뉴욕에서 젊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벅차다고 느낀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식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크게 실패하고 만 것. ‘도넛이라도 만들어 팔면 생계를 잇고,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란 절박함을 담아 흙으로 도넛을 빚어 굽고 색깔을 입혔다. 색각이상을 앓고 있어 다양한 색깔 사용을 두려워하던 작가가 화려한 색채를 작품 전면에 내세운 것 또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투영한 도넛 연작은 보는 이에게 내재된 욕망, 위안, 환상 등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안성하, ‘Untitled’, 2020, Oil on Canvas, 27.3×27.3cm. 

 

사탕에 투영한 현대사회 

안성하 

일상 속에서 포착한 평범한 사물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캔버스에 옮기는 안성하 작가. 사탕은 작가가 2004년부터 현재까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 중 하나다. 손을 뻗어 한 알 집으면 끈적한 표면이 금방이라도 손가락에 찰싹 달라붙을 것 같은 생생한 묘사는 조건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미뢰를 강렬하고 즉각적으로 자극하는 사탕은 복잡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과 단편적이면서도 짜릿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안성하 작가는 5호 캔버스에 그린 이 작품을 1년 후 40호 캔버스에 재현해 그렸는데, 이 과정은 대량생산과 복제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의 소비 양상을 나타낸다. 

 

 

 

Stuart Dunkel, ‘Best Cookie Ever’, Oil on Panel, 8×10in, Signed, Provided by Rehs Contemporary Galleries. 

 

화폭 위에 펼쳐진 동화 

스튜어트 덩켈

작고 하얀 생쥐가 초콜릿을 손에 쥐고 자신의 키 두 배를 훌쩍 넘는 커다란 쿠키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작품명은 ‘Best Cookie Ever’. 사람들이 먹다 남긴 쿠키에 박혀 있던 초콜릿을 모으던 생쥐가 어느 날 여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쿠키를 우연히 마주하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작품이다. 오보에이스트로 활약하다 40대에 접어들어 그림을 배우고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스튜어트 덩켈(Stuart Dunkel)은 흰 생쥐를 주인공 삼은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Best Cookie Ever’를 비롯해 방울토마토 꼭지를 왕관처럼 머리 위에 쓰고 서 있는 흰 생쥐가 등장하는 ‘Queen Tomato’, 흰 생쥐가 쿠키에 박혀 있는 초콜릿 칩을 쏙쏙 골라내 구석에 모으는 ‘The Collector’ 등 그의 작품에는 순수함과 위트가 가득하다. 

 

 

 

임선희, ‘Layered Pink Cake and Blue Guitar I’, 2019, Oil on Canvas, 227×162cm. 

 

동시대 회화에서의 평면성

임선희

평면성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임선희 작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로서, 회화의 평면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탐구한다. 달콤한 크림이 봉긋 올라간 컵케이크와 불이 환히 켜진 초가 꽂혀 있는 케이크부터 버섯, 나비, 기타 등이 화면을 부유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Layered Pink Cake and Blue Guitar I’은 선과 명암을 배제하고 화면을 구성한 작품이다. 옅은 핑크부터 진한 핑크까지, 농도와 밝기를 조절한 핑크 계열의 색을 단계적으로 올리고 레드와 블루 등 나머지 컬러를 순차적으로 올려 작품을 완성했다. 형태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겹의 컬러 레이어로 표현한 케이크와 컵케이크는 그 자체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내기보단, 구름 사이에서 번져 나오는 물안개처럼 주변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Mauro Perucchetti, ‘Jelly Baby Family 0.9’, 2012, Pigmented Resin, Father 90cm, Mother 81cm, Twins×2 56cm, Small Child 45cm. 

 

복제된 젤리 가족

마우로 페루케티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곰 젤리만큼 대중적인 구미 ‘젤리 베이비’를 모티프로 한 이 연작은 이탈리아 조각가 마우로 페루케티(Mauro Perucchetti)의 대표 작품이다. 그가 작업에 대한 구상을 떠올린 건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제인간과 종교, 의료 윤리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탐구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사람 모양의 구미 ‘젤리 베이비’가 영감을 주었죠.” 작가는 입은 웃고 있지만 공허한 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젤리가 주는 언캐니(Uncanny)함에 주목했다. 투명한 레진으로 재현한 이 거대한 젤리들은 미래의 복제인간에게 존재할 수 있는 모호성을 시사한다. 동시에 크기와 컬러를 각기 달리해 부모와 자녀를 표현함으로써 가족의 소중함과 다양한 면모를 지닌 현대인의 양상을 표현한다. 

 

 

 

Genesis Belanger, ‘A Woman Is Always Prepared’, 2019. Stoneware, Porcelain, 40.6×38.1×22.9cm, Photo: Pauline Shapiro.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익숙한 듯 낯선 일상의 장면들 

제네시스 벨란저

핸드백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한 셰이크. 심지어 체리를 얹은 크림은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핸드백에서 셰이크가 튀어 나온다고?’ 미국의 조각가 제네시스 벨란저(Genesis Belanger)는 과일, 꽃, 음식 등 일상 속 사물을 도자, 석고, 금속 등을 이용해 조각으로 구현한다. 솜사탕같이 부드러운 작가 특유의 파스텔 톤 컬러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도 잠시, 작품 속 어딘가에 기묘한 요소가 숨어 있다. 핸드백에서 셰이크가 튀어 나올 뿐만 아니라 꽃이 만개한 화병에서 손가락이 기어 나오고 칵테일 위엔 사람의 눈 형태가 가니시처럼 올라가는 식이다. 작가는 편안함과 불편함, 아름다움과 낯섦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이동욱, ‘Pooh’, 2013, Mixed Media, 16x16x35cm ©Artist and Arario Gallery.

 

달콤하지만 연약한 

이동욱

꿀이 뚝뚝 흘러내리는 벌집이 좌대 위에 첨탑처럼 높이 쌓여 있다. 벌집 더미 사이사이를 장식하는 새 형상의 금빛 조각과 좌대는 이것이 트로피임을 짐작하게 한다. 꼭대기에는 꿀을 흠뻑 뒤집어쓴 벌거벗은 한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나 트로피의 정상을 차지한 사람의 얼굴이나 몸짓에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보이지 않는다. 이동욱 작가는 스컬피란 소재로 만든 정교하고 사실적인 조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면의 폭력적이고 낯선 상황을 대비시킨 작품을 선보인다. 반짝이는 황금빛 벌집 트로피는 다디단 승리를 상징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흘러내리는 연약한 형태는 한순간에 훼손될 수 있는 영광의 불완전성을 상정한다. 

 

 

 

(위) Wayne Thiebaud, ‘Pies, Pies, Pies’, 1961. Oil on Canvas, 20×30in. Crocker Art Museum, gift of Philip L. Ehlert in memory of Dorothy Evelyn Ehlert, 1974.12. © 2022 Wayne Thiebaud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아래) Wayne Thiebaud, ‘Boston Cremes’, 1962. Oil on Canvas, 14x18in. Crocker Art Museum Purchase, 1964.22. © 2022 Wayne Thiebaud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디저트에서 읽은 1960년대의 미국 

웨인 티보

파이, 도넛, 사탕, 아이스크림 등 일상적인 디저트를 화폭에 담아 ‘달콤한 풍경을 그리는 화가’로 불리는 웨인 티보(Wayne Thiebaud). 마흔 살에 이르러 화가가 된 그는 가난한 10대 시절 식당에서 일하며 손님들에게 숱하게 나른 디저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웨인 티보의 작품 속 디저트들은 갖가지 데커레이션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 않는다. 크림을 무심하게 툭 올린 것처럼 투박한 디저트가 일렬로 전시돼 있다. 특별한 어느 날을 위한 디저트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접해온 케이크들을 그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웨인 티보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 미국의 단면이 엿보인다. 그는 ‘작가 서명을 조각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유화 물감을 두껍게 올려 작품을 완성했는데, 케이크 프로스팅을 화폭에 올린 듯 생생한 질감을 전한다.  

 

 

 

 구성연, ‘사탕시리즈#g.01’, 2017, Light Jet C-print. 

 

신기루처럼 사라질 찬란함 

구성연

구성연 작가의 작품 속 모란 꽃잎은 단단하고 매끄럽다. 광택마저 감돌아 소재가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힌트는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다.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꽃가지에 잎사귀처럼 달려 있는 황금빛 잉어 사탕이 그것. 작가는 모란 형태로 조각한 형형색색의 사탕을 사진 프레임에 담아 모란도를 재현한다. 사탕은 달콤하지만 언젠가 입 안에서 녹아 사라지고, 모란은 눈부시게 만개했다가 계절이 지나면 이내 져버린다. 찬란하면서 무상한 모란 사탕은 황홀하지만 덧없는 현대인의 욕망을 상기시킨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아트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더네이버> 편집부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