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식물과 인간의 연결 고리

식물생태학을 연구해온 이선 박사가 전하는 식물과 인간의 삶. <식물에게 배운 네 글자>에는 식물이 가르쳐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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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멍’이라는 신조어를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지만,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지난해 뒷베란다에서 내내 유치원을 운영해본 터라. 첫 졸업생은 고무나무였다. 가지치기한 고무나무의 잘린 가지를 물에 담가 뿌리를 낸 후 작은 화분에 옹기종기 심어 정성껏 길러냈다. 튼튼하게 자라난 고무나무는 친구네 집으로, 가스 검침하러 온 직원의 집으로 입양을 보냈다. ‘고무나무 유치원’의 원생이 모두 졸업한 뒤에는 아보카도를 심었다. 아보카도 씨앗 5개 중 4개만 싹이 나고 하나는 감감무소식이라서 80% 성공했구나 했는데, 남은 하나의 씨앗도 반년이 넘어 간신히, 극적으로 싹을 냈다. ‘아보카도 유치원’ 다음엔 ‘아메리칸블루 유치원’ 그리고 ‘다육이 유치원’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우리집 뒷베란다의 작은 식물 유치원은 추위로 문을 닫을 때까지 꽤 성업했다. 


빈말로라도 식물 잘 키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주제에 무슨 바람으로 그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뒷베란다 유치원을 찾는 마음이 꽤 좋았다. 두서없이 박스가 쌓여 있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초록 유치원생을 들여다보는 그 시간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풀멍’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 책이 함께했다면 어땠을까. 식물 키우는 방법에 대한 깐깐한 조언도 아니고, 사자성어에 대한 엄격한 가르침도 아니고, 치밀한 비교 분석을 통한 논증도 아닌, 말 그대로 편안하게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식물계와 인간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그 시절의 한가로운 오전을 닮았다. 


저자인 이선은 식물생태학 박사이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식생 및 입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돌아와 전통 조경 공간과 자연 유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문화재청 천연기념물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식물의 곁에서, 식물을 들여다보며 산 기간이 길다. 그동안 배운 것이 많다. 그는 ‘식물의 입이 되어 식물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전하는 것이 그동안 진 빚을 갚는 길’이라 믿는다. 그가 보기에 인간 세상과 식물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공통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서로 사랑하고 함께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되돌아보는 삶’이리라. 책에 등장하는 사자성어들은 식물의 삶과 인간의 삶을 겹쳐 보여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사자성어에는 식물을 관찰하고 가져온 것이 많다. ‘수상개화(樹上開花)’는 가짜 꽃으로 나무를 장식한다는 뜻으로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여건을 이용해 약한 것을 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의 병법 전술인 삼십육계의 29번째 계책이다. 때맞춰 내리는 비가 만물을 기른다는  ‘시우지화(時雨之化)’,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근고지영(根固枝榮)’, 풀빛과 녹색은 같은 색깔이라는 ‘초록동색(草綠同色)’, 추운 겨울이 온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세한송백(歲寒松柏)’ 등의 사자성어는 식물의 삶과 인간사가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사자성어는 식물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네 글자를 펼쳐놓고 그 안에서 기러기 아빠의 처량한 삶과 보은의 정이품소나무와 결혼한 혼례소나무 이야기,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애틋한 사연을 엮어 넣는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은 깊고 푸른 나무그늘 같은 사자성어 안에서 두런두런 섞여든다. 읽다 보면 식물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네 글자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물론 네 글자만으로도 뿌듯하지만.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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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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