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고요한 침묵, 느린 진화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잊는다. 인간의 삶이 늘 편안하고 안락한 것만은 아니기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며 동식물의 세계를 외면하고 산다.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 작가는 수백 톤의 작품을 가지고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덕분에 우리는 느리지만 분명한 바다의 진화를 목격한다.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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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가 제임스 쿡 대학, 오스트레일리아 해양 과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제작한 <오션 사일렌>.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수온 변화를 색으로 나타낸다. 수백 킬로미터 밖의 도시에서도 해저 상태를 관측할 수 있도록 했다.

 

 조각가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 

 

올해 여름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에는 거대한 표식이 세워졌다. 퀸즐랜드 북부 타운즈빌 부둣가 인근 바다에 세워진 <오션 사이렌(Ocean Siren)>이다. 이 작품은 대산호초 군락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바닷속 온도 변화를 색으로 반영하는 독특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따뜻해진 해양 온도는 바닷속 세상엔 위협적이다. 이는 곧바로 산호 표백의 위험을 야기한다. <오션 사이렌>의 색은 바닷속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를 증명하며 위기 사태를 경고한다. 이 조각상은 조각가이자 해양 전문가인 제이슨 디케리스 테일러(Jason de Caires Taylor)가 구상했다. 그는 퀸즐랜드주와 함께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고 사람들에게 자연 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수중 아트 박물관(Museum of Underwater Art, 이하 MOUA)을 준비해 개관한다. 바다 위로 세워진 <오션 사이렌>과 함께 <코럴 그린하우스>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마린 파크에 있는 존 브루어 리프의 넓고 평평한 바닷속 모래에 펼친다. 20개의 리프로 둘러싸인 작품을 통해 산호초 보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규모로 보나 작품으로 보나 박물관은 전 세계 여행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 프로젝트다. 그간 놀라운 수중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의 새 작품을 향한 관심도 높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고, 여행이 제한된 시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수 상황은 그의 작품에 내재한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코럴 그린하우스는 길고 육중한 빗살 구조의 아치로 설계되었다. 이는 거센 조류를 완화해 산호초와 작품을 보호하고 있다. 

 

 

60톤이 넘는 코럴 그린하우스의 설치 모습. 자연 재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무게를 늘렸다. 

 

바다는 살아야 한다  

바닷속에서는 지상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인간은 물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 20년 전부터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일하면서 바닷속 세상을 접해온 제이슨은 바다가 얼마나 놀라운 공간인지 일찌감치 깨닫고 해양 환경 보호와 보존에 관심을 갖는다. 1998년 런던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London Institute of Arts)의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자신이 경험한 바다와 예술을 연결하는 작업을 구상했다. “맨 처음 수중 작품을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어요. 남아메리카 카리브해의 그레나다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할 때죠. 2004년 허리케인이 섬을 강타해 산호초가 크게 손상된 상태였어요. 그곳에서 유일하게 보호된 몰리네어만에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남아 있는 산호초의 훼손 가능성이 커졌죠. 또 다른 어트랙션이 필요했어요.” 다이버로 오랫동안 일하며 목격한 바다의 오염 상태는 실로 심각했다. 20년 전 제이슨이 경험한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바다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운 좋게 봐온 바닷속 모습은 이젠 없어요. 그 모든 훼손은 제가 살아온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엄중한 사태예요. 실제 작업을 통해 지켜본 바다와 암초는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어요.” 천연 산호초는 한번 손상되면 복구되기까지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8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2050년경이면 전 세계 산호초의 60%가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도 전해지고 있다. 관광객을 모으면서도 산호초와 해양 환경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그는 65여 점의 작품으로 바닷속에 그레나다 수중 조각 공원(Grenada Underwater Sculpture Park)을 조성한 후 1년간 바닷속과 관광객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바닷속에서 인공 암초의 기능을 겸비한 그의 작품은 큰 인기를 얻었다.

 

지역 원주민과 워크숍을 열어 아이들을 모델로 작품을 구상했다.

 

스페인령 란사로테섬 바다에서 발표한 대서양 박물관의 <람페두사호의 뗏목>. 

 

썰물 시기 최대 2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는 영국 런던 <밀물> 시리즈의 <종말의 네 기수>. 보통 때는 8m 높이의 밀물에 잠긴다.  

 

바닷속 해양 생물에겐 좋은 먹이 터전이 되었고, 다이버들에겐 근사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자연의 산호초를 보호하면서 관광 산업 또한 지키는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또 몰리네어에 사는 실제 사람들을 모델로 삼은 조각상은 지역 사회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그레나다 수중 조각 공원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세계 25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하는 명예까지 얻는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수중 예술 작업은 14년간 계속되었다.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칸쿤에 2009년 수중 예술 박물관을 열고, 2016년 스페인 남서부 란사로테섬 인근 해안가에 400여 개의 동상을 설치해 유럽 최초의 해저 박물관 <대서양 박물관(Museo Atlántico)>을 세웠다. 영국 런던의 <밀물(The Rising Tide)>, 바하마 제도의 <오션 아틀라스(Ocean Atlas)>, 몰디브의 <코랄라리움(Coralarium)> 등을 선보인 그는 올해 호주 퀸즐랜드의 수중 아트 박물관을 공개한 후 오는 11월에 발표할 프랑스의 프로젝트와 함께 지중해 언더워터 포레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퀸즐랜드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는 2021년 또 다른 작품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로서, 환경 보호 운동가로서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레나다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수중 작품 <인생의 부침>.  

 

바닷속 작품들은 때로 현실을 풍자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발표한 수백 점의 인물상 중 하나 <무력감>. 


작품, 바다의 일부가 되다 

같은 바다라고 해서 모두가 상황이 같지 않다. 바닷속 작업은 작가에게 매번 다른 감흥을 선물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제이슨은 스페인 란사로테섬의 대서양 박물관을 꼽았다. “대서양은 태평양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어요. 이전에 작업한 바다의 수온보다 낮은 환경에 산호초조차 없는 환경이라 기대치가 낮았죠. 그러나 바이오매스는 무척 풍부했어요. 또 다른 물속 생태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물고기와 갑각류, 해조류의 숫자를 늘려 아주 미세한 해양 생물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 목표를 두었죠.” 바닷속 작업이기에 조각상을 이룬 재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메탈 소재는 물속에서 쉽게 부식되고 해양 생명체에 해로운 물질을 생성한다. 그는 바닷속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재료를 개발해 사용한다. 인공 암초를 제작하는 회사는 물론, 이를 연구하는 해양 생물학자들과 교류하며 특수 재료를 연구해왔다. 바닷속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동식물을 위한 인공 암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속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돌과 바위, 특수 시멘트를 사용해요. 특히 조각상의 표면은 pH 중성 물질을 사용해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산호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죠.” 심미적인 조각품이지만 인공 암초라는 주요한 기능을 갖고 있기에 다양한 해양 식물이 찾는 그의 작품은 살아 있는 것들의 일부가 된다. 해저 동식물을 보호하며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특수 재료뿐만이 아니다. 작품의 형태도 이에 가담한다. 

 

 코럴 그린하우스의 수중 투어를 위한 프로그램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준비돼 있다. 

 

이번에 발표한 퀸즐랜드 수중 박물관의 코럴 그린하우스에서는 조각상 위로 40피트 길이의 긴 빗살 구조물을 시도했다. 해저의 강한 물살을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로 그 지역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바닷속 환경이 주는 어려움은 늘 존재했어요. 예를 들면 바닷속에서 쉽게 파손되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무게를 늘려야 하죠. 지속적으로 변화무쌍한 해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해요.” 이번 수중 박물관에서 선보인 코럴 그린하우스의 작품 무게는 총 64톤이었다. 이제까지 제이슨이 작업한 작품 중에서 가장 무거웠다고 한다. 500개의 특수 강철과 콘크리트로 제작된 조각품들은 다섯 파트로 나눠서 60피트 해저로 이동해 설치됐다. 바닷속에 정박한 64톤의 작품은 4등급 허리케인을 견딜 수 있다. “코럴 그린하우스가 있는 존 브루어 리프 지역은 열대 지방의 바다보다 다양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요. 천혜의 산호초 군락과 열대 동식물이 어우러진 스펙터클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죠. 다만 사이클론이 잦은 지역이라는 점, 해변에서 배로 2시간 거리라는 점을 고려해야 했어요. 저로서는 계획을 잘 짜서 실행하는 것이 중요했죠.” 전 세계 바닷속에 있는 그의 작품은 바닷속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공 암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거에 설치한 작품을 찾을 때마다 달라져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해요. 작품 설치가 끝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들죠. 바다마다 다른 환경, 변화하는 기온과 날씨 등에 맞춰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기쁨도 커요. 다시 돌아가서 바닷속에서 변화한 작품을 볼 때마다 마치 정원에서 나무 키우는 것과 비슷한 기쁨과 보람을 느껴요.“ 

 

화창한 날씨가 연중 320일 이상 계속되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지역에의 작품 설치 작업.   

 

코럴 그린하우스에서 바라본 하늘. 존 배리어 리프의 수중에서는 가시거리가 10~15m에 이른다. 

 

인공 암초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 중인 작품의 변화한 모습.  

 

바다로 들어가면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느낌을 받는다. 제이슨 또한 고립과 해방이라는 바닷속에서의 상반된 감정을 모를 리가 없다. “푸른빛으로 인해 좀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느낌을 좋아해요. 저의 또 다른 면, 혹은 존재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거든요.” 그가 바닷속에 설치한 다양한 인간 군상은 저마다 제목을 달고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때론 외롭고, 탐욕스럽고, 안타깝다. 그들은 바다 세계의 일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이번 코럴 그린하우스에서 선보인 20여 개의 조각상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제임스는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몇 달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다.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는 듯한 어린아이들을 형상화한 코럴 그린하우스의 조각상은 물론, 바다 위에 설치한 <오션 사이렌>도 울구루카바(Wulgurukaba) 부족의 소녀를 모델로 제작했다. 해수 온도 변화를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를 오랜 히스토리를 쌓아온 원주민, 그중에서도 미래를 보장받아야 하는 어린이가 전달하게 한 것이다. “지금처럼 자연을 파괴한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을 이해하고 공존해 나가야 해요.”

4.8m 높이로 제작된 소녀상은 멀리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션 사이렌>은 이제는 스쿠버다이버로만 관객을 한정하고 싶지 않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는 제이슨의 뜻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 발달한 디지털 기술로도 얼마든지 바닷속과 그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점점 더 자연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아트 작품을 통해 자연이 직면한 현실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관심을 갖게 하고 싶어요. 현시점에서 자연과 인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이런 메시지를 담은 목소리예요.”     

Cooperation Tourism and Events Queen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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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Courtesy of Jason decaires Taylor, Matt Curnock, David Kir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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