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빛과 에너지로 그린 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 사태로 혼란과 재정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2020년. 구정아 작가는 2020을 타이틀로 국내 개인전을 열며 오랜 시간 응축된 사유의 흔적을 은유로 채웠다.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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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 갤러리 가든에 전시된 ‘레조낭스’와 구정아 작가.

 

2020년 2월 2일. 유럽에서는 0202 2020이라고 표기하는 날이다. 숫자 0과 2가 두 개씩 있는 2020년. 구정아 작가는 올 한 해 주어진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2020에 조형성을 불어넣어 하나의 심벌을 구상한다. 숫자 0을 알파벳으로 읽으면 이오이오, 오이오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음할 수 있다. 또 형태상 0을 원형으로 보면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을 기본으로 구현된 스케이트 파크 ‘레조낭스’와 88개의 마그넷 큐브로 만든 작업 ‘88’이 연상된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 사회의 통념이 전복된 한 해. 구정아 작가는 ‘2020’을 필두로 다중의 의미를 함축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품들을 가지고 서울을 찾았다.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진행한 후 근 3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술 활동을 해온 작가의 경력에 비해 국내에서 발표한 개인전 횟수는 적은 편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구정아 작가는 그간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뉴욕 디아비콘,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등 국내보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진행한 개인전이 더 많았던 터. 그를 아는 미술 애호가라면 이번 전시는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케이트 파크의 신작 ‘레조낭스’, 어둠에서 빛을 발하는 ‘세븐 스타즈’, 자석 큐브를 쌓아 만든 마그넷 작업 등 조각, 페인팅, 설치, 드로잉 30여 점의 신작으로 <구정아: 2020>을 발표한다. 

 

PKM갤러리 본관 전시장은 주기적으로 소등 작업이 이뤄진다. 사방이 깜깜해지면 벽에 걸린 ‘세븐 스타즈’에서 별 형태의 야광 빛이 쏟아진다. 층고가 높은 전시장에서 관객은 공간감을 상실한다. 외부의 빛이 차단된 암흑 같은 공간에서 별들 사이에 서 있으면 마치 우주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경험하는 듯하다. 밝음과 어둠, 있음과 없음, 생성과 소멸 등을 함축하고 관객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빛은 그의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자 다중의 의미를 가진 상징이다. 갤러리 본관에서 별들이 빛을 선사한다면, 야외 공간인 가든 전시장에서는 스케이트 파크 ‘레조낭스’가 빛을 내고 있다. 작품 표면을 인광 물질로 마감해 밤이 되면 낮 동안 모은 빛을 스스로 발광하며 어둠과 함께 이색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정원 공간에 맞춰 2개의 크고 작은 원이 모여 요람 형태로 디자인된 스케이트 파크는 해외에서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낮과 밤의 아름다운 조형물로서, 스케이트보더의 놀이터로서 본래의 목적과 반향을 이끌어낸다. 

 

Seven Stars(2020), Phosphorescent pigment and acrylic painting on canvas, 200×150cm. 

 

‘세븐스타즈’보다 훨씬 이전인 2012년에 탄생한 스케이트 파크는 오랫동안 관객과 소통해온 작가의 대표 작품이다. 프랑스 바시비에르섬 지역의 스케이트 파크 ‘OTRO’는 지역 재생과 젊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목적에서 탄생한 공공 프로젝트였다. 공원에 동상처럼 서 있는 조형물 대신, 관객의 참여를 이끄는 예술품이 되길 원한 지역사회 관계자들과 5년간 협의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이는 도시 공공미술의 가치,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힘, 예술을 향한 삶의 반향 등의 표본이 된다. 이후 스케이트 파크는 8년간 형태와 규모를 달리하며 주요 도시에 설치된다. 2015년 리버풀 ‘Everto’, 2016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Arrogation’ 그리고 2019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OooOoO’로 진화했다. 지난해 실내에서 선보인 ‘OooOoO’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플레이그라운드’ 형식으로 운영되는 공간의 첫 프로젝트였던 실내 스케이트 파크에 음악을 더했다. 보더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활공을 작가에게 전하며 형태와 길이, 커브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공유해왔다. 한시적인 프로젝트 작품이 철거를 앞두었을 때 철회하라는 이메일이 쏟아지기도 했다. 작품을 체험한 관객은 여러 가지 형태로 교감하며,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갤러리 별관에 전시된 4점의 자석 조각 시리즈는 자성을 이용해 의미를 쌓아 올린다. 가로세로 각 10mm, 높이 8mm 자석 큐브를 이용해 의미 있는 날짜의 숫자와 똑같은 개수로 건축적 형태를 이룬다. 625, 518, 88, 911 등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날이다. 작품은 숫자만큼의 마그넷 조각으로 구성되었다. 625는 625개 큐브로 이뤄졌는데, 그만큼의 자성을 활용해 구성할 수 있는 작품의 형태는 가변적이다. 이는 같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체험은 같지 않을 수 있음을 내포하기도 한다. 서로 끌어당기는 자성의 성질은 작품을 조금씩 달라지게 한다. 고정 값을 갖고 있어도 고정되지 않은 상반된 성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그넷 시리즈는 앞으로 스케이트 파크 작품처럼 긴 생명력을 가지고 전 세계 관객에게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길고 긴 길 끝 막다른 지점에 이른 사유의 결과물은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Gossura, Tacit Truth (2020), 4 ceramic pieces painted with phosphorescent pigment, 18×6×10.5(h)cm each.

 

‘그저 평범한 것은 없다(Nothing is merely ordinary)’라는 태도는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해온 구정아 작가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는 익숙한 공간과 장소에 미묘하게 개입해 현실 너머 다차원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해왔다. 작품마다 내포된 그의 은유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은유의 레이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을 관통하는 사유의 큰 줄기는 다시 작가에게 귀속된다. 그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그의 오랜 사유의 결과물을 즐기기 위해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의 사유를 부분적으로나마 공유하고 작품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힌트가 되길 바란다.  

 

‘스케이트 파크’(2012)를 처음 만들었을 때 작가조차 작품의 긴 히스토리를 예상하지 못했을 듯합니다. 이 작품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나요? 작품의 생명력은 자유로운 교류와 오랜 시간  축적된 사유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파크’의 적극적인 관객은 보더입니다. 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것은 필수였을 텐데요. 기능적, 심미적으로 작품에 반영된 의견이 있나요? 기능적으로는 자신의 역랑에 맞는 구조물이 제공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고요. 보더들이 즐기는 커브 등을 시범적으로 보여주면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Resonance(2020), 620 x 810 x 170(h)cm.


‘스케이트 파크’ 작품을 통해 이룬 작업적 성과는 무엇인가요? 좋은 생각은 증거 등을 요구하지 않고 감염된다는 경각심이었습니다. 
 

창작자 입장에서 작품에 구현한 어둠, 밤 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요함, 밝음을 볼 수 있는 환경, 창작의 엔진 등입니다.


빛을 컨트롤했을 때 작품이 놓인 공간은 새로운 시공간을 꿈꾸게 합니다. 인광 물질 외에도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나요?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공간의 질에 관심이 있습니다.

 

Intrinsic Virtue(2020) , Phosphorescent pigment and acrylic on paper mâché , 28×24×8(h)cm.


드로잉 작업 ‘02022020’은 마그넷 작업 518, 911, 625 같은 날과는 달리 작가가 지정한 날입니다. 작가에게 어떤 날이었나요? 또 후각을 깨우는 냄새를 작품 요소로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과거 1010년 1월 1일부터, 앞으로 돌아올 9090년 9월 9일 등이 있겠죠. 후각을 일깨워 주위를 환기하고 공기를 청정하게 해준다는 냄새가 19세기 한 여행자에 의해 발견되고, 제약사의 지원으로 발명돼 전후 병원 등지에서 힐링 역할을 해온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술 작품의 역할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그넷 작업은 과거 에르메스 서울에서 각설탕을 쌓거나 2002년 비엔나에서 선보인 담배로 쌓은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석의 어떤 면에 매료되었나요? 거주자와 관계되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개방형 건축을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속성에 비유한 세드릭 프라이스의 마그넷 이론에 오랫동안 흥미가 있었어요. 자석이 지닌 힐링 요소, IT, 양자 계산(Quantum Computation), 게임(Game), 마켓(Market) 등과 관련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레조낭스’와 ‘세븐스타’는 규정할 수 없는 양의 에너지를 빛으로 분출하고, 마그넷 시리즈는 정해진 값의 에너지를 작품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비슷하면서도 이면에 극명히 다른 성질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작가 본인도 꽤 흥미로웠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공명(resonance), 방출(emission), 자석의 영역(magnet field), 충돌(collide), 별자리(constellations), 물질(matter), 마음(mind) 등과 관련된 전문가들과 일할 기회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자석은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밀어내는 성질도 있죠. 작품과 반대로 사용할 계획은 없나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소설 <친화력>과 같은 작업을 한번 해볼 계획이 있어요. 

 

Your Tree My Answer(2020), Ink on rice paper 5.7 x 9.2cm


마그넷 작업의 규모를 좀 더 확장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다각적 기능을 가진 외부 건축물을 컨설팅 중입니다. 


평면 작품 ‘유어 트리 마이 앤서’를 보면 확실히 원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느껴져요. 원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인슈타인이 닫힌 원을, 수학자 망델브로가 열린 원을 제시했다고 하면, 작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의 1969년 발표작 영상 작품 <The World Question Center>나, K-Pop이 만들어낸 ‘찐’ 현상 등도 동일한 원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개인적인 영역을 궁금해하죠. 당신의 머릿속을 무척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을까요? 흥미와 관심을 두고 있는 창작물을 알려주세요.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의 저서 <The Beginning of Infinity>(2012), 디자이너 앨리스 로손의 <Design as an Attitude>(2018), 철학자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1963), 시인 에두아르 글리상의 <Poetics of Relation>(1997), 천문학자 마틴 리스의 < From Here to Infinity>(1996), 로이 H 와그너의 <The Invention of Culture>, 국내에 <내 생애 한 번은 수학이랑 친해지기>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마커스 드 사토이 교수의 <How to Count to Infinity>요. 음악은 코어레스(Koreless), 미카 바이니오(Mika Vainio), 박스만(F Waxman), 맨시니(H Mancini)의 곡을 자주 듣고 영화 중에서는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기억에 남네요. 

 

911(2020), 911 pieces of Ferrita ceramic magnet, Dimensions variable(each magnet: 10×10×8(h)mm).


하루 중 수면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있나요? 산책입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을 말해줄 수 있나요? “내일의 질문은 무엇인가?“


30년간 정체되거나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실전에서 깨닫고 얻는 배움 등이죠. 


작품들은 현실과 이상 외에 또 다른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진리의 시금석이죠.

 

625(2020), 625 pieces of Ferrita ceramic magnet, Dimensions variable (each magnet: 10×10×8(h)mm).


인간의 생은 유한합니다. 그에 비해 창작은 생명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우주에서 실체 있는 뭔가를 건져야 하는 심정처럼 막막할 때가 있지 않은가요?
예술가들은 그전에 그 실체들을 다 건지죠.
 

현재 준비 중인 전시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프랑스 아를의 루마(LUMA), 코펜하겐 갤럭틱 센터, 미국 마이애미 슈퍼 블루, 바르셀로나 솔로 하우스(Solo House)에서 야외 프로젝트와 영상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국내에서도 미술관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더네이버, 인터뷰, 전시, 구정아 작가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신유나(인물), PKM 갤러리(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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