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미식독해

향을 맡고 씹고 삼키며 오감으로 맛을 느끼는 미식은 3차원의 영역이다. 신체적 활동으로서의 미식을 넘어 보다 고차원의 미식 세계로 인도해주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이들을 만났다.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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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튀김
  국립과천과학관 임두원 박사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가 인식하는 세상의 범위는 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감지하는 것은 오감이지만, 세상 저변을 확장시키는 것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튀김의 발견>의 저자 임두원 박사는 튀김이란 요리 장르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의 미식가는 음식을 미각을 포함한 오감으로 느낀다고 하죠. 저는 거기에 하나 더 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로 지식요. 재료가 튀겨지는 원리, 튀김이 발전한 역사적 배경 등을 알게 되면 튀김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어요.”

임두원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고분자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기업에서 연구 개발 부문에 종사하다 정부 기관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한 정통 과학자다. 현재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대중이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조리의 과학적 원리를 비롯해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까지, 오직 ‘튀김의, 튀김에 의한, 튀김을 위한’ 책을 만들 정도로 튀김에 깊은 애정을 지닌 그가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던 튀김을 탐구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20여 년 전 처가가 돈까스 전문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제가 아내와 결혼할 즈음 처가에서 돈까스 전문점을 오픈하게 됐어요. 직원도 완전히 다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게 문을 열다 보니 저도 일손으로 종종 투입됐어요. 전문 셰프님께 배워가면서 고기를 두드리고 빵가루를 묻혀 튀겨도 봤죠. 난생처음 직접 튀김을 만들어본 건데, 직접 해보니 정확한 재료 계량과 배합부터 튀기는 시간 등 돈까스를 만드는 과정이 제가 늘 해온 과학 실험과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과학자를 탐구하게 만드는 것은 대개 호기심이다.

즐기는 대상이었던 튀김을 직접 만들어보며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으로 입 안에 즐거움을 주는 이 음식이 어떤 과학적 원리로 완성되고,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등 여러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학의 대중화 업무를 하다 보니 과학자 입장에서 본 튀김은 어떤 것인지 대중에게 한번 소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다 보니 책을 처음 쓸 땐 판매 목적보다는 논문처럼 한번 정리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개인 사비로 책을 내 인터넷으로만 판매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인쇄해서 배송해주는 식이었죠.” 한 과학자의 튀김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거의 7~8년 전,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간 것이 5년 전이니 말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음식 관련 인문학이나 에세이 서적은 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요리의 과학적 원리를 분석한 책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요리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분자요리 책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고요. 과학을 잘 모르는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요리 과학 서적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요.” 그리고 기나긴 잉태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은 그가 튀김을 탐구 대상으로 발견한 것처럼 한 편집자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어 정식 출간하게 되었다. 

 


누군가 옆에서 조목조목 설명해주듯 친절한 구어체로 쓰인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과학자가 쓴 책인데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꽤 많네?’ 분명 튀김의 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는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너끈히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오직 과학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과학적으로만 분석해 집필했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딱딱한 논문처럼 너무 어렵다고 말하더라고요. 무엇보다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이었기에 과학만 이야기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저야 과학자니까 과학이 익숙하지만 대중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대중에게 익숙한 사회, 문화, 역사적 관점을 버무려 글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튀김의 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대부분의 가설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전문 분야가 아닌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파헤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임두원 박사는 공부하며 집필했고 때론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에 감탄하며 글을 구성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스스로도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며 사랑이란 감정이 더욱 견고해지잖아요. 저 역시 튀김의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면서 단순히 맛있는 음식으로서 튀김을 즐기는 것을 넘어 튀김 자체를 애호하게 되었어요.”

<튀김의 발견>을 집필하는 과정은 임두원 박사가 튀김을 바라보는 태도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책을 쓰며 많은 셰프님을 만나 자문을 구했고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셰프님들이 생각보다 요리의 과학적 원리에 관심이 크다는 점도 알게 되었어요. 방법적인 부분 위주로 배우고 익혔는데 그동안 궁금했던 과학적 원리를 알게 되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이런 부분에 다들 목말라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을 비롯해 요리를 즐기는 분들이 궁금해하는 음식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한번 정리해서 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현재 요리의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요리의 과학적 원리와 인문학적 이야기를 짚어주는 책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아마 1장의 주제는 튀김이 될 것이다.

“2장은 면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면을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면이 왜 맛있는지 많이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면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책은 아마 꽤 많은 장으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 세상엔 다양한 요리의 종류와 장르가 있고 저마다 존재 이유와 원리가 있으니까요.” 설명만으로도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는 이 책의 출간 시기는 그 역시 장담하지 못했다. <튀김의 발견> 집필 과정이 그러했듯 하나의 장을 완성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과정이기에.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임두원 박사의 꾸준한 탐구와 배움의 과정은 요리라는 세계의 저변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읽어두면 약이 되는 미식 칼럼
   J정약국 정재훈 약사   

 

모든 덕후의 꿈은 ‘성덕’이 되는 것이다.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인 성덕은 덕질하는 대상과 직접 교류하거나 덕질을 업으로 삼아 덕업일치를 이룬 자를 지칭한다. 그러나 성덕 못지않게 수많은 덕후들이 목표로 삼는 이상향이 등장했으니 바로 ‘능덕’이다. ‘능력있는 덕후’의 줄임말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을 갖추고 더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덕질에 활용하는 이들이다. 정재훈 약사는 능덕의 모범적인 예를 보여준다. 


정재훈 약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캐나다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한 후 한국에 돌아왔다. 현재는 J정약국을 운영하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여러 방송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사이 자신의 이름을 건 두 권의 저서도 냈다. 여기까지 그의 이력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전문 직업인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행보에는 조금 독특한 점이 있다. 그가 고정 패널로 출연한 <대식가들>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청정 식자재를 찾아 떠나고 탐구하며 미식 관련 담론을 펼치는 TV 프로그램이다. 그의 저서인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과 <정재훈의 식탐> 역시 음식을 구심점 삼아 쓴 책이고, 매달 미식 문화 잡지에 지금 요식업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소식을 건강, 사회, 문화적인 시선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기고한다. 그는 약사인 동시에 푸드라이터로 불린다. 그가 글을 쓰는 약사를 넘어 푸드라이터로 불리는 까닭은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음식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아니라 음식 자체가 글의 단단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활동의 시작은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을 써내면서부터예요. 책을 출간하고 나서 여러 분야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출판사에서 저에게 원고를 청탁했을 때 슈퍼푸드 같은 식자재의 영양과 건강에 초점을 맞춘 책을 써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그는 식자재의 선택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 먹느냐이고,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건강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사회, 문화, 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출판사도 정재훈 약사의 의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쓰고 싶은 대로 써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다. “책을 내고 많은 사람이 왜 약사이면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썼느냐라고 물었어요. 저 역시 나름의 이유를 찾기 위해 많이 생각했는데 결국 내린 결론은 ‘이유가 없다’였어요. 그냥 좋아서 한 것이거든요. 원래 진짜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잖아요.” 그의 음식에 대한 애정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맛집을 찾으면 주말에 앞장서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곤 했어요. 중학생 때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식빵 위에 비엔나소시지와 여러 재료를 올려 내가 만든 피자라며 대접하고는 했죠.” 늘 맛있는 음식을 찾고 즐기는 어린이였던 그는 커서 국내는 물론 한 달에 한 번 이상 해외로 나가 다양한 미식을 경험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을 넘어 셰프의 의도와 철학 그리고 음식에 담긴 가치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미식가가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는 어린 시절 어린이 잡지에 실린 공상과학 소설을 필사하며 즐거워하고, 30대에 들어서서는 글쓰기를 따로 공부하는 등 ‘글쓰기’라는 또 다른 대상을 덕질했다. 그래서일까, 그 역시 마감 앞에서는 한없이 고통스러워하지만 그가 글을 쓰는 과정은 노동보다 유희에 가깝다. “칼럼의 주제가 정해지면 일단 그 음식을 계속 먹어봐요. 다양한 실험도 해보죠. 머릿속으로 정리한 정보만 늘어놓다 보면 남들과 비슷한 글이 나오게 되거든요. 누구나 다 하는 얘기를 저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예를 들면 달고나 커피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달고나 크림만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며 질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우유 대신 물 위에 달고나 크림을 얹어보기도 했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다른 궁금증도 고민하다 보면 글의 방향이 잡혀요.”

 

 

그는 자신의 약국을 운영하며 매달 몇 편의 푸드 칼럼을 쓰고 지금도 새로운 음식 관련 책을 집필 중이다. 중간중간 방송과 강연 스케줄도 소화해낸다. 물론 음식에 대한 덕질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단 일주일 만에 포기를 선언하게 만들 극한 스케줄을 수년째 소화하는 데에는 덕심 그 이상의 원동력이 있지 않을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 궁극적인 지향점이나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다양한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그릇된 정보는 바로잡고 올바른 사실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특정 전문 영역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혹자는 저에게 식품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약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싫지 않고 오히려 공론화해줘서 고마워요. 혹여 그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말한다면 전공자 입장에서 바로잡아주면 되는 거고요.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그만큼 잘못된 정보도 많고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성역처럼 여기기보단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보완해주는 것이 훨씬 건설적인 방향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는 아티스트의 창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예술 작품들 역시 오직 아티스트만의 아이디어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라 말했다. 당대의 예술 사조 , 이전의 예술가들의 작품, 그리고 동료와 라이벌의 작품 등 수많은 것들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영감과 영향을 받는다며 창작 역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게 아닌 수많은 상호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예술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의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새로운 창작에 대한 어떠한 실마리를 얻는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냐며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능덕의 덕질은 어떠한 확고한 목표와 동기에 따른 노동보다 훨씬 생산적이고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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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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