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시간을 꿰고 반복을 쌓아 만든 삶의 무늬

실과 종이, 타이벡, 가죽 등 일상의 사소한 재료를 매일 기도하듯 쌓고 감아서 만드는 신혜림의 장신구 세계.

2020.10.29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As time goes rain falls-plane III, brooch, leather, 90×100×9mm, 2015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반복은 권태이지만 공예가에게 반복은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것도 치밀하고 완벽한 세계. 신혜림은 금속공예가이지만 다른 재료를 더 많이 불러모은다. 실, 섬유, 가죽 등 오랜 시간 모아온 재료들을 감고, 꿰고, 쌓는다. 친밀하고 일상적인 재료의 끝없는 반복은 너무나 치밀하고 아득해서 작은 장신구마저 거대한 조각처럼 다가온다.   


장신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신혜림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반복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꺼리는 단순반복이 신혜림 작가에게는 작업의 언어이자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단순반복을 오래 하다 보면 밀도가 생기고 그 밀도는 결국에는 치밀함으로 가 닿고 끝에는 감탄을 부르는 완성도를 낳는다. 그래서일까. 신혜림의 작업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해 보이지 않고 반복의 시간이 고스란히 결(texture)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결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대한 시간을 담보한 퇴적층으로 보이면서 손바닥만 한 장신구도 우주처럼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가죽이나 실 같은 일상의 재료에 그의 뿌리이기도 한 금속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핵심에 놓여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의 근원을 인장처럼 숨기듯 새기는 것 또한 신혜림 작가의 언어다. 


금속은 사실 신혜림 작가에게 꺼려지는 영역이었다. 공예미술학과에 들어가 전공을 결정해야 했을 때 그는 당연히 도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금속은 날카로운 쇠의 소리와 철 냄새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은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달라붙는 운명처럼 잘못된 수강 신청으로 금속이 전공이 되었다. 되돌리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공방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또 하필 금속 사포질. 주어진 일이니 미련하게 매일매일 문지르게 되었는데, 그 단순반복적인 사포질이 전혀 지루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금속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Draw a plane with a plane, brooch, silver&mix material, 99×111×5mm, 2016

 

그렇게 금속의 세계에 진입하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작업 욕구가 타올랐다. 그러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작업을 놓게 되는 순간이 그에게도 닥쳤다. 결혼과 육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 두 세계에서 언제나 우선권은 해야 하는 일인 것이 현실. 꺼리던 금속 작업도 좋아지고 하고 싶은 작업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때 집과 방과 돌봄의 세계에 섬처럼 갇혀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넘쳐흐르다 보니 작업실이 아닌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작업을 꿈꾸며 직장 생활 중 모은 섬유 조각, 가죽 조각을 엮고, 쌓고 실과 바늘로 꿰는 방구석 작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작업실이 없는 생활 동안 그리고 작가라는 이름을 감추고 있을 때도 그는 한순간도 단순반복을 쉬지 않았다. 방 안에서도 시간을 쌓고 재료를 쌓으면서 겹을 만들고 겹을 모아 퇴적이라는 시간의 증거를 만들어냈다.


그 긴 시간을 건너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간 방구석에서 쌓아온 것들은 수많은 전시로 이어졌다. 작업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그의 말처럼, 그리고 마치 끝날 것 같지 않게 무한대로 쌓이듯 반복되는 그의 작업은 그림이 되고, 장신구가 되고, 거대한 설치 조형물이 되었다. 정직한 노동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공예의 세계에서 그는 오늘도 시간의 무늬를 그리듯 마음의 지도를 그리듯 시작과 끝이 없는 반복의 작업을 한다. 일상과 꿈에 대한 어떤 영역 구분도 없이 사소한 재료를 꿰고, 감고, 쌓아가는 그의 반복 작업은 그래서 더 삶에 대한 정직한 은유 같다.   


어둑한 작업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즈음, 그는 내일 누군가 전시하자고 제안을 해도 당장 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작업이 쌓여 있다는 말을 했다. 시간과 영감에 목말라하는 작업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부럽기도 하고 넘치는 자랑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20년 넘게 쉬어야만 할 때도 쉬지 않고 쌓고, 꿰고, 만들어온 그에게서 나온 말이라서 그 말은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인 고백처럼 들렸다. 

※이 글을 쓴 김은주는 ‘유리편집’이라는 이름으로 유리 작업을 하는 편집자다.

 

 

사유 공간
투명 조각에 사진을 입혀 조형물을 만드는 고명근 작가의 개인전. 사진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찍은 사진 중 한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을 입힌 조각 20여 점을 선보인다. 
일시 10월 25일까지 
장소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문의 02-418-1315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국내 최대 규모의 장 미쉘 바스키아 회고전.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작품 세계를 다방면으로 조명한다. 150여 점의 대표작들이 전시될 예정. 
일시 10월 8일~2021년 2월 7일 
장소 롯데뮤지엄 문의 1544-7744

 

 

 

더네이버, 아트, 전시, 신혜림, 장신구 세계

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신혜림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