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피부에 스민 그리스의 감각

포토그래퍼 프랑수아 알라르는 그리스로 떠났다. 아크로폴리스나 유명 관광지 사진은 단 한 점도 찍지 않았다. 지엽적인 정보를 배제하고 그의 피부에 스민 그리스의 감각만을 프레임에 담았다.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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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피사체를 바라보아도 우리는 다 다르게 인식한다. 각자의 고유한 관점과 인지 체계를 거쳐 대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경험은 매번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클릭과 터치 몇 번으로 전 세계의 어떤 장소와 대상이든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여행의 의미가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자신만의 관점으로 여행지를 직접 느끼고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린 팬데믹 시대, 루이 비통은 역으로 아티스트만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행지의 면면을 감상할 수 있는 사진집을 발간한다. 10월 출간 예정인 여행 사진 컬렉션 ‘패션 아이(Fashion Eye)’의 신작 <그리스(Greece)>가 바로 그것. 패션 아이 컬렉션은 루이 비통이 2016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연작 단행본으로 패션 포토그래퍼 특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특정 도시나 지역, 국가의 사진집이다. 이번에 출시된 단행본 제작에 참여한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는 96페이지에 걸쳐 자신만의 시선으로 정교하게 짠 프레임에 그리스의 숨어 있던 말간 얼굴을 담아냈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인테리어와 홈 퍼니싱을 비롯해 패션, 정물, 초상화까지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포토그래퍼다. 이 사진집은 그의 지극히 사적인 여행 기록으로 유명 관광지와 피사체는 단 한 컷도 담지 않았다.

 


상투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한 프랑수아 알라르의 <그리스>는 몇 가지 추상적인 단어들로 대변된다. 첫 번째 키워드는 ‘블루’. “그리스만의 색을 꼽는다면 선박, 국기, 바다와 하늘 등 역시 블루 아닐까요.” 하늘과 바다는 물론 책상 위 놓인 책 한 권, 어느 유리문에서 발견한 컬러 글라스까지 다양한 채도와 명도, 그리고 질감의 블루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같은 색의 반복이지만 코발트블루부터 블루 그레이까지 조화로운 화성처럼 강약을 조절해가며 이어지는 색의 향연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프랑수아 알라르만의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디테일은 컬러의 변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평범한 바다일지라도 풍경에 스며든 딥 그린 컬러의 창문 프레임을 함께 담아낸다거나 무성하게 자라난 나뭇가지와 하늘을 함께 포착해 면을 분할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별함을 부여한다. “저는 디테일이 더 많은 스토리를 들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디테일을 통해 장소를 더욱 깊이, 그리고 친밀하게 모험할 수 있어요.” 

 


루이 비통 패션 아이 컬렉션 <그리스>를 표현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조금 더 추상적이다. ‘그리스적 관념’으로 그리스의 정신과 신화, 그리고 문학은 이번 작품집의 단단한 주춧돌이 되었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책에 실릴 사진을 보여주기 전에 루이 비통 측에 알렉산더 리버만의 <그리스, 신과 예술>이란 책을 건넸다고 한다. “리버만의 책 덕분에 그리스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이 책은 이번 프로젝트에 고전 조각상, 건축물, 풍경을 다 함께 믹스하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그는 그리스는 사진의 대상이기보다 사색의 대상으로 더욱 적합하며, 그리스적 사고가 사진적 표현보다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프랑수아 알라르는 어떠한 비주얼 레퍼런스를 참고하기보단 헨리 밀러의 그리스 기행 <마루시의 거상>, 키프로스섬을 배경으로 한 로런스 더럴의 <비터 레몬스>, 알렉산더 리버만의 <그리스, 신과 예술>, 크리스티앙 제보의 그리스 관련 서적, 그리스 고전 문학의 프랑스어 번역판 등 다양한 텍스트를 레퍼런스로 적극 활용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스쳐 가며 대상을 포착했다는 느낌보단 그리스의 숨겨진 부분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파고드는 듯한 분위기를 낸다. 어떤 사진적 요소들이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지 구체적으로 콕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홀로 주변의 사물을 살펴보고 자신만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을 즐긴 작가의 탐구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레퍼런스 삼은 텍스트를 탐독하며 고뇌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패션 아이 컬렉션 <그리스>는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적인 여행 기록이다. 그래서 이 사진집을 대변하는 마지막 키워드는 ‘개인적 감각’이다. 패션 아이 컬렉션은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용지 종류, 제본 방식, 레이아웃이 작품별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책은 작가와 디자이너, 인쇄 기술자와 출판인의 혼이 고스란히 반영된 합작품이다. 이번 신작의 구성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사진의 배경이 된 장소나 피사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따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를 망라한 책자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요. 모든 여행이 그렇듯 제 개인적인 여정의 순간과 상상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감상자는 지엽적인 정보를 최대한 배제한 채 프랑수아 알라르의 시선으로 선별한 이미지 그 자체를 온몸의 감각을 이용해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상자는 아티스트의 시선을 체험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개인적 감각으로 이미지를 한 번 더 해독하는 과정을 거친다. 프랑수아 알라르와 감상자, 두 사람의 시선과 감각으로 그리스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셈이다. 

 


인류가 여행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기 전 인류는 생존을 위해 매일 수십 킬로미터씩 이동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경기 참여, 신전 참배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길을 떠났고,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했다. 그 이후에도 인류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국경을 넘었다. 여행의 목적과 방식은 역사와 함께 진화해온 셈이다. 루이 비통은 1854년 창립 이래 여행 예술(Art of Travel)를 충실히 구현해오고 있다. 패션 아이 컬렉션 역시 이러한 행보의 일환. 프랑수아 알라르의 <그리스>는 이러한 루이 비통의 정신을 여실히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집은 현시대의 여행은 보다 예술적이고 관념적인 행위로 진화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일깨운다.    

 

 

 

프랑수와 알라르와의 몇 가지 Q&A

Q.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의 어머니는 아트 매거진의 에디터로 활동하셨습니다. 헬무트 뉴턴, 자크 뒤랑 등 많은 사진작가들이 집에 찾아왔죠. 저는 촬영이 있을 때마다 학교에 가는 대신 그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집에서 지켜봤어요. 저의 첫 사진은 제 방의 침실이었는데, 아마 그 기억이 제가 인테리어에 관심을 두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Q. 한때 <GQ>, <배니티 페어> 등 여러 매거진을 위해 패션 사진을 찍었어요. 그 세계를 떠난 이유가 있을까요? 개인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무척 흥미로웠죠. 그 과정에서 최대한 예술에, 그리고 그들의 예술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패션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되었어요.


Q. 부인과 함께 그리스에 있는 또 다른 섬인 시미(Symi)에 별장을 구입하셨다고요. 나이가 들수록 바다, 섬의 바위와 돌, 섬의 역사, 섬을 비추는 빛의 아름다움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소중히 느껴집니다. 그곳에 집이 있는 덕분에 흔적을 남기고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요. 


Q. 그리스에 접근하는 방식이 굉장히 문학적이에요. 여러 관련 도서를 자주 언급하셨죠. 제가 그리스를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그 책들을 읽었으니까요. 제가 그리스를 알아가는 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과 더불어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작품도 간과하면 안 돼요. 그리스 문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깃든 작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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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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