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해외에서 먼저 더 주목받은 패션 디자이너 유나양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더 주목받으며 세계를 무대 삼아 작업을 펼치는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그들의 성취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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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단단한 뿌리를 내린 
패션 디자이너 유나양

금속은 담금질을 통해 단단해지고 나무는 가지치기를 할 때 더욱 곧게 자라 탐스러운 과실을 맺는다.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대개의 사람들은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실패의 고통을 견디고 다시 지면 위에 두 다리를 곧게 세워 디뎠을 때 비로소 뿌리가 자라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뿌리는 깊어지며 우리가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만든다. 패션 디자이너 유나양과 대화를 나누며 이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19 F/W 시즌의 비저블 컬렉션에는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뉴욕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무대 삼아 활동하는 유나양은 킴 카다시안의 가족과 가수 캐리 언더우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 등 뉴욕 상류층 고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 하이엔드 패션 디자이너다. “치열하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치른 첫 번째와 두 번째 패션쇼가 모두 성공적이었어요. 그땐 지금보다 어리고 순진해서 주변에서 겁준 거와는 달리 의외로 뉴욕은 신진 디자이너에게 호의적인 도시라고 오해했죠.” 유나양은 한국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이탈리아 마랑고니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현지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영국 세인트 센트럴 마틴 스쿨에서 더 공부하며 유럽 패션계를 오롯하게 경험했다. 뉴욕 패션계에 대한 경험은 전무한 상태에서 뉴욕에 간 지 8개월 만에 선보인 뉴욕 패션위크 첫 데뷔 무대가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 <WWD>의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정교한 드레이핑과 모던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러플, 손맛이 느껴지는 디테일이 뉴욕 패션계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 와중에 두 번째 컬렉션도 탄탄대로로 이어졌으니 오해할 만도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컬렉션에서 좌절이 찾아왔다. “세 번째 쇼에서 과욕을 부려 기존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보였어요. 그러나 철저하게 외면당했죠.” 원래 높게 날수록 하강할 때 가속이 붙는 법이다. 연이은 성공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던 가운데 예상치 못한 세 번째 컬렉션에 대한 무관심으로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녀의 작은 사무실에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모든 걸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한 줄기 희망이 그를 비췄다. 20세기 폭스사와의 컬래버레이션 제안이 들어온 것. 그렇게 리즈 위더스푼과 로버트 패틴슨이 출연한 영화 <워터 포 엘리펀트>의 극 중 의상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했고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이때 함께 준비한 것이 유나양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2012 S/S 시즌의 드림 컬렉션(Dream Collection)이다.

 

2019 F/W 시즌의 비저블 컬렉션에는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세 번째 컬렉션에서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이전의 컬렉션에서 반응이 좋았던 부분을 저버리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린 것이었어요. 당시의 깊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역으로 희망을 줄 수 있는 꿈 속 판타지 같은 무드의 드림 컬렉션을 선보였죠. 실패를 바탕으로 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준비했고, 지금까지도 제 디자인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플라워 디테일, 섬세한 비딩과 자수 등이 이 컬렉션에서 나왔어요.” 유나양은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디자이너로 알려졌다. 뉴욕 패션계에서 동양인이 선보이는 하이엔드 패션은 성공할 수 없으니 노선을 바꾸라는 조언에도 고개를 저었고, 레이스와 자수 등 대량생산이 힘든 디테일은 줄이고 원단과 색상을 조정해 가격을 내리라는 뉴욕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수석 바이어의 말에도 싫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은 그의 대쪽 같음이 지금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유나양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나양이 소신을 고집하며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디자이너는 아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뒤흔드는 것들에 단호할 뿐이다. 큰 슬럼프가 준 깨달음이기에. 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올 때 내가 과연 10년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일지 생각해 판단한다. 데뷔 이후 10년간의 행적 중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라고 꼽는 이 슬럼프는 유나양을 보다 단단해지게 만드는 담금질이었고 스스로를 곧게 세울 수 있는 가지치기였다.

 

 유나양은 최근 인종, 나이, 체형에 상관없이 당신은 아름답다는 주제를 담은 유 아 뷰티풀 컬렉션도 선보였다. 

 

20세기 폭스사와의 컬래버레이션과 드림 컬렉션을 진행하며 유나양은 다시 상승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이 무렵 자신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또 다른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다. “2014년 머라이어 캐리의 전 남편이자 유명 프로듀서인 닉 캐넌이 론칭한 스니커즈 브랜드의 후원을 받아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때의 계약 조항 중 수익금 일부는 취약 계층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국립 아트 스쿨에 기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죠. 그 학교에서 제가 마스터 클래스를 맡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고요. 당시엔 참 특이한 조항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막 브랜드를 론칭한 지 5년 차, 브랜드를 키우고 운영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처음엔 그저 계약 조항을 지키기 위해 취약 계층 아동과 청소년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회적 이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나양은 최근 인종, 나이, 체형에 상관없이 당신은 아름답다는 주제를 담은 유 아 뷰티풀 컬렉션도 선보였다. 

 

“저는 기본적으로 편견을 싫어해요. 2019 F/W 시즌엔 각자 주인공이 되는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는 주제의 비저블 컬렉션(Visible Collection)을 진행했어요. 남성 쌍둥이 모델, 플러스 사이즈 모델, 동양인 모델이 오프닝과 클로징을 장식했죠. 가장 최근 컬렉션인 유 아 뷰티풀 컬렉션(You’re Beautiful Collection)에는 인종, 나이, 체형 등과 상관없이 당신은 아름답다는 주제를 담았죠.” 유나양은 컬렉션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외적인 활동으로도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지난해 코트라와 협업해 진행한 성수동 장인 돕기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 성수동 구두 장인들이 값싼 공임으로 고생한다는 기사를 읽고 기획하게 됐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유나양은 장애인 구두 회사 아지오, 청년과 어르신의 노동력을 잇는 서울 가죽 소년단 등을 방문해 멘토링을 해주고 이들과 함께 롯데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2010 F/W 시즌 뉴욕 패션위크에서 데뷔한 유나양은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그사이 유나양 하면 어떤 브랜드인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10여 개 국가에 진출했을 만큼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지금도 모나코의 첫 매장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년만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지금까지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찾는다면 컬렉션을 할 때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마음가짐으로 했다는 점이라 생각해요. 실패해도 된다라는 심정으로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게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그러는 동안 브랜드를 시작할 때 꼭 이루고 싶었던 몇 가지 목표들, 예를 들면 전 세계 1위의 백화점 매장에서 제 옷을 판매해보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기도 했고요.” 누가 봐도 유나양의 첫 10년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목표는 어떨까. “AI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에 따라 패션의 유통 구조나 판매 방식, 구매 패턴이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그런 미래가 도래했을 때 새로운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요.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해 묻는다면 내가 어떤 식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유나양은 은퇴 후엔 사회적인 활동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환경 파괴의 주범인 패션 업계가 보다 지속 가능한 생산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패션계의 저임금 노동 착취 같은 문제의 해결책 등 패션 업계에 몸담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가 빛을 볼 때가 오기 전까지는 아마 유나양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가며 유나양만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브랜드는 더욱 견고해지고 세상에 충분히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나는 예상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깊은 뿌리를 세상에 내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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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태구(인물), 유나양(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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