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가외로 치부되는 삶

언니의 죽음과 한 남자의 희생 속에서 목숨을 건진 유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유원>. 악의는 없지만 가시 돋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유원은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선다.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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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 읽고 잠시 숨을 고른 나는 뒤에 붙은 ‘작가의 말’ 첫 줄로 눈을 돌렸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작년 초,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무렵의 나는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고 있었다.”  미운데 밉다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결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만난 문장이라 ‘열렬히, 미워’라는 표현이 생경하면서도 어쩐지 속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찰랑찰랑하게 차오른 슬픔에 1센티미터쯤 더 깊이 잠기게 되었다. 홀가분한 슬픔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

  
이 책의 주인공 유원이 아저씨를 묘사하는 표현은 미묘하다. “아저씨가 절뚝이며 거실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 집 전체가 미세하게 몇 도쯤 기울어졌다는 걸 나만 느꼈을까.” “사기꾼은 꼭 저런 말투를 쓸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말하는데도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시작도 안 한 느낌이랄까.” “나는 왜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는지.” 유원은 따끔따끔한 가시 위에 앉은 것처럼 불편한 자세를 자꾸 고쳐 앉으면서 짐짓 웃는다. 아저씨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기가 너무 어렵다. 


위층 할아버지의 사소한 실수로 집에 불이 났다. 집에는 여섯 살 유원과 열일곱 살인 언니만 있었다. 언니는 아파트 11층에서 구해달라고 손을 흔들다가 결연하게 동생을 이불에 싸서 아래로 던진다. 불에 타든 떨어지든 살기는 힘들 것이었으나 기적적으로 한 남자가 ‘이불아기’를 받아낸다. 화물트럭 운전사였던 아저씨는 무사히 아이를 구조했으나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고, 오른쪽 다리뼈는 산산조각 났으며 오른팔은 골절상을 입고 몸 전체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당한다. 일 년 넘게 재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평생 절게 되었다. 그런 그는 유원의 가족 근처를 끊임없이 맴돈다. 염치없이 신세지고 당연한 듯 요구한다. 그는 자신이 ‘의인’이었던 시절 받은 찬사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아저씨를 미워할 수는 없다. 미워해서는 안 된다. 그는 유원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딛고 살아난 자의 삶. 희생 후에 온 삶. 유원의 삶에는 죽은 언니와 장애를 갖게 된 아저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에게서 그날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그날 이후, 이전에 나를 몰랐던 사람들조차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를 위로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웃을 때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어하고 약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행복을 바랐다면서도 막상 멀쩡한 나를 볼 때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했다.”


부모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겠으나 유원은 끊임없이 어룽거리는 언니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유원은 그들이 자신이 ‘이불아기’인 것을 알고 있을지 가늠한다. 눈빛을 의심하고 움츠러든다. 구석에 숨고 혼자를 자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원에게 친구가 생긴다. 조심스럽게 우정이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삶은 독자적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대신 살아주기를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어떤 삶을 덤이나 가외로 치부한다. “건강하게 커서 너도 꼭 다른 사람을 돕고 살아라.” “네 목숨은 너만의 것이 아니니 평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악의 없는 말들이 한 사람의 등에 가시처럼 박힌다. 그 가시가 날개가 될 수 있을까. 유원이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격려도 충고도 없이, 가만히 마음을 얹는다. 새살이 돋는 속도로 자라는 아이의 등 뒤에 서서.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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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디스크와 갑상선암이라는 인생의 풍랑을 겪고도 매일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수영을 배우는 저자의 고군분투기. 업무, 육아, 운동 모든 순간 숨 막힐 만큼 최선을 다해온 작가가 수영을 시작하며 일상 속 여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저자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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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처음 마주하는 위기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처럼 사방에서 날아온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극복해온 작가들의 소개와 그들의 작품을 담았다.
저자 이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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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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