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다시, 피카소

코로나 19로 일상이 멈춘 사이 미술 전시의 시계도 느리게 흘렀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가 전복되는 경험을 하며 기존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피카소를 화두로 한 더페이지 갤러리의 전시 <PRINCE/ PICASSO>에서 흥미로운 시선을 만났다.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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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도자 특성을 살린 커다란 저그 Grand Pichet a De′  cor Informel, 5 October 1963. 

부엉이를 그리고 부분적으로 유약을 입힌 방식의 바닥 타일 Chouette, ca 1956~57

페인팅으로 사람을 형상화한 Femme avec Jupe a Rayures, ca 1955. 

아스코스 저그 Pichet a De′  cor Geometrique, ca 1953. 

짐승의 머리를 그린 접시 Tête de Faune, 31 October, 1947. 

춤추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 넣은 피처 Danseurs Estompes, 1957.

단순한 형태의 사람을 표현한 둥근 저그 Abstraction Ge′  ome′  trique, 8 January, 1954. 

 

발로리스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살펴보는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투박하고 거칠지만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도자 작품들. 대상을 표현한 방식에서든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든 원초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말년의 피카소가 평면 페인팅 대신 30년 가까이 도자 작업에 전념한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게르니카’와 같은 대형 작품이 아니더라도 페인팅 작업은 물리적으로 체력 소모가 크다. 그에 비해 규모를 작게 제한할 수 있고 연속 제작이 가능한 도예는 예순을 넘긴 피카소가 작업하기에 적합했을 거라고 평한다. 물론 흙이라는 비정형 재료가 작가의 손과 뜨거운 가마를 거쳐 작품으로 변하는 드라마틱한 탄생 과정은 지치지 않은 창작 열의와 호기심을 가진 피카소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흙을 만지는 도예가들이 늘 말하는, 원초적인 자연의 물성이 전하는 평온이 피카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전쟁이 끝나고 요란했던 세상이 잠잠해질 무렵 피카소 또한 편안하고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하니,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동물과 여인, 자연의 모습 등이 표현된 도자기에서 느껴지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위트, 따뜻함, 부드러움과 같은 감정은 말년의 그를 대변하는 듯하다. 

 짐승의 머리를 그린 접시 시리즈. Tête de Faune, ca 1947~48. 

피처 Danseurs Estompes에서 발견된 춤추는 여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Joie de Vivre’, 1957. 

과감한 붓터치와 색을 컨트롤해 새를 표현한 접시 Oiseau, 1963.

 

피카소가 회화 작업에서 조소 작품으로 창작 매체의 변화를 거친 것은 운명에 가깝다. 1946년 그가 65세에 떠난 여행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당시 연인이었던 프랑수아 길로트와 함께 프랑스 남부 골프 주앙(Golfe-Juan)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 시기에 인근 도시인 발로리스(Vallauris)에 있는 마두라 도예 공방의 주인 조르주와 수잔 라미에 부부를 만난다. 1년 후 다시 마두라 도예 공방을 찾은 피카소는 라미에 부부의 지원 속에서 도자 작품을 자유롭게 제작한다. 그렇게 여름마다 작업실을 찾아 도자의 여러 가지 기법을 테스트하고 연구한 피카소는 1948년 가족과 함께 발로리스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프랑스 남부의 낭만적인 풍경과 지중해 색조로부터 영감을 얻은 피카소는 가마에서 흙을 굽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색을 도출하는 난도 높은 숙제를 도전으로 여겼다. 도예의 실용적인 기능을 살리면서도, 입체적인 형태와 회화를 결합해 노장의 작가가 발휘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을 모두 쏟아붓는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71년 89세의 피카소가 마지막 작품을 제작할 때까지 그가 창조한 도예 작품은 무려 4000점에 이른다. 


팔순을 넘긴 피카소는 이미 20세기 큐비즘을 창시한 천재 아티스트로 불후의 명성을 누렸다. 그가 만든 도예 작품이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마두라 도예 공방을 통해 재생산하도록 했다. 피카소로부터 작품 에디션 제작을 허가받은 라미에 부부는 적게는 25점, 많게는 500점의 에디션을 생산한다. 생전의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이 인근 어느 시장에서나 쉽게 발견될 수 있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도예의 본래적 의미, 그 범용성에 걸맞게 누구나 쉽게 자신의 작품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더페이지 갤러리 전시 < PRINCE/ PICASSO> 모습.   


더페이지 갤러리는 피카소의 도자 작품 10점을 공개했다. 사실 전시 기획의 출발은 도자기가 아니었다. 2012년 스페인 피카소 말라가 미술관에서 진행된, 피카소를 재해석한 리처드 프린스의 콜라주 작품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PRINCE/ PICASSO>이다. 더페이지 갤러리가 리처드 프린스에 주목한 이유는 2020년 현재의 세계 이슈와도 여러모로 맞물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일상을 멈추고 거리 두기를 하는 지금, 기존의 사회적 가치가 전복되고 새로운 가치가 재구성되는 것을 경험한 시점에서 이와 비슷한 화두를 던져온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리처드 프린스는 197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문제적 예술가다. ‘강인한 미국 남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말보로(Marlboro)’ 담배 광고를 차용해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재위치시킨 작품을 발표하며 법적 논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당대의 담론장을 교란하고 전복하며 새로운 가치 체계를 들이민 인물이다. 광고뿐만 아니라 빌럼 데 쿠닝, 앤디 워홀, 세잔, 피카소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을 해체하고 재해석했으니 창작이냐 도용이냐의 문제는 늘 작가를 따라다녔다. 워낙 센세이셔널한 행보에 기존의 것을 끌어와 새로운 맥락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작업을 미술계는 ‘전유 예술(Appropriation Art)’이라 이름 붙였고, 그는 전유 예술의 대표자로 평가받았다. 스페인 피카소 말라가 미술관은 논란의 주인공인 리처드 프린스에게 피카소를 재해석한 작품을 공식적으로 의뢰한다. 그리고 2012년 그는 피카소 작품을 끌어와 다시 창작한 회화, 드로잉, 콜라주 시리즈를 피카소 말라가 미술관에서 대거 발표한다. 피카소 평면 작품의 한 부분을 오리거나, 다른 이미지를 덧대는 등 피카소 작품 속 맥락을 읽으며 새로운 작품으로 창작한다. 장난 같고, 창작물의 고유성이나 저작권과 같은 개념을 무시한 작품 같지만, 우리는 리처드 프린스가 앞서 꼬집은 대로 기존의 것을 지속적으로 차용하고 재생산하는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산다. 감염병 사태로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지금,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려면 현대 사회의 정립된 체계와 가치관을 거스르는 리처드 프린스의 작업과 그 의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갤러리는 그 부분에 집중해 전시를 기획한다. 

 

 

리처드 프린스 본인도 피카소의 예술과 전혀 무방한 작가가 아니었다. 미술사에서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던 피카소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인터뷰를 통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배운 모든 드로잉의 기초가 피카소로부터 왔다는 것. 간단한 직선을 그리더라도 늘 피카소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말이다. 이번 전시가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과 함께 피카소 평면 작품이 어우러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대형 미술관급이 아닌 다음에야 이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대신 갤러리는 피카소의 도예 작품을 에디션이 아닌 진품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최근 미술 신에서 천재 화가의 말년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피카소가 생전에 발로리스에서는 물론 프랑스 파리에서 100점이 넘는 도자기 전시를 직접 주도한 적이 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뉴욕 커트 발렌타인 갤러리를 시작으로 몇 년간 여러 도시의 주요 갤러리 전시를 통해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 바 있다. 그러다가 지난 몇 년 전부터 미술 시장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전시에 피카소의 도자기가 등장하며 다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주 단적인 예로 세계 주요 경매 3사 중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공개된 피카소 도자 작품의 낙찰가가 한화로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고 있으니 전 세계 컬렉터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미술사적 가치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 2017년 영국 요크 아트 갤러리는 아텐버로(Attenborough) 컬렉션으로 피카소의 도자 작품을 전시하며 다양한 렉처를 진행했고, 2018년에는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이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도예 작품 160점을 소개하며 그 가치를 재조명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탈리아 파엔차의 국제 세라믹 뮤지엄이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의 도예 작품 중 50점을 선별해 도예 작품 전시를 열었다. 피카소의 도예에는 지중해 문화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자 스타일과 지역 특유의 요소가 반영되어 있는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까지 마요리카 도기의 주산지로서 빛나는 도자 역사를 써온 파엔차에서 열린 전시이기에 현대 미술관에서의 조망과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2011년 리처드 프린스가 피카소 작품을 토대로 재해석해 선보인 작품들. 스페인 피카소 말라가 뮤지엄에서 2012년 전시된 작품들이다.  

 

더페이지 갤러리는 기획 의도에 따라 피카소를 대표하는 이미지와 형식을 반영한 작품보다, 작품 속 내러티브에 집중해 고른 피카소의 도예 작품을 선정했다. 발로리스 지역의 도예 특색을 반영한 검고 붉은 계열의 물병(저그)과 접시, 피카소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해 특별한 애착을 갖게 된 부엉이 모티프의 타일 작품 등이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들 사이에 놓여 있다. 특히 부엉이 타일은 토멧(Tomette)이라고 하는, 발로리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닥 타일 형식을 띤다. 유약을 부분적으로 발라 구운 기법 등 피카소가 의도한 창작의 흔적과 발로리스 지역의 흙, 건축에 사용된 도자 요소와 방식 등을 모두 내포한다. 느리게 쉬어 가는 동안 도자기를 감상하며 그에 깃든 피카소의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자료제공 더페이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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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더페이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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