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 시대의 기획자_더 그레잇 커미션 전민경 대표

아무리 콘텐츠가 훌륭해도 뛰어난 기획이 받쳐주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그 어느 때보다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 시대, 탁월한 기획자 두 사람을 만났다.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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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경력을 쌓은 이후 비영리 현대미술 창작 기관 더 그레잇 커미션을 창립해 이끌어가고 있는 전민경 대표.

 

에디터가 된 이후로, 글 쓰는 것이 좋아 이 일을 업으로 삼았다고 말하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전업 작가의 길은 어때?’ 물론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작가로서의 능력치는 제로에 수렴할 뿐 아니라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닥 없기에 힘들다고 손사래 친다. 그리고 말이 괜히 길어질까봐 이런 생각을 속으로 삼킨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잘 전하기 위해 이야기를 담을 그릇을 고르고 전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사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과정이 더욱 흥미롭다고. 최근 온라인을 통해 전시를 개막한 SeMA 벙커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전시 <너머의 여정>을 기획한 더 그레잇 커미션의 전민경 대표가 질문했다면 생각을 삼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는 고개를 끄덕였을 테니까. 


“처음에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러나 공부할수록 나의 고민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보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경험하는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것이 전시 기획과 맞닿아 있음을 알았죠.” 졸업 후 전민경 대표는 아르코미술관에 인턴 큐레이터로 입사해 일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의 메카 대학로라는 위치의 특성을 살려 두 달간 미술관 안에서 공연을 펼치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후 뉴욕 MoMA PS1, 더 키친 복합예술센터, 국제갤러리 등을 거쳤다. 오랜 기간 전시 기획자로 일하며 커리어는 견고해졌다. 연차가 쌓일수록 일에 대한 만족감은 높아졌지만 자신의 행복과는 반비례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휴가 때마다 남미, 동남아시아 등지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자원봉사를 계기로 다른 삶의 형태를 경험하면서 내 식견이 굉장히 좁았다는 사실을 깨닳았어요. 지금까지 이룬 성취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더라고요. 그 무렵부터 그저 멋진 전시, 관람객이 많이 오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닌 주변의 누군가에게 위안을 건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졌어요.” 그 역시 뉴욕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 신분으로 인턴 큐레이터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일하며  뮤지엄 패스를 이용해 도시의 아주 작은 미술관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니곤 했다. 외로운 시절 그가 위안을 찾을 수 있던 공간은 미술관이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받은 위로를 이제는 돌려주고 싶어진 것이다.

 


2015년 결성한 더 그레잇 커미션은 지금까지 프로토타입 전시를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세 개의 전시를 기획했다. 2018년 <그가 달려왔다>, 2019년 <삼각의 영역>, 그리고 SeMA 벙커에서 진행되는 <너머의 여정>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 음악,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이 결합된 라이브 전시다. 공연 예술과 시간 예술이 함께하는 전시란 점은 동일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를 터. 전민경 대표는 이 세 전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실 세 전시가 모여서 대서사시가 돼요. 하나의 세트인 셈이죠.” 첫 번째 전시였던 <그가 달려왔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감정의 높낮이와 변화, 그리고 우리가 찾아내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며 개인에 대해 탐색했다. 두 번째 전시인 <삼각의 영역>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전의 전시에서는 특정 감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되찾아보았다면 <삼각의 영역>은 자신과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 공간과의 관계 등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진행되는 전시 <너머의 여정>에서는 개인과 주변을 이루는 관계 너머에 있는 더 큰 세계로 향하는 일종의 여정을 다룬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회복을 이야기한다. 

 

더 그레잇 커미션이 그동안 진행해온 대서사시의 마지막 장이 되어줄 전시 <너머의 여정>. 설치미술,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 본능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그가 전시를 통해 계속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 전시가 하나의 대서사시였으며 세계가 점점 확장되는 흐름이라는 기대 이상의 답변을 듣자 반대로 라이브 전시를 고수하는 이유 또한 궁금해졌다.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이유가 있을 듯했다. “독일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의 개인전 전시장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철거 전 아파트가 전시 공간이었는데 한겨울에 창문을 다 연 것도 모자라 선풍기까지 동원했죠. 뉴욕의 칼바람까지 합세해 창문이 깨질 듯 흔들리고 커튼이 미친 듯이 휘날렸어요.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누구도 전시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인 감각이 모두 살아났고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이처럼 사람들이 제가 기획한 전시를 감상하며 모종의 창작적 흐름 안에서 무언가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관람자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일깨워주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의 바람처럼 더 그레잇 커미션은 계속해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관람자로 구성된 3차원적인 전시를 넘어 소리나 움직임 등이 감각을 깨우고,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시간조차 전시의 일부가 되는 4차원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중이고,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민경 대표가 이끄는 더 그레잇 커미션(The Great Commission)의 의미는 소명이다. 그렇다면 그가 전시 기획자로서 갖는 소명은 무엇일까. “공간 안에 들어간 순간, 이 공간이 무언가를 말한다는 걸 느끼게 하는 힘, 그리고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걸 구현해내고 싶어요. 더불어 어떠한 장소에서 전시를 하든 더 그레잇 커미션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전시 기획자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힘들고 외롭던 때 수많은 전시를 통해 위안을 받았듯, 제가 기획한 전시로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이 제가 전시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이고 제 소명이라 생각해요.”    

 

 

 

 

 

더네이버, 인터뷰, 더 그레잇 커미션 전민경 대표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향아(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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