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트로 만든 비키니 11만원대 8 by 육스.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의 여름을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여름을 더 여름답게 보낼까 궁리하면서. 여름을 준비하는 나만의 방법은 인터넷 쇼핑몰의 수영복 카테고리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수영복 쇼핑의 끝은 언제나 비키니냐 원피스냐의 선택지에 다다른다. 이건 짬뽕과 짜장면만큼이나 선택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디자이너의 온갖 상상력이 투영된 수영복이 지천이라 신나게 쇼핑몰을 휘젓고 다니며 혼자 ‘오오’ 감탄사를 내뱉기도 한다. 덕분에 비키니와 원피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이 나지 않으면서 수영복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양해졌나 하는 탐구 차원의 서핑은 심도를 더해간다.  

수영복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일부 기록에서는 고대 로마의 여성 운동선수가 요즘의 수영복과 비슷한 복장을 입은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의 브래지어와 같은 스트로피움과 허리에 둘러 입도록 만든 스커트 형태의 파뉴가 대표적이다. 근대 여성의 수영복 착용은 19세기부터다. 1800년대에는 물에 젖어도 살이 비치지 않도록 능직물인 서지 원단이나 플란넬, 알파카로 만든 것을 입었다. 상의는 긴 원피스에 가까운 형태였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거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속바지를 입어 지금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수영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수영복 위에 덧입는 비치웨어를 상상하면 얼추 비슷하다. 

1920년대에 들어서야 요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원피스 수영복이 등장했다. 무릎 아래와 팔꿈치까지 몸에 밀착되는 모양, 지금의 원피스 수영복과 흡사한 형태이다. 게다가 이 시기 미국에서는 해변에 수영복 경찰이 상주했다. 마치 1960~70년대 한국에서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을 한 것처럼 짧은 수영복에 대한 규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수영복은 점차 짧아졌다.그리고 1930년대, 울 소재 수영복은 라텍스와 나일론의 개발 덕에 기능적인 면모와 디자인적인 면면을 모두 충족시키게 된다. 때마침 마릴린 먼로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서며 원피스 수영복이 널리 알려지는 기폭제가 된다. 

1940~50년대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에 의해 복식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 물자가 부족해 당시 원피스 수영복을 만들기가 어려워 천이 적게 드는 비키니를 고안한 것이다. 이는 원피스 수영복도 과감하게 등을 노출하고, 홀터넥 디자인이 출시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수영복이 더욱 대담하진 건 1960년대부터. 가슴 라인을 더 깊게 파고 골반이 훤히 드러나는 비키니가 인기를 얻는데, 원피스 수영복 역시 허벅지 위로 높게 커팅한 디자인이 유행한다. 우리나라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보던 하이컷 원피스 수영복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찔한 비키니 위에 핫팬츠를 겹쳐 입거나 하늘거리는 소재의 원피스를 레이어링하는 스타일이 여름스타일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잔잔한 변화를 더해가며 수영복은 점차 진화했고, 가장 극적인 트렌드로 떠오른 건 바로 2015년에 이르러 등장한 래시가드. 본래 수상 스포츠를 할 때 입는 기능성 스포츠웨어로 피부 마찰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이 운동복이 비키니와 원피스 수영복을 밀어내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래시가드는 수영장과 해변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을 점령했는데, 기이한 현상은 오히려 수영복을 입은 것이 민망해진다는 것이었다. 해외에 나가서 한국인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건 래시가드를 입은 사람을 찾으면 될 정도니 말 다 했다. 유행도 좋지만 옷을 입을 때, 때와 장소, 상황에 맞춰 입는 ‘T.P.O’ 원칙이 수영복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몽땅 잊은 듯싶었으니까. 아마도 몸매의 단점을 가리기 급급한 마음이 집채만 한 유행을 북돋운 것 같았다. 요즘 들어서 디자이너들은 래시가드를 응용한 디자인을 차츰 선보이고 각자의 취향과 몸매를 고려한 디자인을 출시하며 이 우스꽝스러운 유행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2 모노그램 패턴을 넣은 비키니 상의 58만원, 하의 48만원 모두 루이 비통. 3 티끌 없이 맑은 빨간색을 사용한 홀터넥 수영복 가격 미정 에르메스.  4 코르셋 형태를 차용한 꽃무늬 원피스 수영복 37만8000원 토리비치. 

최근에 눈에 띄는 건 패션의 흐름과 비슷하게 레트로한 무드가 살짝 묻어나는 패턴 수영복이 득세하는 것이다. 애니멀 패턴과 타이다이 패턴, 플로럴 패턴이 여성스럽거나 과한 분위기보다는 복고풍의 무드로 정돈되고, 형태 중에서는 모노키니나 하이웨이스트 비키니, 원숄더 수영복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점차 수영복의 카테고리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키니와 원피스로 단순하게 나뉘던 것이 디자이너의 손길에 의해 무섭게 번식하기 시작했다. 딱히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입어도 무방할 만큼 자연스러운 디자인까지 다채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비키니의 상의와 하의를 세트로 입기보다는 본인의 취향에 맞춰 믹스 매치하는 재기까지. 여기에 수영복과 매치할 수 있는 비치 웨어 이야기를 더한다면, 수영복의 현재 트렌드를 위해 책 한 권을 써야 할 판이다. 

하나 더 짚고 가야 할 건 지속 가능성. 자동차부터 패션까지 모두 환경을 외치는 시대에 수영복도 예외일 순 없다. 감각적인 수영복을 만드는 스웨덴 디자이너 피쉬나 패션 포토그래퍼 출신 디자이너 카사 라키, 휴양지 룩을 만드는 마라 호프만 등 모두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공정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윤리적으로 만든다. 염치 없이 비닐 쇼핑백 하나 안 쓴다고 친환경이라 우기는 브랜드가 아니다. 

사실 어떤 수영복을 고르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스타일이다. 무얼 선택하든 수영복은 여름의 충실한 벗이니까. 다만 아름다움의 강박 없이 우리는 모두 충분히 예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일년 열두 달을 꽉 채워 사는 이 도시에서 여름은 기필코 숨을 고를 수 있는 계절이니까.  

더네이버, 휴양지 룩, 수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