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여성 대표 3

가장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문화계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깨고 나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여성 대표 세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20.01.10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여성성’이 지닌 부드러운 힘
출판사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중학생 시절, 나에게는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는 책등을 훑어보는 취미가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제목과 표지를 발견하면 무작정 빌려 읽어보곤 했다. 그렇게 손에 쥔 책들 중 문장이나 이미지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작가는 물론 장르조차 제각각인 이 책들의 대부분이 하나의 출판사, ‘마음산책’을 태생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당시의 나이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확고한 정체성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출판사 마음산책을 이끄는 이는 정은숙 대표다.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는 소도시에 살던 그녀는 늘 다락방에서 책을 읽는 소녀였다. “책 속에는 제가 직접 갈 수 없는 세계들이 펼쳐졌어요. 제가 머무는 작은 도시를 벗어나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이었죠.”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소녀는 자연스레 글과 함께하는 일과 삶을 원했다. 첫 시작은 잡지 기자였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단행본 편집자의 길에 접어들었는데 이게 웬걸, 그녀에게 더 아름다운 천국이 펼쳐졌다. 깊이 있게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만의 시간 안에서 글을 다듬는 일은 작은 다락방에서 해 지는 줄 모르고 책에 골똘히 몰입하던 소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다.

 

 

마음산책에서 출간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정은숙 대표의 방.

 

정은숙 대표는 그녀가 편집자로 일한 지 15년 차가 되던 2000년 마음산책을 설립했다. 당시 그녀의 도전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많았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출판 영업부 출신들이 차리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편집자 출신인 정은숙 대표가 좋은 책을 만들 수는 있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영업적인 노하우가 없는 그녀가 유통망을 잘 확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던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좋은 책이라면 알아보는 이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문을 연 마음산책은 2020년, 정확히 창립 20주년을 맞이한다. 그녀는 마음산책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데에는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제가 마음산책을 차리던 시기에 때마침 인터넷 서점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영업을 통해서만 서점에 책이 입고되고 돈을 받을 수 있던 과거와는 또 다른 시대가 펼쳐진 거죠.” 시대적 변화, 그리고 좋은 책은 팔릴 것이다라는 믿음은 마음산책만의 견고한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하는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신념은 옳았다는 응답을 받았다.

 

 

(위 왼쪽)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작가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써 내려간 산문집 <이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작가적 모험을 감행했다.  (위 오른쪽) 마음산책의 베스트셀러 <마음사전>의 후속작 격인 <한 글자 사전>. 김소연 시인이 자신의 나름대로 정의한 한 글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래 왼쪽) 영화 <마더>의 원본 시나리오를 담은 책 <마더 이야기>.  (아래 가운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박완서의 말>. 소설가 박완서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아래 오른쪽)  김금희 작가의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표지 이미지는 곽명주 일러스트레이터가 맡았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신호탄을 올린 마음산책의 중요한 모토 중 하나는 ‘새로울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시도한 것이 바로 기획된 문학이었다. 당시 소설과 시는 오롯이 창작자의 원고를 고스란히 책에 담아내고 에세이의 경우 기존에 여러 매체에 투고한 글을 한데 묶어 내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은숙 대표는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편집자 의도를 반영한 문학을 기획했고, 그중에서도 기획 에세이를 특화했다. 편집적인 부분에서는 문학 장르는 표지부터 내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사진 작품과 일러스트 등을 접목해 소장 가치를 높이고, 반대로 예술서는 생산 단가와 판매 가격을 낮춰 특정 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은숙 대표가 주목한 것은 ‘여성성’이었다. “저는 여성성이 지닌 부드러운 힘을 믿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을 제2의 성이라고 칭했죠. 제2의 성은 늘 제1의 성인 남자 뒤에 서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반장은 당연히 남자, 부반장은 여자였거든요. 제2의 성은 기득권에 속해 앞장서 있는 제1의 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과 스스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는 눈, 즉 겹의 눈을 지니고 있어요. 이는 다각적인 시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자, 그런 까닭에 이해의 폭이 넓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것이 ‘여성’이 아닌 ‘여성성’이라는 점이다. 둘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성’이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 생물학적 요소라면 ‘여성성’은 차별을 경험하며 습득하는 사회적 요소다. 마음산책은 오픈 초기부터 김승희 시인의 시와 여성주의 미술을 선보이는 윤석남 작가의 작품을 결합한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 이야기>, 인도계 미국인 여성 작가라는 경계선에 놓인 소설가 줌파 라히리의 작품 시리즈 등 여성성에 대해 논하는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마음산책은 ‘마음으로 떠나는 산책, 사유의 산보’란 의미와 ‘독서로 이루는 마음산의 책’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헤겔은 인류의 역사는 정반합이 반복되는 변증법을 통해 발전한다고 말했다. 정은숙 대표는 젠더 간 갈등이 첨예해진 지금 우리 사회는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하나의 집단과 반대되는 집단이 충돌하는 과도기라 말했다. “2019년 출판계를 관통한 키워드는 차별과 혐오였어요. 지금 우리는 성별 간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넓게 본다면 강자와 약자, 다수자와 소수자의 차별 문제이기도 해요.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 개개인의 특성은 모두 달라요. 누군가의 특성이 다수 혹은 강자의 편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고유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성차별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은숙 대표는 소위 말하는 유리 천장을 뚫고 나왔다. 자신이 이뤄낸 성취에 안주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음 세대의 여성을 위해, 더 나아가 사회의 소수자를 위해. 부드럽고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 궁극에는 개인의 고유함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다.

 

 

 

여성 영화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
영화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

요즘 영화계에서 여성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영화들과는 다른 감도로 세상을 포착한 여성 감독들의 빛나는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 역시 심심치 않게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발아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영화인이 주류를 차지한 영화계에서 어떠한 흔들림이나 동요 없이 자리를 지켜온 1세대 여성 영화인들이 기름진 배양토를 다져놨기에 가능했다. 오랜 시간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온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배양토를 다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난 12월 5일 심재명 대표는 기쁨의 축배를 들었다. 프랑스 샴페인 브랜드 뵈브 클리코가 주최한 제2회 뵈브 클리코 볼드 우먼 어워드 코리아 수상자로 지명된 것. 뵈브 클리코 볼드 우먼 어워드는 남편과 사별한 뒤 1805년부터 뵈브 클리코를 이끈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의 정신을 기리며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에게 주는 상이다. “다른 훌륭한 여성 기업인도 많은데 제가 이 상을 받으니 조금 쑥스럽네요. 그래도 여성 영화인을 격려해주셔서 무척 감사한 마음이에요.” 수상 소감을 묻자 마지막에 잊지 않고 여성 영화인을 언급하는 모습에서 그들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났다. 


1988년 심재명 대표는 서울극장 기획실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명기획이라는 홍보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다가 1995년 명필름을 꾸리며 영화 제작자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부터 영화 제작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좇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게 되었어요.” 그녀는 첫 행보부터 남달랐다. 영화사 설립 이래 처음 선보인 작품 <코르셋>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외모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가 탄생한 시기는 바야흐로 1996년.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혁신적인 시도임을 알 수 있다. 이후 그녀는 감독이 기획부터 제작, 연출에 대한 권한을 모두 쥐고 있던 이전 시대와 달리 제작사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획해, 제작자가 이끌어가는 영화 제작 시스템을 정립하는 데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심재명 대표는 당시 신인 배우였던 전도연을 영화 <접속>에 캐스팅해 스타덤에 올리고, 박찬욱 감독이 맡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와이드스크린 시네마스코프(2.35:1)를 사용하는 등 그녀만의 혜안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극영화 제작사 최초로 시도한 애니메이션인 <마당을 나온 암탉>, 스포츠 영화와 여성 여럿이 주인공인 영화는 흥행하기 힘들다는 불문율을 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위안부 문제에 목소리를 낸 <아이 캔 스피크> 등 24년 가까이 쉬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지금 사회에 던져야 할 메시지를 내포한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물론 그 안에는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부조리함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위 왼쪽) 당시 신인이었던 배우 전도연을 캐스팅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린 영화 <접속>.  (위 오른쪽)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당시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와이드스크린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하며 영화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아래 왼쪽) 열악한 국산 애니메이션 시장에 화두를 던진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 기간만 7년이 걸렸다.  (아래 가운데) 영화계의 흥행 불문율을 깨고 신선한 소재로 큰 호응을 얻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아래 오른쪽) 위안부 문제에 대해 숨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심재명 대표는 영화 제작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물론 여성 영화인 모임의 공동 센터장,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공동센터장을 맡으며 여성 영화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도 쉬지 않는다. “2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면서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제가 선배 여성 영화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음 세대의 여성 영화인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느껴요.” 그녀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등을 이룩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움직임에서 심재명 대표는 희망도 보았다. “제가 처음 영화계에서 일을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여성 영화인의 수도 많이 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여성 영화인이 지속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영화인과 영화 속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죠. 2019년만 해도 <벌새>를 찍은 김보라 감독이 굉장히 화제가 되었고, <걸캅스>, <미쓰백>과 같이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도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죠. 할리우드 쪽에서는 최고의 영화 그룹이자 기업인 디즈니가 일찍부터 이러한 수요를 캐치하고 <겨울왕국>, <알라딘>처럼 여성 주인공이 부각되는 작품을 선보이며 되려 상업성 면에서 경쟁력을 획득했죠.”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된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심재명 대표는 가장 바람직한 민주 사회가 구현되는 정점에 페미니즘의 실현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소수자가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목표라고. 그녀가 말한 목표로 향하는 길은 멀고 결코 쉽지 않다. 언제쯤 당도할지, 끝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힘들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그녀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도착점은 결코 신기루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켜야 할 스스로에 대한 믿음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김인선 대표

이름 속 ‘딜링(Dealing)’란 단어를 보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을 상업 화랑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여기서의 딜링은 ‘다루다’의 의미로 윌링앤딜링이란 이름은 ‘원하는 것을 다루다’라는 뜻이다. 2012년 문을 연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정체성은 단 하나다. ‘하나의 기성 체제를 따르는 공간이 아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며 아티스트들이 보다 자유롭게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김인선 대표가 원하고 다루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처음 설립 이후부터 참신한 전시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다루며 새로운 대안 공간을 원하던 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김인선 대표는 2019년 특히나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방배동에 있던 공간을 서촌으로 옮겼고, ‘2020 제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으로 선정되며 일주일의 반은 제주에서, 나머지 반은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아티스트의 개성이 돋보이는 전시는 지속되고 있고, ‘현대미술의 이해’, ‘여성의 시각으로 읽는 미술사’, ‘작가 연구’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쉬지 않고 선보였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이름은 원하는 것을 다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촌으로 이전 후 오픈 기념 전시였던 로와정 작가의 개인전. 관객들이 특정 구조 안에서 공통적인 감각을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작가의 길을 염두에 두고 있었죠. 졸업을 앞두고 내가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껴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큐레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전시 기획하는 일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대안 공간 루프에 들어가며 큐레이터로서의 삶이 시작됐죠.” 대안 공간 루프에서 기획자로 처음 일을 시작한 그녀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대림미술관, 국제갤러리,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등 상업 화랑, 미술관, 비영리단체, 공공예술, 비엔날레 등 다양한 체제의 공간과 행사에서 미술 기획자로 경력을 쌓았다. “처음 큐레이터를 시작하며, 업계에 대해 잘 모르니까 10년은 군소리 없이 바짝 일하자고 생각했어요. 어떤 기관에 어떤 사람이 될 거야 이런 목표는 없었어요. 10년간 최선을 다해서 일하면 전문성이 생기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죠. 그런데 신기하게 미술 기획자로 일한 지 10년째 되던 해 나의 공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자유롭고 유연하다는 예술의 특성을 생각해 어떠한 틀에 한정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최근 열린 고재욱 작가의 개인전 <고재욱의 클리셰 극장 : Yellow>의 전시 전경

 

회화 작가 김수영이 선보인 공간 구상 전시 <인벤션>. 평면 공간에서 3차원 공간으로 옮겨진 김수영 작가의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 김인선 대표는 전시 작가가 정해지면 그녀의 의견을 관철하기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집중한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가 나오고 있고 새로운 세대는 그들만의 언어와 화법을 지녔다. 그러면 김인선 대표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쪽보다는 새롭게 맞춰가는 쪽을 택한다. 그녀는 예술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매 순간 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어떤 업계보다도 유연한 사고를 지닌 이들이 모이는 미술계에서 여성의 위치는 어떠할까 궁금했다.

 

 

직접 쓴 소설의 각 챕터를 대표하는 오일 페인팅으로 구성한 고재욱 작가의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 

 

“직접 일하며 겪은 상황을 떠올리면, 직접 발로 뛰는 실무진은 거의 여자예요. 그런데 희한하게 실무진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남자예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사실 지금 말씀드린 건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제 경험은 그랬어요.” 가장 진보적인 집단인 미술계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도 여성 작가의 작품은 배제한다거나 권위 있는 미술사 책에서 여성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등 서구 역시 백인 남성 위주의 흐름이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의 근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차별인지도 모르는 차별의 역사가 있다. 

 

 

고독의 형태를 찾아 나선 장성은 작가의 작품. 지난 10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전시됐다. 

 

한 집단이 그리고 사회가 변하려면 수많은 크고 작은 충돌을 겪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두드려야 할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비즈니스 우먼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면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기 위해서 이걸 해야 할까, 이런 걸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보단 스스로 정한 방향성을 쉽게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그걸 알아주고 여러분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있어요.” 


 

 

 

더네이버, 인터뷰, 문화계 여성 대표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허재영, 김태종,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