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나는 다른 질문을 받고 싶었다. 나의 외곽을 들추어 나도 몰랐던 얼굴을 봐주길 바랐다. 내 속 어딘가에 웅크린 포부와 조촐한 기쁨과 부끄럽지 않은 취향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그들이 쳐놓은 첫 번째 덤불에 걸려들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몇 년생이세요? 몇 학번이세요? 무슨 띠예요? 한 인간의 존재적인 레벨에서 나이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대답은 같은데 질문의 어휘가 저렇게 다채롭다니(‘빠른’ 90, 느린 ‘87’ 같은 셈법은 아예 치지도 않았다). 그들이 몇 살인지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몇 학번인지 무슨 띠인지 궁금하지 않은 나는 실성한 게 틀림없었다(타인을 알아가는 기초적인 단계에 무관심한 사람이 가는 지옥은 따로 있을 것이다).   

기어코 몇 살인지를 알게 된 뒤에는 다음 절차가 기다린다. 노화의 정도와 나이의 갭을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 몹시 어려 보인다, 약간 어려 보인다, 그 나이로 보인다 중 하나를 받아들고 즐거워할지 낙담할지를. 화제는 어젯밤 TV 화면 프레임을 가득 채운 여자 배우로 잠깐 옮겨간다. 대박 늙어 보이더라. 어쩜 그래? 그 배우가 중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시상식 자리에서 시금치가 낀 이를 드러내고 웃기라도 한 것처럼. 곧 사람은 몇 가지 미묘한 경고로 늙기 시작한다고 유튜버식 노화 강좌가 이어진다. 30분 만에 패턴을 찾는 신경과학자가 된 걸까, 아니면 나이 감별사 자격증을 딴 걸까. “엄지와 검지로 얼굴 피부를 당겼다가 놓아봐. 그것 봐. 늙어서 탄력이 없으니까 피부가 돌아오려면 한참 걸리는 거야.” 자기 먼저 콜라겐과 엘라스틴과 피부 아래 지방이 줄어들어 입체가 사라진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어떤 남자들은 이야기의 틈새로 테스토스테론 감소가 두드러진 몰골인 채로 일찍 찾아온 아내의 폐경기를 재빨리 고자질하기도 한다. 적당히 재력 있고, 적당히 양식 있고, 적당히 이기적인 최상위 적격자들조차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상대가 되려면 서른 살이 넘으면 끝이라는 소리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들은 인생의 풍부한 기간이 끝났음을 합세해서 애도하는 것일까? 나이 든 몸을 얼마나 불가능한 기준에 적용시켜야 하는 걸까?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생에 가장 힘든 두 번의 시기는 사춘기와 노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춘기와 노년 사이의 어느 지점이 최고로 난해한 시기 같다. 얼굴선은 완만해지고, 일주일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늘 전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어깨를 똑바로 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잊어버린 채 앞으로의 즐거운 기대와 양립할 수 없는 긁힌 마음들이 행렬을 이룬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이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 것은
내가 벌써 마흔다섯이야! 잠깐만.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그리고 나이를 다시 들여다본다. 그 순간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달콤한 것도 쓰라린 것도 없다. 라이크라를 더는 입을 수 없고 스키니진은 영원히 생각도 말아야 한다는 게 잠깐 슬플 뿐.  

20세기 후반의 몇십 년을 살면서 내가 본 것은 민화나 전설, 생활 속에서 울창하던 전통적인 나이 숭배가 탈진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일까, 나이 먹지 않는 일이 중요해진 것은? 그동안 어떤 세월이 그 미신 안에 갇혀 있었던 걸까? 늙기 싫다고 안 늙고, 죽는 게 무섭다고 죽지 않을까? 지구에서 보낸 한 해가 매년 얼굴에 나타나는 이상 더는 나이를 속일 수 없다. 아무도 연대기가 무색하도록 영원히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설사 가능하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이 든다는 것과 노년, 죽음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산문에는 이런 단락이 있다. “마흔 살과 쉰 살 사이의 10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과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힘겨운 세월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삶과 자기 자신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불만족에 시달리는 나이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편안한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 모든 것에 국경이 처져서 넘어갈 수 없다는 주제가 그 자리를 다시 압도한다. 왜 그들은 왜 자기들이 마흔 중반을 넘겼고, 여전히 멋지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왜 지금 자기 모습을 사랑한다고 세상에 선언하기 위해 잘 갖춰 입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왜 흥미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한 가치를 모르는 척할까? 어째서 최고의 순간은 다 지나간 것처럼 말할까?

나는 늘 상대성을 믿었다. 어느 아침은 체에 밭쳐 씻은 셀러리처럼 파릇파릇한데 오후의 중간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각이 급습한다. 석양이 지면 중년의 시작 같다가 8시가 넘으면 경박스럽도록 다시 젊다고 느낀다. 그러고 나서 밤 11시에는 너무 늙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직 죽음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신은 자연이라는 정의에 대해 더 생각할 뿐이다. 스피노자와 아인슈타인은 똑같이 신은 자연이라고 말했다. 신은 오후 동안만 사는 나비 안에 있다. 블레이크는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보고 야생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았다. 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는 확실히 몸에 대한 사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 나비가 죽는 것을 걱정하며 날아다닐까. 

나는 인식의 해체에 동반하는 모순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는 육체적 부패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래서 시간이 머무는 모든 날에 스며드는 철학의 연약함과 부자연스러움을 알고 싶었다. 나이가 드는 것이 안겨주는 뜻밖의 기쁨을 알고 싶었다. 

어느 날,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을 밀고 나가다가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돌아가 되찾을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잊었다. 컨디션은 다시 채비를 갖출 여력도 없는 최악의 상태로 내달렸다. 급기야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빼앗길 것도 없고 나를 위해 할 것도 없는 순간이 왔다. 우리 안에서 나와야 세상 보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자각도 따라왔다. 아래로 스치지만 바닥을 만나지 않은 커브처럼. 셰익스피어의 말이 아니더라도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는다”. 행동하고 망치고 후회하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나았다. 사람들이 물으면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지 않은 지점에 나를 데려다 놓으려고 궁리 중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새롭게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변덕스럽고, 표현이 강하며, 위트 있고, 내재된 문화적 관심으로 살았다. 새로 시작될 미래는 전적으로 제반 상황이 주는 기분에 속해 있지 않았다. 나에겐 다른 것이 생겼다. 허영과 우둔함을 이해하는 예민한 귀, 좁혀진 관심사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재능을 따를 자유. 나는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좋아지는지 비로소 정확히 알게 되었다.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너는 아직 어려”라고 이야기할 때 그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어떤 때 생각의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 핀에 박힌 채 벽 위에서 꿈틀거리는 기분이 든다. 침울한 시간은 예전보다 길지 않다. 어떤 의미로 회복력이 훨씬 빨라졌다. 가끔 몇 살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는 나의 대답은 “노!” 특정한 옛날로 돌아가느니 헤밍웨이를 흉내 내 머리에 총을 댈 것이다. 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을뿐더러 내가 보낸 세월을 밟고 지나갈 다른 청년들이 부럽지 않다.   

어느 저녁, 절반이 훼손된 시력 때문에 일 외에는 활자를 들여다볼 생각도 못 하다가 성경 다음으로 난해한 책을 읽고야 만 순간은 K2 봉우리에 무산소 등정을 한 듯한 기분을 주었다. 창호지를 눈앞에 댄 듯 희미해진 시력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볼 때 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흡수하는 것은 내 눈이 아니라 나 자체였다. 과장하면 물리적인 자아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매년, 나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누구와 가까워지는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개인적인 경험의 끝까지 가봤다고 할 수 없다 해도, 어떤 나이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가 늘 원했던 그 사람이 되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새롭게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새 출발을 부정하는 세태에 나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현재에 발을 딛고 산다는 것, 단순히 머무르는 게 아니라 깨어 있다는 것. 더 이상은 필요 없다.  

나에겐 항상 보이지 않은 모퉁이에서 빵 냄새를 풍기며 나이가 주는 찬란함을 들려주는 친구가 있었다. 작년에는 아주 유쾌하고 사려 깊으며 다정한 친구들이 새로 생겼다. 가끔 나이 든다는 것은 순수한 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작년에 죽었다면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만났으니까. 동시에 갑자기 심장이 멈춰버릴 가능성도 늘어났다. 어떤 의미로는 그 사실에 기대기도 한다. 나 자신, 친구의 죽음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 언제나 충격을 받았고, 내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밤, 후배들에게 몇 가지 경험을 전하며 호흡이 뒤섞이는 사이, 차가 터널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들에게 품위 있고 영감을 주는 친구가 되지 못하고 와인 몇 잔에 기진맥진해졌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 그 자리에 남은 일행이 내가 간 뒤 얼마나 더 마셨는지 궁금해하다가 잠들기 바로 직전, 믹 재거 앞에 놓인 것처럼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앞날을 공상하는 것이다. 
꿈길의 끝에 다른 표지판이 보인다. 너, 조금 나이 들었구나. 그렇지만 축하해. 이제부터는 마음껏 살아. 넌 자격이 있으니까. 

※ 이 글을 쓴 이충걸은 <GQ KOREA> 초대 편집장이자 에세이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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