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밭에 누워 단잠에 빠진 10대 소녀 조에게 무의식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이는 조의 꿈일까, 어떤 계시일까?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영화는 조의 하루를 쫓기 시작한다. 여느 10대처럼 아침부터 엄마와 싸우고 학교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조는 음악시간에 동급생 페드라의 노래를 듣고 단번에 매료된다. 페드라와 가까워지리라는 희망에 찬 조의 하루가 밤을 향해 가다 갑자기 멈춘다. 영화는 2008년 아테네에서 실제로 일어난 경찰 폭력 사건을 토대로 한다. 현실의 시민들이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면, 자클린 렌주 감독은 피해자 조의 시점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조의 행동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관객을 위무한다.
감독 자클린 렌주

아티스트 김윤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묘지의 빈 무덤에서 시작된 영화는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이야기부터, 아르헨티나 시기와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한국으로 귀향한 현재에 이르는 여정을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김윤신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제자이자 예술적 동반자, 김윤신미술관 관장인 김란과의 만남이다. 그는 작가가 작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이자, 이제 호적에 오른 수양딸이다. 영화제 GV에 등장한 김란 관장은 자랑스레 말했다. 자신이 ‘누구보다 김윤신을 먼저 알아봤다’고. 이에 작가는 김란 관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노라 화답했다. 평소 노년 여성을 향한 관심이 컸기에 연출 제안을 수락했다는 임선애 감독은 이렇듯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연대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
감독 임선애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대담하고도 영리하게 각색한 영화. 나이지리아 출신의 쌍둥이 감독은 이야기의 무대를 1923년 6월의 영국 런던에서 21세기 나이지리아 라고스로 옮겼다. 상류층 여성 클라리사와 퇴역 군인 셉티머스의 하루를 따라가는 흐름과 클라리사의 10대 시절 기억을 교차하는 구조는 동일하다. 여기에 나이지리아의 사회상이 반영되어 또 다른 맥락이 형성된다. 예컨대 빈부격차와 계층간 차별, 부패한 정치 상황 등이 부각되는 한편, 영국 식민 지배의 영향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원작 소설을 꼬집는다. 특히 옛 친구들이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이 긴 잔상을 남긴다. 줄곧 날을 세우던 클라리사는 그 밤, 처음으로 헐벗은 얼굴을 드러낸다.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써본 사람이라면 그 표정의 의미를 모르지 않으리라.
감독 아리 에시리, 추코 에시리

이것은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제시의 엄마 엘라와 어린 여동생 멜리, 남자친구 룩스의 슬픔과 실의에 집중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잠든 밤 침잠하듯 소파에 몸을 누일 때,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언니의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낼 때, 제시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을 때를 무심하게 비춘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별안간 스페인령 휴양지 테네리페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제시가 죽지 않았다면 그날 떠나야 했던 휴가지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날, 한 아이가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주인공들은 동일한 환영을 마주한다. 상실을 온전히 치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려 깊은 영화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찬찬히 깨닫게 할 뿐이다.
감독 산드라 볼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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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지형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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