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나 주립 미술관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카라바조의 두 작품. 카라바조가 몰타 감옥에서 탈출해 시칠리아를 여행하던 중 제작한 작품이다. (왼쪽) ‘라자로의 부활’, 1609, 380×275cm. (오른쪽) ‘목자들의 경배’, 1609, 314×211cm.
요즘 유럽의 주요 도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오신 분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여행지가 있다. 바로 시칠리아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지도에서 남쪽 발등 부분에 자리한 삼각형 모양의 섬이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남한 면적의 약 4분의 1, 경상도 정도에 해당하는 꽤나 큰 땅이다. 유럽 최대의 활화산인 에트나 화산을 품어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유럽에서 보기 드문 높은 산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로 둘러싸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중동 어디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토지가 비옥하고 겨울에도 기온이 1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도 매력적이다.
바로 이러한 매력적인 요소 때문에 고대부터 여러 강대국이 이곳을 두고 각축을 벌였고, 시칠리아의 역사는 곧 세계 전쟁의 역사가 되었다. 통치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가 켜켜이 쌓여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가 발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1 몬레알레 수도원. 2 몬레알레 대성당 내부. 3 시라쿠사 산타 루치아 성당 내부 조각상. 4, 5 팔레르모 시내 거리.
고대 시칠리아에는 시쿨리(Siculi)족을 비롯한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이 이주했고, 본토 그리스를 능가할 만큼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번영의 흔적은 아그리젠토(Agrigento) ‘신전의 계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의 유적지가 대부분 파괴된 것과 달리 이곳에는 보존 상태가 뛰어난 신전들이 꽤 남아 있는 편이다. 기원전 3세기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가 성장하면서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해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로마와 맞붙으며 포에니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의 근본 원인은 바로 시칠리아를 누가 차지하는가였다. 치열한 해전 끝에 로마가 승리하며, 시칠리아는 로마제국 최초의 해외 속주가 되었다.
이어 9세기 초에는 현재의 튀니지 지역인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아글라브 왕조가 약 200년간 지배하며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된다. 이때 영향을 받은 문화는 지금도 식문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아몬드, 피스타치오, 레몬 등을 즐기는 문화와 카놀리, 아란치니, 쿠스쿠스 등의 음식이 대표적인 예다.
11세기 이곳은 노르만족이 지배하며 다시 가톨릭 문명으로 바뀌게 된다. 노르만족은 뛰어난 항해술과 군사력을 발판으로 시칠리아섬은 물론 이탈리아 본토 남부까지 정복해 거대한 시칠리아 왕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시칠리아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며 유럽의 문화를 더하는 관용 정책을 취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높은 자존감과도 연결된다. 대표적인 유산은 당시 노르만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 팔레르모나 체팔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궁전이나 성당을 보면, 고대 그리스식 신전 기둥에, 이슬람 무카르나스 양식의 천장에, 화려한 비잔틴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예수의 도상을 얹는 등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는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아랍_노르만 양식’이라 불린다.
시칠리아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시라쿠사 지역에서 두드러지는 ‘시칠리아 바로크’를 들 수 있다. 중세 바로크 양식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지만, 시칠리아 바로크는 유난히 과장이 심하고 화려하다. 한 도시에 중세, 르네상스 등 여러 시대의 건축이 공존하는 로마나 피렌체의 경우 다른 시대의 양식과 조화를 고려해 도심 구성과 건축이 진행된다. 그러나 시칠리아는 1693년 동남부에 대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어, 도시 전체를 일시에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하는 과정이 펼쳐졌다. 또 하나의 요인을 찾아보자면 바로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이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와 달리 한낮에 태양이 높이 뜨면 적당한 볼륨으로는 건물 장식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림자가 사라져 평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장된 볼륨감을 통해 건축물의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한편 어느 한 부분도 빈틈없이 빽빽하게 장식한 것은 신을 섬기는 마음에 어느 작은 곳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깊은 신앙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1 아그리젠토에 남은 고대 그리스의 유적, ‘신전의 계곡’. 콘코르디아 신전 및 폴란드 출신의 현대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의 ‘추락한 이카로스’. 2 아그리젠토 주립 고고학 박물관.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거대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을 떠받치고 있던 높이 약 7.7m의 인간 형상 기둥(텔라몬) 진품. 3 카라바조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메시나 주립 미술관. 4 몰타의 수도, 발레타의 성 조지 광장. 성 요한 기사단을 상징하는 화려한 금빛 도금 문양으로 장식된 이동식 목조 밴드 스탠드. 5 카라바조의 원작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탄생’이 있었던 팔레르모 산 로렌초 예배당. 1969년 도난당한 원작은 여전히 행방불명으로, 현재 걸려 있는 작품은 2015년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복제품이다. 6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의 대조, 신성한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던 당대의 관습을 벗어나 사실적으로 묘사한 대표작, ‘성모의 죽음’, 1604-06.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후 시칠리아는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앙주 왕가, 스페인 아라곤 왕가의 지배를 거치며 핍박의 시대를 견딘다. 1860년 가리발디 장군이 빨간 셔츠를 입은 의용단과 함께 시칠리아 항구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이 열렬히 환호한 이유도 스페인 아라곤 왕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61년 통일 이탈리아에 흡수된 것이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지중해 중심에 있는 시칠리아 왕국에서 하루아침에 이탈리아의 남쪽 변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의 역사적 소외감과 몰락해가는 귀족의 쓸쓸한 내면을 그린 소설이 바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이다. 이는 1963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레오파드>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쳤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또한 숱한 외세의 침략 속에서 내 가족의 안위만큼은 직접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그 유명한 이탈리안 마피아가 탄생하게 된다. 영화 <대부>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도시, 사보카가 바로 그곳이다.
변두리 도시의 정서를 담은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있다면 1988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을 들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토토와 마을의 유일한 극장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우정, 그리고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소년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알프레도는 청년이 된 토토에게 더 넓은 세계로 떠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바로 그 시골 마을이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해안 마을 체팔루다. 과거 나폴리까지 장악했던 시칠리아 왕국의 화려했던 영광을 생각해본다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같은 해 뤽 베송 감독이 만든 <그랑 블루>도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되었으니, 이곳의 콘텐츠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많은 영화인을 매료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중 가장 화려하고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있다면 단연 타오르미나다. 멀리 에트나 화산이 보이면서, 지중해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일찍이 영국 왕가를 비롯한 유럽 귀족들이 별장을 지어 휴식을 즐기던 곳이다. 해안을 따라 럭셔리한 리조트와 호텔이 즐비하고, 바다에는 줄지어 늘어선 고급 대형 요트가 장관을 이룬다. 높은 산골 골짜기의 작은 마을에도 세계 최고급 명품 숍과 감각적인 쇼핑 거리가 들어서 있을 정도다. 타오르미나의 하이라이트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이 해발 200m 절벽 위에 세운 ‘고대 극장’이다. 관객석에 앉으면 코린트식 기둥 사이로 웅장한 에트나 화산의 분연과 푸른 이오니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괴테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 기행>에서 ‘타오르미나의 극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세계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 극찬했고, D.H. 로렌스는 이곳에 오래 머물며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을 집필했다. 지금도 가수들의 공연, 연극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밤마다 펼쳐지며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1 시라쿠사 대성당. 2, 4 몰타의 수도 발레타, 성 요한 대성당에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 ‘세례자 요한의 참수’, 1608. 카라바조 생애 최대의 걸작(361×520cm)이자, 자신의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3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팔레르모 왕궁)의 11세기 노르만 양식 천장화. 현재 시칠리아 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시칠리아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스토리가 있다. 바로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다. 그는 1571년 밀라노 인근에서 출생해 주로 로마를 무대로 활동하며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다혈질적인 성격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악동이었고, 1606년 사람을 죽여 도주자 신세로 전락한다. 누구든 카라바조를 발견하면 참수형을 내릴 수 있는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카라바조는 나폴리로 떠났다가, 1608년 몰타섬으로 피신한다.
몰타는 시칠리아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독립된 섬나라다. 이 섬의 역사도 시칠리아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십자군 전쟁 때 크게 활약한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섬에 자리를 잡았으나, 오스만제국에 이를 빼앗기고 약 7년 동안이나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이었던 카를 5세가 그들에게 몰타섬을 하사한다. 몰타섬은 강이나 호수가 전혀 없고 대부분 돌과 석회암이라 농사짓기 어려운 돌무더기 섬으로, 그 누구도 탐내지 않은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성 요한 기사단은 이곳에 정착해 요새를 건설했고, 오스만제국을 막아내며 ‘몰타 기사단’이라는 지위를 갖게되었고, 화려한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당대의 유명 화가 카라바조 피신은 성당의 가치를 드높일 기회였기에, 기사 작위까지 하사하며 카라바조를 환영한다. 이 시기 그가 남긴 대표작은 생애 최대의 걸작이자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세례자 요한의 참수’로, 몰타의 수도 발레타 성 요한 예배당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카라바조는 분쟁을 일으켜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출해 시칠리아로 건너가 목숨을 건 피신을 거듭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그림을 그려 피난 자금을 마련했고, 오늘날 우리가 방문해야 할 ‘카라바조 로드’를 만들어냈다. 시라쿠사 산타 루치아 성당에 남아 있는 ‘성 루치아의 매장’, 메시나의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라자로의 부활’, ‘목자들의 경배’가 그것이다.
시칠리아에서 약 9개월을 보낸 후, 카라바조는 나폴리로 가서 로마로 돌아갈 때를 기다렸다. 은밀하게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사면을 받을 것이라는 회신도 받은 터였다. 그러나 그를 추적하던 매복자들로부터 얼굴에 칼질을 당하는 피격을 입는다. 이때 카라바조가 택한 선택은 목숨을 걸고 인생의 역작을 남긴 것이다. 로마 교황을 위한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몰타 발레타 기사단장에게 드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다. 두 작품 모두 목이 잘린 형상으로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그림 속의 잘린 머리를 거두어 가고, 대신 자신의 솜씨를 가상히 여겨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간청이다. 카라바조는 이 두 작품을 싣고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잡범으로 오해를 받아 배를 놓치면서 38세의 짧은 생을 열병 속에서 마감하게 된다. 이 두 작품은 현재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과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 소장되어 있다.
누구나 탐냈던 비옥한 풍요의 섬 시칠리아, 아무도 탐내지 않던 돌섬 몰타. 이 둘은 각기 다른 이유로 매력적이다. 고대 그리스, 가톨릭, 이슬람 문화의 융합은 시칠리아에서, 화려한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천혜의 자연까지 즐기려면 몰타로 가면 된다. 역사의 아픈 소용돌이를 견뎌내며 오늘날 하이브리드 문화의 정점이 된 곳이다. 익숙한 유럽을 넘어 역사와 문화의 파노라마를 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매력적인 곳이 아닐 수 없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아트
EDITOR : 김영애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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