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나무 위에서 사는 생활, 밀라노의 라이프스타일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까지, 밀라노의 숨겨진 미술관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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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브레라 미술관에서 열린 조르지오 아르마니 특별전, 2026. 3 브레라 미술관의 대표작,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1480. 

 

밀라노를 생각하면 매년 4월 열리는 종합 디자인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가 먼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세계적인 박람회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전문가들이 매년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밀라노로 향한다. 또한 뾰족한 아치와 천장 장식이 아름다운 대성당, 화려한 유리 돔으로 뒤덮인 비토리오 에마누에레 2세 갤러리아 명품숍, 그리고 골목을 돌 때마다 마주치는 작고 귀여운 편집숍들, 밀라노는 눈길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디자인과 산업의 도시다. 그런데 출장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정작 밀라노에 얼마나 대단한 뮤지엄이 많은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숨겨진 예술 명소를 짚어보자. 

 

 

4, 5 밀라노 대성당 바로 옆의 현대미술관, 노베첸토 미술관. 6 밀라노 대성당 주변, 팔라초 레알레 특별 전시장에서 진행된 안젤름 키퍼 개인전. 


시내의 오아시스,
브레라 미술관 

밀라노 중심부에 자리한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은 12세기부터 수도원으로 지어졌던 곳으로, ‘브레라’라는 이름은 ‘풀이 우거진 교외의 땅’을 뜻하는 고어 ‘브라이다(Braida)’에서 유래했다. 이곳이 미술관으로 변신한 것은 18세기에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예수회를 해체하고 이곳을 대중을 위한 국립도서관, 천문대, 아트 아카데미로 개편했다. 학생들을 위해 수집한 명작은 브레라 미술관 컬렉션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미술관 옆에 아카데미(미술대학)가 남아 있다. 
브레라 미술관은 13세기부터 20세기를 망라한 총 400여 점의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단축법을 잘 보여주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가 있다. 2026년에는 밀라노가 낳은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추모하는 특별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별도의 전시장이 아니라, 브레라 미술관의 상설 전시장 곳곳에 아르마니의 패션을 전시해 그야말로 놀라운 장관을 연출했다. 아르마니는 피아젠차 태생으로, 청년 시절 밀라노 의대를 중퇴하고 리나센테 백화점 쇼윈도 디스플레이어로 패션을 시작했다. 금융과 산업의 도시 밀라노의 예술적 영감을 받으며 성장한 아르마니의 패션은 지적이고 실용적이며 미니멀하다. 아르마니는 2015년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며 밀라노 남서쪽에 옛 네슬레사의 곡물 저장 창고를 개조해 아르마니 박물관을 만들기도 했다. 옛 공장지대였던 이곳 주변으로 복합문화공간과 오피스가 들어서면서 근처의 운하와 함께 새로운 젊음의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브레라 미술관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바로 근처에 별관 팔라초 치테리오가 있는데, 이곳에는 정물화의 대가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이 대거 전시되어 있다. 병, 컵, 화분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조밀하게 모아놓고 정적인 그레이, 베이지, 크림 톤의 미묘한 변주를 보여준 20세기 이탈리아 회화의 거장이다. 한국에도 팬층이 두꺼운 작가로,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이미지를 보면 ‘아 이 작품!’ 하고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모란디는 볼로냐 출생으로 평생 볼로냐를 떠나지 않은 은둔형 작가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되어가는데도 잊혀지기는커녕 도리어 명성이 높아지며 후대의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볼로냐에 묻혀 있던 고독한 모란디를 먼저 알아본 건 밀라노에서 부를 축적한 컬렉터들이다. 브레라 미술관의 모란디 작품도 대부분 이들이 기증한 작품들로, 모란디의 고향 볼로냐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모란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니 꼭 들러볼 만하다.   
또한 밀라노 대성당 바로 옆의 현대미술관, 노베첸토 미술관(Museo del Novecento)도 빼놓을 수 없다. 밀라노 대성당 꼭대기에 힘들게 오를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미술관으로 와서 통창 너머로 보이는 대성당의 파사드를 감상해야 제맛이다. 특히 미술관 옥상에는 대성당이 잘 보이는 야외 테라스를 갖춘 레스토랑이 있어 밀라노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  

 

 

 

1  현대미술관 Mudec, 치하루 시오타 특별전. 2, 5 프라다 파운데이션. 3 프라다 파운데이션, 카스텐 횔러, ‘뒤집힌 버섯 방’. 4 프라다 파운데이션, 모나 하툼 개인전. 6,7 프라다 파운데이션 카페와 화장실. 

 

현대미술의 성전,
프라다 파운데이션과 피렐리 안가르비코카  

조금 더 남동쪽 교외로 시선을 돌리면 1910년대에 지어진 옛 증류소를 개조한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있다. 본관, 신관, 지하 시네마, 별관 등 하루 종일 머물러도 아쉬울 정도로 압도적인 스케일의 전시 공간으로 전체적인 건축은 렘 콜하스의 OMA가 맡았다. 메인 전시장을 다 봤나 싶으면, 외벽을 순금으로 마감한 종탑의 좁은 계단을 올라 루이스 부르주아와 로버트 고버의 작품이 층마다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볼 수 있다. ‘유령의 집’이라 이름 붙여진 공간에 딱 어울리는 작품들이다. 한편 뜰을 걷다가 지하 깊은 계단으로 내려가면 종유석을 모티프로 한 독일 작가 토마스 데만트의 설치 작품을 만난다. 여기가 끝인가 하면, 증류소 탱크 건축물이었던 별관에서 모나 하툼의 대규모 개인전이 펼쳐지고, 다시 또 하얀 콘크리트로 지어진 신관이 나오는데 카스텐 횔러의 ‘뒤집힌 버섯 방’을 비롯해 층층이 수많은 작품이 펼쳐진다. 전시장을 나가기 전에는 귀여운 카페 ‘바 루체’에 들러 이탈리아식 통통한 크림빵 마리토초를 한입 베어 먹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이탈리아의 1960년대 다방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또 지하의 화장실은 미래의 타임머신 같아 그야말로 기발한 상상력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이다. 
이곳의 압권은 단연 화이트 콘크리트로 지어진 신관(Torre)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통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이다. 철도 기지가 밀집되어 있는 밀라노 변두리 공업지대가 2026년 동계 올림픽 선수촌 건설을 기점으로, 거대한 녹지 공원과 친환경 주거·상업 지구로 탈바꿈하는 역동적인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전체 마스터플랜은 2030년 완공 목표로, 이때가 되면 밀라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북부에는 옛 기관차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센터, 피렐리 안가르비코카가 있다. 이곳은 글로벌 타이어 기업 피렐리(Pirelli)가 주도해 2004년에 설립한 비영리 전시 공간으로, 드넓은 옛 공장 내부에 독일의 거장 안셀름 키퍼의 기념비적인 설치 작품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이 영구 전시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매년 특별한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한 15분 

밀라노 예술 기행의 정점은 단연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작품은 1495년, 밀라노의 통치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해 성당의 수도사 식당 벽면에 그린 것이다. 다빈치는 일반적인 프레스코 기법 대신, 달걀노른자와 기름을 섞은 특수 안료 사용을 시도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벽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하는데, 다빈치는 천천히 수정 작업을 반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작품은 습기에 취약해 완공 직후부터 손상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작품 보존을 위해 1999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완료한 후, 까다로운 습도 제어와 엄격한 관람 인원 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5분뿐이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 큰 벽화 두 점이 전시되어 있어 오히려 시간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요즘 현대인이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30초 미만이라는 연구 결과를 고려해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성당에서 나와 잠시 앉아 있노라면 이 동네에 밀집한 사립학교 학생들이 우루르 몰려나와 성당 앞 작은 광장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작품이 망가질세라 왠지 성당 밖에서도 조심조심 걸어야 할 것 같은 이곳에서 매일 오후 축구공을 뻥뻥 차는 아이들이라니! 게다가 누가 아시아 여자들만 명품을 사랑한다고 했던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 화려한 옷차림의 엄마들은 드라마 <SKY 캐슬> 속 여주인공 못지않다. 힘들게 밀라노에 와서 잠시 이 성당 앞에서 숨을 돌리는 여행자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이상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스테파노 보에리 건축,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수직 숲 아파트).

 

수직의 숲을 그리며 확장하는 도시 

로마 시대의 군사 요충지로 시작해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공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한 밀라노. 이 도시는 그야말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천의 얼굴을 지녔다. 매년 4월이면 세계의 디자이너들을 끌어들이고,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중심부는 르네상스인데 외곽은 현대이니 하루에도 여러 시대를 오가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도시다. 복잡해지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도시는 점점 교외로 확장 중인데, 그 정점에 있는 아이콘이 바로 포르타 가리발디 지역의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수직 숲 아파트)다. 
밀라노 출신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스테파노 보에리의 작품으로 2014년 완공되었으며, 27층과 19층의 두 건물에는 층마다 수천 그루의 식물을 빼곡하게 심어 건물이 거대한 숲 역할을 한다. 수평 확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직 정원을 제안한 것으로, 멀리서 보면 현대 도시의 빌딩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주변은 깔끔하게 정비한 오피스 타운과 정원이 있고, 식물의 초록을 강조하는 빨간 화분 사이로 몸에 꼭 맞는 운동복을 입은 도시인들이 조깅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건축 기획에 영감을 준 것은 이탈로 칼비노의 1957년 소설 < 나무 위의 남작>이다. 12세의 소년은 억압적인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나무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살며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밀라노의 삶은 바로 이 남작을 담은 것이 아닐까?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되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을 계속 꿀 수 있는 천공의 삶 말이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미술관

CREDIT

EDITOR : KIM YOUNGAE(아트 칼럼니스트 이안아트컨설팅 대표)PHOTO : Ianart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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