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파리에서 대형 전시 <한국의 색, 한국 현대미술을 조명하다(La couleur de la Corée)>가 열린다. 한국 미술을 이끈 거장들과 동시대 젊은 작가까지 참여한 이번 전시는 파리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를 총괄한 김혜영(유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전시기획팀장을 만나 전시의 내용과 의미를 들었다.
2025.11.03
©Kim Guiline, Sans titre, 1968, huile sur toile, 115×162cm, KIM Guiline Courtesy RX&SLAG, Paris - NY
가을색이 짙어가는 지난 10월 24일, 파리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대형 특별전 <한국의 색, 한국 현대미술을 조명하다(La couleur de la Corée)>의 막이 올랐다.
2026년 한불 수교 140주년을 앞두고 기획된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과 색채 감각을 다층적으로 탐색하며, 그 미학적 스펙트럼을 프랑스 관객에게 선보인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디지털 아트 등 다양한 매체가 교차하는 이 전시는 ‘한국적인 것’이 오늘날 어떤 예술 언어로 재해석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일드프랑스의 디지털아트 비엔날레 ‘NÉMO’의 공식 프로그램으로도 선정된 이번 전시는 개막과 동시에 파리 예술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를 총괄한 한국문화원 김혜영(유민) 전시기획팀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의 미학이 프랑스 예술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전통적 색채 감각과 현대적 감수성이 만나는 지점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싶었다. 이번 전시가 ‘감각과 시간의 대화’로 읽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작가 선정 또한 이념적 구획이 아닌 감성의 스펙트럼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이응노, 김창열,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부터 이수경, 김윤철, 아니카 이 등 동시대 작가, 그리고 젊은 세대의 실험적 시도까지 포함, 총 3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 현대미술을 프랑스에 소개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작가들이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덕분에 전시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게 되었고, 관객은 한국 예술의 다양한 결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에 파리로 유학해 문화예술 기획을 공부했고, 이후 2019년부터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총괄 및 전시 기획(큐레이션)을 맡고 있는 그는 프랑스 관객의 감수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순수미술에 대한 애정이 깊고, 동시에 새로운 예술적 시도에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단순히 전통의 표상으로 보여주기보다, 그 안에 담긴 사유와 감정, 내면의 결을 함께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응노의 작업을 예로 든다. “이응노는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서구 추상미술의 언어를 결합해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완성했죠. ‘한국적인 것’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확장되는 정체성임을 보여줍니다.”
전시 준비와 설치 과정에는 늘 예기치 못한 순간이 있지 않을까. “문화원이 자리한 건물이 19세기 오스만식 건축이라 구조적으로 제약이 많아요. 예전 연등회 전시를 준비할 때는 대형 연등을 좁은 나선형 계단으로 직접 옮겨야 했죠. 쉽진 않았지만, 그 전시는 5만 명이 다녀가며 문화원의 전시 가능성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그는 이번 특별전에서도 “각자의 작품 세계가 조화롭게 이어지면서 전시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흐르도록” 구성하는 데 가장 많은 고민을 쏟았다고 한다.

1 ©Anicka Yi, The World Then No Longer Formed A Whole, 2024, Lenticular print, artist's frame made of density foam, 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gallery 2 ©Ha Chong-Hyun, Conjunction 17-89, 2017, Oil on Hemp Cloth, Courtesy of the Artist and Almine Rech Gallery
김혜영(유민) 팀장의 커리어는 예술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왜 작품을 만들까, 어떻게 완성될까. 그런 궁금증이 저를 프랑스로 이끌었죠.” 그는 현재까지 수많은 작가와 협업하며, 회화와 설치, 디지털 아트를 넘나드는 전시를 꾸준히 기획해왔다. “문화원의 전시는 이제 파리 시립미술관과 견줄 만큼 성장했고, 프랑스 주요 기관과의 협업도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 예술이 프랑스 예술계 안에서 ‘또 하나의 언어’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이에요.”
그는 자신을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 사이의 균형 위에 선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프랑스인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최초로 공개되는 희귀작도 포함됐다. 단색화의 선구자 김기린의 1968년 추상화는 파리 시절의 대표작으로, 원색의 긴장감과 실험적 구성미가 돋보인다. 또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1969년 작품은 물방울 시리즈 이전 단계의 유기적 추상 작업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층위를 보여준다.
전시기획자로서 그는 일상의 예술에서 자주 영감을 얻는다. “파리 15구의 부르델 미술관(Musée Bourdelle)은 제게 특별한 장소예요. 빛과 조각, 고요함이 함께 머무는 공간이죠.” 또 다른 단골 장소는 마레 지구의 라벨 오르탕스(La Belle Hortense). “낮에는 책 향기로, 밤에는 와인 향기로 가득한 곳이에요. 오래된 서가와 조명, 그리고 우연한 대화가 어우러지는, 파리다운 낭만이 있죠.”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특별하고 뜻깊은 전시를 기획하고 현실화한 김혜영(유민) 팀장은 이번 전시의 본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번 전시가 프랑스 관객에게 한국 예술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 안에 흐르는 사유와 감성의 결까지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한국의 색’이 전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일 거예요.”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전시
EDITOR : 최영선(비노필 대표)PHOTO : LIM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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