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하노이 미식 기행

바게트가 피시 소스를 만났을 때.

2025.10.06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하노이의 아침 풍경은 서정시처럼 잔잔하게 펼쳐진다. 호안끼엠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는 오토바이 매연과 함께 온 도시를 장막처럼 감싼다. 좁은 골목길의 낡은 건물 벽은 다양한 색상의 빨랫감이 장식하고 국수를 삶는 김이 골목마다 흩어진다. 피시 소스의 짭조름한 향과 허브 향기가 뒤섞인다. 아직 잠이 덜 깬 도시가 국수 한 그릇과 함께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거리에는 붉은색, 푸른색의 플라스틱 의자가 놓이고 젊은이들은 연유가 담긴 커피를 손에 들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다. 


혼잡한 하노이 시내에서 스쿠터 물결 사이를 힘겹게 헤쳐 나가다 보면, 이른 아침 골목들의 카오스가 적막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 성요셉성당이 눈앞에 등장한다. 화려한 벽화와 창문마다 장식된 꽃, 사방에서 울려대는 클랙슨과 고기국물 우려내는 냄새, 알 수 없는 허브 향 때문에 오감이 마비되는 순간, 회색빛 두 탑이 도시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 있다. 프랑스 제국의 그림자가 드리운 낭만. 어두침침한 회색의 거대한 돌덩이는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의 베트남은 지역별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그에 따라 다채로운 식재료가 생산되고, 기후에 따른 서로 다른 식문화도 엿보인다.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는 습윤한 아열대지만 사계절이 뚜렷해서 서늘한 계절에 어울리는 담백한 국물이나 쌉쌀한 허브의 풍미가 강조된다.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남부는 1년 내내 뜨겁고 5~11월의 우기가 있어 짭짤하고 매콤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몬순과 고온다습한 환경은 음식을 짜게 발효하는 문화를 형성했고 느억맘(멸치)이나 마똑(새우젓) 같은 각종 절임이나 장아찌 음식을 발전시켰다. 검은 멸치를 바다 소금과 함께 장기간 발효하는 푸꾸옥 피시 소스가 대표적이다. 중부 고원은 세계적인 커피와 후추 산지다.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 덥고 습한 기후와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 그리고 당시 아시아 인도양권 플랜테이션을 휩쓴 잎녹병에 강했던 로부스타 품종 커피를 대규모로 심게 되었고, 아라비카 품종에 비해 복합미는 부족하지만 카페오레를 즐기던 프랑스인에게는 적합해 오늘날 베트남의 유명한 연유커피(카페 쓰어다)로까지 발전한 역사 역시 흥미롭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늘 강대국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였다. 북쪽에는 중국, 서쪽에는 라오스, 남쪽으로는 바다와 교역로가 열려 있었다. 이런 위치는 풍요로운 쌀농사와 무역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오랜 침략과 저항, 독립의 역사를 갖게 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의 소용돌이 속에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7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연방을 세우고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다. 오랜 식민 지배로 프랑스의 식문화가 베트남으로 스며들었다. 놀라운 점은 프랑스의 음식이 그대로 베트남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켰다는 것. 


대표적인 음식이 쌀국수다. 한국인이 유독 잘 알고 친숙하게 느끼는 베트남 쌀국수는 프랑스 식민 지배가 시작되기 전에는 분, 반깐과 같이 가볍고 담백한 국물과 먹거나 새콤달콤한 느억짬(피시 소스 베이스 양념장)에 비벼 먹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소는 쌀농사에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흔히 먹는 식재료도 아니었다. 프랑스 식문화가 들어오면서 팟오푀 형태의 소고기 스튜가 요리되기 시작했고, 남은 뼈와 자투리 고기 그리고 육수를 이용해 쌀국수를 말아 먹기 시작했다. 1900년이 지나서야 하노이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과 같은 포 형태로 발전했다. 반미도 마찬가지. 프랑스는 베트남에 밀빵 문화를 들여왔다. 베트남의 주식은 쌀이었고 바게트는 낯선 음식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길고 단단한 바게트 대신 쌀가루를 섞어 얇고 바삭하며 속이 가벼운 바게트를 만들었고, 프랑스에서 가져온 파테, 버터뿐 아니라 베트남의 절인 채소(당근, 무), 고수, 피시 소스를 곁들였다.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낯선 식문화를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음식, 소위 ‘퓨전 음식’이 탄생한다.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땅, 기후, 입맛, 문화에 맞게 변주되어 완전히 다른 정체성의 음식으로 거듭나고, 그것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랑받는 세계적인 메뉴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은 생전에 베트남을 “미식가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특히 허브, 피시 소스, 신선한 채소, 쌉쌀한 맛의 균형을 높이 평가하며,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방식”이 베트남만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보데인이 하노이의 허름한 식당에서 분짜를 함께 먹는 장면은 상징성이 커 여러 언론에서 보도하며 화제가 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값싸고 소박한 길거리 음식을 먹는 장면은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를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도 있었지만, 보데인이 언제나 주장하는 “음식은 사회적 평등성을 만드는 언어”라는 문화적 의미를 더 선명하게 강조했다. 


2023년에는 <미쉐린 가이드 베트남>이 첫 출간되었다. 선정된 레스토랑에는 ‘길거리 음식(Bib Gourmand)’부터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파인다이닝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포함되었는데, 베트남 음식이 “저렴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라는 이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급 식문화로도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노이 시내에는 미쉐린 표시가 곳곳에 걸려 있다. 식당 간판을 아예 미쉐린 타이어의 귀여운 마스코트, 비벤덤으로 교체한 식당부터 벽면에 작게 플라크를 걸어둔 식당까지, 다소 오래되고 허름한 로컬 음식점의 낡은 선풍기 옆에 걸린 반짝이는 미쉐린 플라크는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하노이에서 맨 처음 방문한 곳은 성요셉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포 투룬이라는 작은 쌀국수 집이다. 식당 앞은 커다란 냄비에 육수가 끓고 있고 그 뒤에 인상 좋은 셰프님이 열심히 생고기를 다지고 있다. 고기 육수의 향은 깊고 진해서 온 거리가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식당 내부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만 깨끗했고,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자랑스럽게 미쉐린 인증패가 걸려 있었다. 포 투룬의 대표 메뉴는 생고기와 힘줄이 들어간 쌀국수다. 투명하리만큼 맑고 향긋한 소뼈, 소고기 육수를 한 입 머금자 달큰한 감칠맛이 은근히 밀려오고, 곧장 신선한 파와 고수의 향이 뒤따른다. 진하지만 결코 무겁거나 느끼하지 않다. 쭈어(중국식 밀가루 튀김 빵)를 국물에 적셔 먹으니 담백함과 바삭함이 육수와 함께 기분 좋게 퍼진다. 라임과 고추피클을 몇 조각 넣으니 국물의 맛이 다른 매력으로 변한다. 반쯤 익은 다진 생고기를 매끈한 쌀국수 면과 함께 입에 넣으니 갖은 허브 향과 담백한 국수 면이 투명하지만 진한 육수 맛과 어우러지며 향긋하게 마무리된다. 


한국에도 수많은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 있지만, 다른 식재료와 현지 입맛에 맞게 변형된 버전이 아닌 베트남 본토의 쌀국수 맛이 어떨지 늘 궁금했는데 하노이의 골목에서 그 미묘한 차이를 발견했다. 국물은 생각보다 맑고 절제되어 있었으며, 은근한 단맛과 깊은 고소함이 맴돌았다. 조미료 맛이 나지 않는 뼈 육수의 묵직함은 파와 고수에서 피어나는 푸른 향, 그리고 라임 조각이 더해주는 산뜻함에 맛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다음에 들른 식당은 하노이에서 유명한 분짜 식당인 분짜닥킴이다. 오바마와 보데인이 방문한 분짜흐엉리엔과 양대 산맥으로 알려져 있는데 분짜닥킴이 올드타운 시내 중심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더 노포스럽고 숯불 향이 강하며 느억짬(소스)의 달콤 짭조롬한 맛이 뚜렷하다고 알려져 있다. 올드타운을 구경하다 보면 거대한 미쉐린 마스코트인 비벤덤이 간판에 새겨져 있고 향긋한 돼지고기 숯불구이 냄새에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식당은 항상 문전성시다. 노상 식탁과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대기 손님들이 군데군데 빈 공간을 메운다. 식당 한가운데에서는 양념 돼지고기를 강한 숯불에 굽고 있었다. 


합석해서 겨우 앉은 자리에서 분짜 한 세트를 받았다. 따뜻한 느억짬에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와 짜조와 완자가 담겨 있었고, 느억짬은 양념이라기보다는 육수에 가까워 보였다. 가득 담긴 육수 표면은 매끈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고수, 민트, 타이바질, 상추 등 이름도 알지 못하는 다양한 허브가 산더미처럼 나오고 흰색의 가는 쌀국수 면은 따로 접시에 담아주었다. 먼저 육수 소스 맛을 보았다. 따뜻한 육수는 피시 소스 특유의 깊은 감칠맛과 설탕의 은근한 달콤함, 라임·식초에서 오는 산뜻한 산미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불 향 가득한 고기 패티는 겉은 살짝 탄 듯한 바삭함, 속은 촉촉한 육즙이 느껴져 직화 숯불의 매력이 살아 있고, 고기 완자의 고소한 맛과 국물의 달큰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허브를 이것저것 얹어 함께 먹으면, 진한 고기 맛이 상큼하고 쌉싸래한 향과 식감으로 균형감 있는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추가하는 허브 종류에 따라 다채로운 맛이 나는 것이 새로운 재미를 더해주었다. 


하노이는 로컬 식당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도시 전체가 맛의 밀도를 높여놓은듯, 어느 골목을 걸어도 기대 이상으로 다채롭고 새로웠다. 프랑스가 남긴 버터와 빵, 스튜와 커피는 이 땅의 허브와 피시 소스, 라임과 고수와 만나 놀라운 맛의 레이어를 보여주었다. 단맛, 짠맛, 신맛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낸 맛의 층위는 놀라울 만큼 풍성했다. 하노이에서 맛본 음식은 맛의 균형과 재창조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복잡한 역사를 견디며 살아온 베트남 사람들의 꾸미지 않아도 깊고 묵직한 본질이 모든 음식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요셉성당 외벽은 오랜 세월의 습기와 매연을 머금어 검게 변해 있었다. 지우지 않은 검은 흔적은 뜨거운 햇볕 아래 더 경건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1 돈덕

바삭한 껍질에 갖은 양념이 과하지 않게 녹아든 하노이식 전통 오리 바비큐 구이.  

 

2 분짜닥킴

분짜 세트를 시키면 느억짬 육수에 돼지고기구이와 완자가 담겨 있고 산더미 같은 다채로운 허브와 쌀국수 면은 따로 접시에 담아준다. 

 

3 미스터 바이 미엔 타이

쌀가루 반죽에 강황 가루를 넣어 튀기듯 구워낸 반콧과 베트남식 닭고기 꼬치인 짜오가.  

 

4 포 투룬

생고기와 힘줄이 들어간 쌀국수에 중국식 밀가루 튀김 빵인 쭈어를 올려 먹는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다이닝

CREDIT

EDITOR : Jeik Byun(미식 칼럼니스트)PHOTO : Shutterstock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