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경부터 불어온 LP 열풍은 바이닐 생산을 부활시키고 LP 청음 공간의 성행을 이끌었다. 아날로그적 물성, 바이닐을 재생하는 리추얼과 같은 행위, 그리고 음악을 물리적으로 소유한다는 감각이 LP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의 감성을 자극했으리라. 서울 한남동에는 LP를 비롯해 CD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청음실 심쿵서클이 있다. 이곳은 UX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에이전시 더스(thus)를 운영하는 전성환 대표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로 전환하며 3년 동안 사무실을 비워둔 이후 그는 한남동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직원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그간 수집한 빈티지 음악 플레이어와 CD, 카세트테이프로 채운 공간은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활짝 문을 열었다.
심쿵서클의 중심 아이템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다. 개인형 음악 플레이어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979년 소니가 출시한 최초의 워크맨 TPS-L2 이후 카세트테이프의 시대가 이어지다 디지털 음원을 담은 MD, CD 플레이어, 그리고 MP3 플레이어를 지나 지금의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로 이행했다. 2000년대 초부터 차츰 자취를 감춘 카세트테이프는 옛 영화에서나 볼 법한 추억의 물건으로 남았지만, 심쿵서클에서는 직접 카세트테이프를 고르고 워크맨을 조작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담은 믹스테이프 제작도 가능하다. 전성환 대표의 안내에 따라 워크맨을 사용하는 동안 매끈한 스마트폰 스크린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손맛’에 매료되었다. 버튼을 누르고 뚜껑을 여닫을 때 딸깍이는 소리, 재생을 누르면 돌아가며 감기는 테이프, 노이즈가 섞인 음질, 손에 감기는 워크맨의 묵직한 무게감, A면의 재생이 끝나면 뒤집어 B면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수고 등 번거롭다 싶은 행위 하나하나가 워크맨의 묘미임을 깨달았다. 이윽고 아날로그 기계 장치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그의 이야기에 차츰 빠져들었다.

1 심쿵서클 고객들이 만든 믹스테이프. 2 평소 즐겨 사용하는 소니 WM-DD로 음악을 듣는 전성환 대표. 직접 만든 커스텀 워치를 착용했다.
빈티지 음악 플레이어를 비롯해 자동차와 시계 애호가라고. 어떤 계기로 입문한 취미인가?
가장 먼저 빠진 취향의 세계는 시계다. 2012~2013년 기계식 시계에 매혹되었다. 정확히는 시계 자체보다 옛 무브먼트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 착용한 시계는 2014년 직접 만든 커스텀 워치인데, 1978년에 출시된 IWC cal.982 무브먼트로 제작했다. 여섯 조각으로 구성된 브리지의 형태가 아름답다. 무브먼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아침마다 직접 와인딩하는 아날로그 느낌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계를 좋아한다기보다 오래된 회중시계에서 무브먼트를 꺼내 세척한 뒤 케이스에 맞게 깎아 조립하며 손목시계를 만드는 과정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당시 시계를 만든 디자이너와 장인의 솜씨에 감탄한다.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높은 물건을 곁에 두고 사용하며 탐구하는 일이 내게는 중요하다.
음악 플레이어는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나?
3년 전 집의 TV장에서 워크맨을 발견했다. 소니 WM-EX610 모델로, 대학생 때 구입한 것을 고향 부모님 집에서 언젠가 가져왔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재생한 앨범인지 윤종신 6집이 담겨 있었다. 워크맨을 살리기 위해 수리 방법을 검색했다. 기계를 열어 삭은 벨트를 교체하니 작동되더라. 이를 계기로 예전에 사고 싶었던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빈티지 제품은 깨끗한 물건이 자주 시장에 나오는 게 아니라 발견했을 때 사야 한다. 국내외 중고 마켓을 뒤져 3년 동안 빠르게 모았다. 워크맨 50여 종과 카세트덱 14종, 카세트테이프 500개, CD 500장 정도를 갖고 있다.
기계를 해체하고 수리하는 데 능숙한가 보다. 옛날 제품을 사용하려면 직접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가 정비를 하지 못하면 취미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전문가에게 수리를 맡기더라도 원하는 퀄리티로 돌려받기 어려워 직접 하는 편이 좋다. 오래된 물건을 복원해 깨끗하게 만들거나 고쳐서 다시 작동하게 됐을 때의 희열이 굉장하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기계 장치에 관심이 컸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과학상자, 고무동력 비행기,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했고 친구들의 고장 난 장난감도 많이 고쳤다.
그런데 과학자가 아닌 디자이너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가 미술 교사셔서 그리기나 만들기와 가까웠다. 중학생 시절 미술학원을 다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전역 후 멀티미디어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인은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디자인에 가깝다. 주로 IT, 전자 회사와 협업하며 디지털 위주의 디자인을 하다 보니 아날로그에 더 끌렸을 수도 있다. 아날로그를 탐구해 디지털 디자인에 접목한 경우가 많다.

1 심쿵서클의 공 카세트테이프. 고급 재료인 크롬과 메탈 원단을 활용했다. 2 대학생 시절 구입한 소니 WM-EX610. 3 WM-EX610을 연 모습. 4 온도, 습도를 유지하는 보관함. 소장용 아이템을 넣어두었다.
CD나 MD 플레이어도 있지만 카세트 플레이어가 주를 이룬다.
카세트테이프로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기에 추억이 많다. 우리는 워크맨에서 MP3로 넘어간 세대다. CD가 등장할 때만 해도 웬만한 음반은 카세트테이프가 함께 발매됐다. 또 CD는 디지털 음원을 담고 있는 하이브리드 매체인 반면, 카세트는 더 아날로그적이다. 크기가 작고 마음대로 믹스테이프를 제작할 수 있는 점이 카세트의 매력이다. 갖고 노는 재미가 있달까.
컬렉션 중 가장 오래된 아이템은 무엇인가?
1979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워크맨 소니 TPS-L2다. 한 대는 전시용, 두 대는 보관용으로 총 세 대 보유하고 있다. 풀 박스는 운 좋게도 대구에 사는 컬렉터에게 구입했다. 하나는 스위스 로카르노 중고 장터에서 구매 대행으로, 나머지 하나는 일본 옥션에서 구했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가장 선호하는 모델은 1982년 출시된 소니 WM-DD다. 보통 카세트 플레이어는 모터로 작동되며 벨트를 통해 캡스턴이 돌아가는데, 벨트의 탄성 때문에 재생 속도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은 기어가 캡스턴을 바로 회전시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므로 음질이 안정적이다.
가장 최근에 추가한 아이템도 궁금하다.
1983년 출시된 소니 WM-F5다. 소니 최초의 스포츠 워크맨으로, 방수 기능이 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있다. 또 카세트테이프 가운데 가장 고급 원단인 메탈 포지션 테이프도 지원한다. 여섯 가지 컬러 중 빨간색 ‘온 더 비치’를 손에 넣었다.

1 뱅앤올룹슨 Beosystem 6500. 쳇 베이커의 음반이 재생되고 있다. 2 최초의 워크맨인 소니 TPS-L2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한 믹스테이프.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빈티지 플레이어를 고른다면?
뱅앤올룹슨 Beosystem 6500이다. 라디오 수신기와 CD 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턴테이블이 결합된 제품인데, 화이트와 블랙의 미니멀한 디자인이란! 앨범을 넣을 때 슬라이드 방식으로 구동되는 형태, 심플하고 독특한 우퍼 디자인, 예사롭지 않은 조그 다이얼 볼륨 컨트롤러 등 미니멀 디자인의 정석이다. 운 좋게 국내 판매자가 정성 들여 관리한 제품을 구입했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델이라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
앞으로 손에 넣고 싶은 플레이어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의미 있거나 디자인이 멋진 플레이어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자면 소니 WM-20 같은 모델이다. 슬라이드 팝업 형태의 워크맨으로, 닫으면 카세트테이프 케이스와 크기가 같다. 소장용으로 실버와 블루 조합을 찾고 있다.
심쿵서클을 운영하며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의 변화를 느끼나?
카세트테이프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LP처럼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저변이 확대될 것이다. 심쿵서클을 찾는 고객이 빠르게 늘지는 않지만 일정 인원이 꾸준히 방문한다. 10~20대가 아날로그로 유입되는 모습을 보면 카세트뿐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열 살인 아들만 해도 3D와 2D 애니메이션에 대한 개념이 없다. 2D 이후 3D가 등장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D 만화만 찾는 게 아니라 의외로 <스머프> 등 옛날 2D 만화도 선호한다.
마지막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행위란 어떤 의미인가?
아날로그 수집은 디지털 수집과 다르다. 보관하기 위한 일정 공간이 필요하므로 눈을 돌리면 언제나 볼 수 있다. 또 같은 제품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스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미 있다.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된 물건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 나도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더네이버, 피플, 컬렉터
EDITOR : 박지형PHOTO : KIM C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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