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보여주는 2025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열렸다. 각 브랜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접근법을 통해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밀라노 디자인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 MDW 2025를 소개한다.
2025.05.23
매년 전 세계 디자인 인사이더들을 밀라노로 끌어들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 실험적이고 유니크한 전시와 협업들은 밀라노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호평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 생생한 현장을 리포트한다.
1940년대 중반, 핸드백 손잡이에 처음으로 대나무 소재를 적용한 구찌는 뱀부의 유산을 조명하는 전시 <구찌 I 뱀부 인카운터스>를 선보였다. 16세기 건축 유산인 산 심플리치아노 수도원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한국의 이시산 작가도 참여했다.

브레라 미술관 안뜰에 설치된 빛의 도서관, MDW 2025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다.

1 버려진 공간에서 실험적인 전시를 보여준 알코바. 2 모던한 모듈식 주방 솔루션-베리 심플리 키친과 폴란드의 모던 퍼니처 노.마가 밀라노의 프리미엄 피자 베르베레를 아지트 삼았다. 3 신예 디자이너와 거대 기업의 이상적인 조우를 보여주는 브레라 아파트먼트. 4 셀레티와 트레이시 스넬링의 초현실적인 협업. 5 마에스트리 컬렉션 탄생 60주년을 맞아 이상과 현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의 경계에 관한 전시를 보여준 카시나.
세계 4대 패션 도시 중 하나인 밀라노지만 2025년 현시점 최고의 이벤트는 단연 디자인 위크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제대로 된 서포트를 자처하고 나선 브랜드, 후원사가 만나 이중, 삼중으로 협업이 이루어졌으니 그 시너지가 폭발해 자그마한 도시 밀라노를 알록달록 수놓았다.
1961년에 시작된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가 이 행사의 원조 격인데 지금도 세계 곳곳의 유명 가구 업계가 모여 신제품을 발표하고 오더가 진행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구 박람회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큰형님’이 승승장구하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영세한 디자이너들도 이 기간에 무언가를 시작한 것이 1980년대 등장한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흔히 크게 살로네와 푸오리 살로네로 나누어 관람 작전을 짜는데(일반인에게도 공개되는 시기에는 기본 2~3시간 줄을 서야 볼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 푸오리 살로네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시내 곳곳에 디스트릭트가 생겨났고 관객들은 신예 작가가 피운 첫 번째 꽃을 직관하는 행운과 온갖 볼거리와 이벤트를 만끽할 수 있다. 밀라노 소재 유서 깊은 저택들은 진즉 명품 패션 하우스들의 발표회장이 된 지 오래고, 올해는 뷰티와 향수업계까지 얼굴을 내민 상황이다. 한편 여러 브랜드가 밀라노의 로컬 맛집들과 함께 팝업을 진행하면서 관객 참여형, 그룹형 협업 같은 새로운 포맷이 트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뭐야, 누군데 이렇게 잘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전시를 만나면 설레다 못해 질투심이 일기도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곳곳에서 전시하는데 잘 만든 작품과 공들인 전시는 금방 눈에 띈다. 좋은 전시는 역시 탄탄한 큐레이팅에서 나오는 듯하다.

Alcova
<도무스(Domus)> 등 유명 건축 전문지 출신의 발렌티나 추피와 건축가 겸 큐레이터 조지프 그리마가 이끄는 독립 디자인 플랫폼 ‘알코바’는 올해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버려진 공간에서 실험성과 담론 중심의 전시를 기획해 밀라노 디자인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인정받는 그들이기에 매년 ‘올해는 어디서 전시하는지’가 큰 이슈인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바레도(Varedo) 지역에서 열렸다.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20km쯤 떨어진 곳인데도 일주일 동안 7만 명의 관객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다.
올해는 추가로 버려진 공간 두 군데를 더 활용했는데, ‘비스코사 섬유’를 최초로 만든 SNIA 비스코사(SNIA VIscosa) 폐공장과 1950년대 귀족들의 희귀 식물을 키우던 유리 온실 파시노 글라스하우스(Pasino Glasshouses)다. 영광의 빛이 저물면 어둠은 더 짙게 느껴지는 것일까, 산업화와 함께 근대 이탈리아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이 두 공간은 폐허가 된 지 오래라 대부분의 유리는 깨지고 벽면의 반은 검게 물들어 있어, 어떤 곳은 전시 내용보다 장소가 먼저 시선을 압도하기도 했으니, 여러모로 알코바다운 전시라 할 수 있겠다.

Palazzo Litta
디자인 큐레이션 그룹, 모스카파트너스(MoscaPartners)가 팔라초 릿타에 돌아왔다. 저택에 들어서자 가장 주요한 전시 공간인 안뜰에 익숙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하늘과 대비되는 붉은 흙과 함께 단정하게 펼쳐진 메시지,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이다. 공간의 소유가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우리에게 공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화제의 작품이다. 하나의 문장과 네모반듯한 공간에 펼쳐둔 흙만으로 전한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라니!

Brera Appartamenti
모던하고 대범하며 실용적인 밀라네제 디자인의 정수를 살펴보려면 브레라(Brera)에 가라. 고미술상과 디자인 하우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혼재하는 멋쟁이 동네이자 스튜디오 라보(Studio Labo)의 브레라 아파트먼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라보는 2017년, 현재 푸오리 살로네 그룹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브레라 디스트릭트’를 만든 곳이다. 매년 디자인 위크에는 브레라의 아파트먼트를 아지트 삼아 디자이너들과 전시를 진행하는데 올해는 자넬라토/보르토토 스튜디오(Zanellato/Bortotto Studio)가 그 주인공. 푸오리 살로네의 주제이기도 한 ‘연결된 세계’를 바탕으로 예술적인 영감, 장소의 기억과 같은 지점에 주목해 아파트 내부를 꾸몄다. 떠오르는 신예 디자이너와 거대 기업의 이상적인 협업이 어떤 것인지,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성숙한 면모를 잘 보여준 전시다.

인스톨레이션은 참신한 아이디어에 완성도까지 높으면 게임 끝이다. 관객의 눈길을 끌고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한 똑똑하고 성실한 인스톨레이션 전시들.

Daft about Draft
일본의 건축가 타이주 야마시타가 3년 전 론칭한 가구 브랜드 ‘다프트 어바웃 드래프트’의 인스톨레이션. 약 1만 개의 아크릴 구슬을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 설치해 입체 점묘화를 구현했다.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시선이 설치물 구석구석을 탐색하다가 숨겨둔 의자의 유기적 곡선과 만나 대비를 이루는 지점을 계산해 관객에게 브랜드와 신제품을 각인시켰다. 의자만 공중에 띄워두었다면 이 정도로 효과적이지는 못했을 텐데, 똑똑하다.

Seletti
독특함과 초현실적 기괴함을 넘나드는 명품 리빙 브랜드 셀레티는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스넬링(Tracey Snelling)과 협업했다. 코르소 가리발디 매장 입구에 축소판 호텔 외관의 목형을 설치한 것. 각 창문에는 짧은 비디오 루프가 재생되어 친밀감과 관찰 사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Cassina
카시나가 모더니즘 디자인의 초석을 세운 디자이너와 함께 만들어 전개한 ‘마에스트리 컬렉션(I maestri)’이 탄생 60주년을 맞았다. 너무도 유명한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 등의 가구를 소규모 수공예 생산에서 산업 생산으로 전환에 성공한, 현대 가구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정의한 상징적인 컬렉션이다. ‘지속 가능성’이 제안을 넘어 기준이 되어가는 요즘, 산업 디자인계에서 주목받는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 Fantasma)가 기획한 전시는 단순히 선대의 작품을 칭송하는 것이 아닌, 모더니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사이 경계에 관해 풍성한 이야기를 펼쳤다.

Lasvit
프라하 유리 공예 하우스 라스빗(Lasvit)이 발표한 마틴 갈로의 ‘스플래시(Splash)’. 물과 빛을 감정, 기억과 연결해 정교하고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Library of Light
MDW 2025에서 단연 화제가 된 작품은 브레라 미술관 안뜰에 설치된 빛의 도서관. ‘에우로 루체(조명 박람회)’의 일환으로 살로네가 주최하고 이탈리아 대표 출판사&서점인 펠트리넬리(Feltrinelli)가 후원해 영국 출신 무대 연출가, 에스 데블린(Es Devlin)과 완성한 것이다. 그녀는 비욘세와 칸예 웨스트의 투어 무대, 샤넬의 런웨이를 맡은 바 있는 실력자로 특히 조명을 잘 쓰기로 유명한데, 이번 전시는 햇빛과 조명 모두를 연출해 찬사받았다. ‘책은 마음의 나침반이며, 아직 탐험하지 않은 무수한 세계를 보여준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서 영감 받아 2,000권이 넘는 책이 꽃혀 있는 도서관을 만든 것. 원형 바닥은 나침반 바늘처럼 천천히 돌았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해의 방향을 계산해 설치한 거울은 미술관의 조각상과 기둥에 은은한 빛을 드리웠다.

컬렉션의 완성은 결국 사람이다. 식기, 텍스타일같이 우리 일상과 밀접한 아이템을 준비한 브랜드들은 쇼케이스에 이를 가두어두는 대신, 관객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Very Simple Kitchen, noo.ma, Berberè
에너지가 좋은 브랜드는 함께할수록 더 빛이 난다. 이탈리아의 모던한 모듈식 주방 솔루션-베리 심플리 키친과 폴란드의 모던 퍼니처 노.마가 밀라노의 프리미엄 피자 브랜드 베르베레를 아지트 삼았다. 두 브랜드가 협업해 만든 로토 플레이트(Roto Plate)에 피자를 서빙하고 야외에는 노.마의 테이블과 스툴을, 핏제리아 안에는 베리 심플리 키친의 주방 모듈을 설치했다.

Marimekko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여인에게는 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 언제 봐도 소녀 같은 마리메꼬가 그다운 전시를 펼쳐 화제다.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이 돋보이는 침구로 꾸민 대형 침대 위로 사람들을 초대한 것. 헬싱키 출신답게 북유럽의 시스콘페티(Siskonpeti: 파자마 파티에서 여러 개의 매트리스를 바닥에 모아두고 자는 공동 침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전시 기간 내내 인파가 몰렸다.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에 누워 부스러기 걱정 없이 마음껏 과자를 먹는 건 모두의 달콤한 꿈이니.

Bitossi Home X Sugo Milano
비토시 홈은 새 컬렉션, ‘타볼라 스콤포스타(Tavola Scomposta-무질서한 식탁)’를 론칭하며 밀라노의 트라토리아(Trattoria) 수고와 협업했다. ‘토스카나’라는 공통 키워드 덕분에 두 브랜드의 오브제는 자연스럽게 빛났으니, 친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가 낭만적인 트라토리아는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 먹고 마시는 사람들 사이로 비토시 홈은 물 흐르듯 스며들었다.

Byredo
용기 외에 어떤 것도 더하지않은 향수에는 그 대신 무한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바이레도는 새로 출시한 모하비 고스트 향수를 소개하기 위해 그래픽을 제작해 바이레도 밀라노 매장의 윈도, 카고 바이크, 신문 가판대를 활용한 키오스크를 장식했다. 형태와 색감만으로도 얼마나 풍부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Strucchi X Cassina Café
카시나는 디자인 위크에 맞춰 아예 밀라노 플래그십 옆에 카페 겸 칵테일 바를 열었다. 이탈리아 모던 가구 디자인의 아이콘인 카시나와 이탈리아 프리미엄 주류 브랜드 스트루키의 만남이라니 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그들이 만드는 시그너처 칵테일과 이벤트는 디자인 위크가 끝나도 즐길 수 있다.


JAB 안스토에츠 플로링 태양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JAB 플로링의 컬렉션. 특히 잉크가 번진 듯 자연스러운 루치에 콜도바(Lucie Koldova)의 플로링은 이번 박람회에 등장한 어떤 가구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9월 출시 예정.
마렐리 모난 곳 없이 미니멀한 실루엣에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이번 살로네의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플로스 종이처럼 보이는 타이벡-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로 만든 에르완 부훌렉(Erwan Bouroullec)의 벽등, 마프(Maap). 확장하면 높이 4m까지도 설치할 수 있는데 구겨진 종이처럼 생겨 빛 연출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갈로티 앤 라디체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만든 메탈 소재 가구가 돋보인다. 채도가 낮은 더티 핑크 같은 중립적인 색조를 띤 가구들과 함께 발표하며 메탈 소재 가구가 마냥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하며 공간에 녹아들 수 있는 아이템임을 보여줬다.
Salone del Mobile
디스트릭트 이벤트가 재미나다고 살로네 박람회장을 배제해선 안 된다. 가구 업계가 최전선에서 제시하는 트렌드를 미리 보고 싶다면 말이다. 매년 세계 곳곳의 가구 브랜드가 모이고, 격년으로 조명업계도 함께하는데, 우리 나라로 치면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의 약 10배쯤 되는 규모의 전시장이 꽉 찬다.
올해 선보인 가구와 조명은 안정적인 형태, 은은한 광택, 부드러운 촉감이 돋보인다. 키워드는 ‘테라(Terra, 땅)’로 자연 친화적인 테마인 만큼 따뜻하고 미니멀한 것이 대체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메인이다. 청키한 컬러는 사라지고 베이지, 크림 같은 뉴트럴 컬러와 붉은 흙을 연상시키는 레드 브라운이 주를 이뤘다. 지속 가능한 소재와 내추럴 무드가 합쳐지면서 플라스틱, 메탈 같은 인위적인 소재가 줄어들고 나무 프레임과 패브릭, 유리 같은 자연스러운 소재가 많이 보였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대한 소파 대신 옆으로 퍼지고 보다 땅에 가까운, 동글동글한 실루엣이 주를 이루었고 조명 역시 비정형 실루엣이거나 가벼운 디자인의 것들로 공간에 녹아들 듯 힘을 뺐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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