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일본 럭셔리 문화의 보고, 가나자와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서 현명한 정치적 판단으로 평화를 지켜온 100만 석의 도시. 과거의 영광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거듭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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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 출신 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쓰의 삶을 기린 철학관. 건축은 같은 도시 출신의 요시로 다니구치가 맡았다. 

 

도쿄와 오사카 사이를 연결한 선 위에 점 하나를 찍어 삼각형을 그린다면, 위 꼭짓점에 위치한 도시가 바로 가나자와다. 대구에서 동해로 쭉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일본 서해의 해안 도시다. 바로 이 지형적 특성이 가나자와의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사카와 도쿄가 전쟁을 치르며 일본의 새 역사를 쓰고 있을 때, 두 도시에서 약 450km 떨어진 가나자와는 전쟁의 화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지는 비옥하고 바다까지 면하고 있으니, 100만 석의 풍요를 누렸다. 쌀 한 석은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당시 가나자와는 약 50만 명의 시민을 먹여 살리고도 50만 석이 남는 셈이었다. 가나자와는 재주가 있는 자는 누구든지 오면 먹고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고를 냈고, 일본 전역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곳곳의 장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가나자와는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공예 도시가 되었다. 그 흐름은 지금에도 이어져 이 작은 도시로 전 세계 사람을 불러 모으는 힘이 되고 있다.  

 

 

 

전통 찻집 거리, 히가시차야. 

 

400년의 평화

도시의 번영을 이끈 지도자 마에다 도시이에(1538~1599)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서 다이묘(지방 영주)로 성장하여 현 이시카와현 일대의 거대한 영지를 하사받았다. 당시 이 지역을 부르던 이름은 가가번(加賀藩)으로 가가 유젠(염색), 가가 마키에(도금칠) 등 전통 공예에 ‘가가’라는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히데요시의 충신이었으며 히데요시 사망 후, 아들 히데요리가 성장할 때까지 평화를 지키기로 약속한 오대로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점점 성장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에다 가문은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양대 세력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하며 도시를 지킨다.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질 무렵, 1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가 사망하고 바로 다음 해 오사카와 도쿄, 두 도시의 운명을 가른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가나자와는 마에다의 아들 마에다 도시나가가 정권을 잡은 직후로 중립을 선택한다. 그러나 오사카와 도쿄, 두 도시는 저마다의 이유로 이를 견제하고 의심했다. 바로 이때, 마에다의 부인 마에다 마츠는 스스로 인질을 자청하여 도쿄로 건너가는 용맹함을 보였고, 결국 도시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면서, 에도 시대에 가나자와가 막대한 영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본래 마에다는 다른 여성과 혼인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검술 창술에도 능한 지혜로운 여인 마츠를 알게 되면서 약혼을 파기하고 마츠와 결혼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가문이 얽혀 있는 일이니 혼인을 파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그녀를 보자 함께 나라를 세워갈 수 있는 파트너임을 직감한 것이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일본 드라마의 소재로 채택되어 <도시이에와 마츠>(2002)로 만들어졌고, ‘전국 최강의 홈 드라마’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마에다 가문의 번영은 가나자와 성과 거대한 겐로쿠엔 정원의 규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각 축구장 5개 규모에 달하는 규모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7만 평의 성과 정원은 가나자와의 중심이다. 특히 겐로쿠엔 정원은 ‘넓고 개방적이면서도 고요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인간의 기술이 잘 녹아 있고, 물이 많으면서도 전망이 멋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운 이상적 정원의 6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는 뜻에서 6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었다.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여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정원, 미토의 기라쿠엔 정원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왼쪽) 21세기 미술관의 대표작, 레안드로 에를리치 ‘수영장’, 2004. (오른쪽) 21세기 미술관 외부 정원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 ‘Color Activity House’, 2010년. 시안, 마젠타 또는 옐로의 세 가지 기본 색상 중 하나로 착색한 유리로 구성하여, 관람객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일상적인 풍경을 다색 도시 경관으로 바꾼다.

 

미술관과 도서관이 도시를 살릴 수 있을까? 

그러나 가나자와의 장점은 약점이기도 했다. 전통 문화와 공예가 발전한 만큼 현대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가나자와는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데, 바로 2004년에 설립한 ‘21세기 미술관’의 탄생이다. 
이름부터 미래 지향적인 이 미술관은 일본에 있는 약 5,000개 미술관 중 방문객 숫자 3위 안에 드는 인기 있는 미술관으로 가나자와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다.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겐로쿠엔 정원 바로 근처에 있던 한 초등학교가 인구 감소 및 저출산의 여파로 폐교되었다. 이시카와현과 가나자와시는 이 빈 자리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에 들어갔고, 미술관을 설립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건축을 맡은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는 공원처럼 누구나 갈 수 있고, 가서 아무것이나 해도 되는, 시민을 위해 열린 미술관 건축을 구상한다. 보통 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그리스 신전 같은 형태를 완전히 벗어난, 원형 실린더 같은 투명한 건축물은 사방에 문이 뚫려 있어 앞뒤도 없고, 위계도 없다. 어느 곳에서나 내부가 들여다보이고, 안에서는 밖이 보인다. 주변의 푸른 잔디 위에는 흥미로운 공공 조형물이 가득하고, 한편에는 어린이를 위한 보육소, 도서관, 카페 등이 있어,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을 때 그러했듯이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같은 미술관이 되었다. 중소 도시의 미술관이지만 국제적인 작가들의 컬렉션도 놓치지 않았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애니시 커푸어, 제임스 터렐을 비롯한 유명 작가의 작품이 상시 전시 중이며, 특히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 작품은 미술관의 상징이자 사람들을 모으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관이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세계의 사람들을 이 도시로 불러들이는 것을 목도한 지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2022년, 이곳에는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는데, 바로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이다. 가나자와 예술대학 바로 맞은편에 자리하여, 시내에서는 20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다. 지상 4층, 지하 1층, 약 6,700평 너비에, 11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식 도서관으로 설립에만 무려 1,500억원이 들고, 매년 운영비로만 10억원이 드는 곳이다. 게다가 미술관과 달리 입장료도 없으니, 그야말로 지역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이다. 인구 46만 명의 중소도시에 이 정도의 투자를 해서 도서관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경비는 어떻게 감당할까? 
이런 당연한 질문은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후순위다. 20년 전 미술관을 지을 때처럼 지금 당장의 사정보다는 미래를 위해 과감히 결단하는 것이다. 도서관 역시 향후 50년을 바라보고 지었다고 한다. 예술품을 전시 감상하는 곳을 넘어 시민 누구나 와서 쉬는 공원 같은 미술관을 지었듯이, 책 읽고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와서 머무는 공간을 지향하는 도서관이다.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신경 쓴 것은 가구다. 책상처럼, 소파처럼, 벤치처럼, 혹은 칸막이 친 숨겨진 나만의 공간처럼, 다양한 용도의 의자 500개가 곳곳에 놓여 있다. 그러니 도서관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동네에 살면서 매일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러한 매력은 이미 수치로도 입증되었다. 개관 첫해에만 약 78만 명이 다녀갔고, 2023년에는 102만 명을 넘어섰다. 미술관이 그러했듯이, 이곳은 이제 세계인이 찾는 도서관이 되었다. 문화와 예술이 도시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가나자와는 그 기적 같은 가능성을 매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1 니시다 기타로 철학관 외부에 설치된 철학자의 집. 교토에 있던 기타로의 집 중 서재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2 안도 다다오가 건축을 맡은 니시다 기타로 철학관. 3 가나자와 출신의 건축가 요시로 다니구치의 집터를 아들 요시오 다니구치가 개조한 건축박물관. 

 

철학자의 도시 

가나자와가 문화 예술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데는 도시에 대한 시민의 남다른 자부심이 한몫했다. 400년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문화와 예술을 즐긴 것처럼, 오늘날에도 투자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나자와가 배출한 인물에 대한 대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토 철학자의 길로 유명한 교토대 철학과 교수 니시다 기타로(1870~1945)는 사실 가나자와 출신이다. 또한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나 평생 교류를 나눈 불교 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도 가나자와 출신이다. 이들은 서양 철학을 동양 철학에 접목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안팎으로 이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일찍이 미국으로 진출한 스즈키 다이세쓰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일본의 선불교 강연과 책을 출판한 덕분에 서구에 알려진 동양 선불교의 이름은 일본식 발음 ‘젠(zen)’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가나자와에는 두 철학자의 박물관이 있는데, 니시다 기타로 철학관은 그의 고향 마을에 안도 다다오가, 스즈키 다이세쓰 철학관은 시내 중심가 뮤지엄 거리에 요시오 다니구치가 지었다. 두 박물관은 앞서 소개한 미술관과 도서관에 이어, 가나자와를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하는 건축 투어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특히 가나자와 출신의 건축가 요시오 다니구치(1937~2024)는 뉴욕 현대미술관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건축 일에 종사했는데, 아버지 요시로 다니구치(1904~1979)는 도쿄대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가나자와의 역사적 장소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식인과 함께 ‘가나자와 진단’을 통해,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도시 조성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철학을 일찍부터 설파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은 지금 아들 요시오 다니구치에 의해 건축박물관이 되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마련된 응접실과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통창이 있는 라운지다. 내부에는 아버지 요시로가 만든 도쿄 아카사카 이궁의 일본식 별관 ‘유신테이’의 메인 객실과 다실을 재현한 일본식 라운지가 펼쳐진다. 특히 다실은 일본 전통 ‘노’ 연극의 무대 형식을 차용하였는데, 이 또한 가나자와의 문화 중 하나다. 가나자와의 사무라이는 차와 함께 노 연극을 즐겼는데, 그 전통이 남아 1972년 일본 최초의 독립 공립 노 극장이 가나자와에 세워졌고, 현재도 남아 있다.  

 

 

 

4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겐로쿠엔 정원. 습한 기후로 조성된 이끼 가든도 유명하다. 5 히가시차야에 남아 있는 게이샤 공연 장면. 6 ‘금’으로 유명한 가나자와(金), 금으로 장식한 각종 디저트. 7 2022년 7월에 개관한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 개관 첫해에만 78만 명이 다녀갔고, 2023년에는 연간 방문객이 102만 명을 넘어섰다.    

 

세대를 잇는 문화

다니구치 부자의 사례처럼, 대를 이어 예술을 이어간 사례는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다. 민예 운동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이자 유명 산업디자이너인 야나기 소리, 그는 도쿄 출신이지만 1956년 40대 초반에 가나자와 예술대학 교수로 부임해, 90대 초반이 될 때까지 무려 50여 년간 후학을 양성했고, 자신의 자료와 유산을 대학에 기증했다. 버터플라이 의자, 누구나 써봤을 법한 주전자와 집게가 바로 그의 작품으로, 시내에는 야나기 소리 디자인 기념관이 있어 작은 규모의 디자인 뮤지엄 역할을 한다. 또한 ‘모리하치’는 1625년 창업하여 현재까지도 번성하고 있는 유명 화과자점으로 영주에게 바칠 과자를 만들어왔다. 예쁜 과자를 만들기 위해 목형에 틀을 넣고 찍어내는 방식이 개발되었으며, 본점 2층의 박물관에 가면 17세기 초기 목형부터 현재까지의 아카이빙을 볼 수 있다. 단지 과자를 만들기 위한 틀로 보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아름다워 나무 조각가와 제과제빵사의 합작 예술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쟁 이후 플라스틱 틀로 대체하려 했으나 불가능했고, 옛 목형은 현재 문화재로 인정받는다. 

 

미래로 가는 도시 

가나자와는 오사카나 도쿄에 비하면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도시다. 직항 노선이 있긴 하지만 교통수단이 원활한 편도 아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2015년 신칸센이 들어선 후 국내 관광객이 찾는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 팬데믹 이후 콘데나스트 같은 해외 주요 여행 매체에 일본에서 꼭 가야 할 도시로 알려지면서 해외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는데,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중장년층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고급스러운 일본 문화를 볼 수 있는, 덜 관광지스러운 곳을 찾는 이들의 취향에 맞는 도시이기 때문일 듯하다. 예술, 공예, 건축, 철학이 공존하는 도시로, 과거와 현재가 멋지게 어우러진 혁신적인 도시라는 점에서 일본의 그 어느 도시보다 특별한 가자나와, 2009년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선정된 이래,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이곳의 혁신과 실험 정신은 앞으로 도시가 지행해야 할 이상적 모델을 보여주는 듯하다.  

 

art columnist KIM YOUNGAE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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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PHOTO : 이안아트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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