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청춘은 자란다, 아티스트 헤르난 바스

어느 시대건 청춘 서사는 유효하다. 헤르난 바스가 묘사해온 경계에 선 청년은 우리 내면의 고독에 접속하며 현대인의 페르소나로 떠올랐다. 4년 만의 한국 개인전으로 서울을 찾은 작가는 한층 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가 주목한 무용함의 아름다움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그림 속 청년은 훌쩍 자란 모습으로 기묘한 눈빛을 건넬 것이다.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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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 헤르난 바스(Hernan Bas)의 개인전 <모험, 나의 선택>을 기억하는가. 격랑이 치는 바다, 스산한 숲과 늪지대, 플로리다의 주택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소년과 청년 사이 남성의 초상은 금세 한국 관객을 매혹했다. 불안한 얼굴의 인물들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배경에 잠식되지 않을 만큼은 중심을 잡은 모습이었다. 헤르난 바스의 화폭에는 이처럼 이야기를 상상할 여지가 넉넉하다. 이후 그는 새로운 테마에 몰두했다. 마이애미 바스 미술관 개인전 <개념주의자>를 위해서였다. 개념미술가를 주인공 삼아 기이한 행동에 깊이 빠진 인물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지난해 5월 막을 내린 긴 전시를 뒤로하고 헤르난 바스는 새로운 전시로 다시 등장했다. 바로 리만머핀 서울에서 5월 3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에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흥미는 불필요한 것, 쓸모없는 것, 과잉된 것에 집중됐다. 예컨대 벌새를 유인하는 화려한 모자는 벌새를 보려는 탐조인의 시야를 차단하고(‘벌새 애호가’), 얼굴을 방충망으로 가렸다 한들 웃옷을 벗은 채로는 벌레에 쏘일 뿐이다(‘불필요한 순간’).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심령술사나 헤밍웨이 하우스의 육발 고양이를 지키는 관리인 등의 직업은 쓸모를 쉽게 의심받는다. 그래서 작가는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어느 맑은 오전 나눈 대화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리만머핀 서울의 1층 전시실 전경. 정면에 보이는 작품이 ‘불필요한 순간’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콜라 한 캔을 마시는 것이 루틴이라고 언급했다. 오늘도 콜라를 마셨나? 어릴 적부터 콜라에 중독되어 한밤에 마지막 남은 콜라 한 방울을 서로 마시려고 형과 다투곤 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콜라는 카페인을 섭취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1년 반 전쯤 콜라를 끊었다. 10여 kg이 빠진 걸 보니 설탕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겠다(웃음).


2021년 전시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사이 ‘개념주의자’ 연작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해왔나? 마이애미 바스 미술관에서 선보인 연작은 그간 선보인 시리즈 중 가장 방대했다. 보통 연작을 작업할 때 약 5~6개월 소요되는데 ‘개념주의자’는 2년 반이나 걸렸다. 그래서 상당히 지쳤고, 당시 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시리즈를 작업하고 싶었다. 숨 쉴 공간을 만드는 느낌으로 준비했다. 그 때문에 연작으로서의 통일성이 조금 약할 수 있지만 작품마다 즉각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더불어 최근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더 집착하는 것 같다. 소년을 그리는 것에 국한하기보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스토리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리서치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예컨대 2층의 ‘대역(햄릿)’은 실제 <햄릿> 무대에서 배우들이 입는 의복을 조사해 반영했고, ‘비’ 역시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날리는 콘페티의 색을 일일이 조사해 구현했다. 관객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닐지라도 내게는 조사 과정과 구현하는 작업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


작품의 장면 속 서사를 읽어내는 재미가 크다. 주인공의 스토리를 어디까지 상상한 뒤 작품에 착수하는지 궁금하다. 어떤 장면을 구상할 때 시작과 끝보다는 연극에서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을 상상한다. 인터미션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에게 어떤 서사인지 설명하기보다 이야기 도중 중단함으로써 직접 시작이나 결말을 상상할 여지를 주려 한다.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이번 연작은 필요와 불필요, 시각적 과잉을 테마로 삼았다. 어쩌다 이러한 주제에 이끌렸나?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상상해보면 어떤 ‘기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 때 마술이라는 행위는 삶에 불필요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재미있고 행복한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울적한 표정을 짓는 걸로 보일지라도 개인적으로 이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행동이 그 자체로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시로 ‘반려동물 전문 점쟁이의 딜레마’를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나 반려동물 점쟁이라는 직업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1 ‘Round one(yo-yo world championships)’, 2025, Acrylic on linen, 127×101.6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Photo by Silvia Ros. 2 ‘Taking it on the chin’, 2025, Acrylic on linen, 127×101.6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Photo by Silvia Ros.

 


‘비’의 콘페티나 ‘대역(햄릿)’ 속 분장실에 걸린 리본, ‘라운드 원, 요요 세계 대회’의 요요 줄, ‘홀리데이 스피릿’의 크리스마스 장식 등 광택 있는 색색의 끈이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여러 가지 색을 쓰는 데 두려움이 좀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과감해졌다. 실제로 작업하는 동안 ‘왜 세상에 더 많은 색깔이 없을까?’ 불평하기도 했고. ‘라운드 원, 요요 세계 대회’의 경우 보통 작업 방식과는 반대로 사용하고 싶은 컬러들을 먼저 생각한 뒤 색깔과 어울릴 만한 장면을 구상했다.


‘대역(햄릿)’은 무대 의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의복에 관심이 커서 정교하게 구현하기 위해 심층적으로 조사했다. 런던 로열 내셔널 시어터의 아카이브를 직접 보고, 1970년대 연극 <햄릿>이 활발히 공연된 시기의 프로덕션도 참고했다. 최근 벨벳 질감을 구현하는 기술을 마스터하는 것이 고민이다. 벨벳을 표현하기 위해 유리 비즈를 가루로 곱게 갈아 물감에 섞어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면 물감이 조명 아래 약하게 반짝인다. 영업 비밀이지만 가끔 이 같은 테크닉을 사용한다(웃음).


‘반려동물 전문 점쟁이의 딜레마’ 속 부화실 램프나 ‘대역(햄릿)’의 화장대 조명, 요요 대회 배경처럼 인공조명의 빛 표현도 흥미롭다. 요요 대회 영상을 직접 본다면 꽤 현실적으로 표현하려 했음을 느낄 것이다. 그곳에서 DJ들은 상반신에 형광 페인트를 칠한 채 춤을 추거나 디제잉 퍼포먼스를 한다. 실제 현장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했다. 반려동물 점쟁이의 경우 붉은빛으로 부화실의 따뜻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인물의 선을 따라 후광처럼 빛을 표현했는데, 과거 종교화도 영향을 미쳤다.

 

 

3 ‘The hummingbird enthusiast’, 2025, Acrylic on linen, 127×101.6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Photo by Silvia Ros. 4 ‘Rain’, 2025, Acrylic on paper, 177.8×101.6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Photo by OnArt Studio.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소개해달라. 평소 여행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개인적 경험이 전시작에 많이 담긴 것은 우연이다. 최근 남동생의 결혼식이 열린 중부 플로리다를 방문했다. 그곳의 늪지대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둔 것이 ‘불필요한 순간’에 반영됐다. 또 파트너의 어머니 생일을 맞아 키웨스트에 갔을 때 헤밍웨이 박물관과 수산시장에 들렀다. 그것이 ‘육발 고양이의 관리인(헤밍웨이 하우스)’과 ‘위대한 유산’에 적용됐다. 개인적인 삶을 작업에 담지 않는 편인데 공교롭게 그런 작품이 탄생했다. 앞서 말했듯 ‘개념주의자’에 몰입했던 시기라 이후에는 머릿속 기억과 아이디어를 끌어내야 했다. ‘묵묵히 견디기’도 1년 전쯤 샌프란시스코 아케이드에서 발견한 머신을 그린 것이다. 레버를 당기면 당신이 얼마나 핫한지 알려주는 기계였는데 내가 당기자 ‘마일드’라는 결과가 나왔다(웃음). 그때 언젠가 이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빅토리아 시대 애도 용품, 플라밍고 자석 등 다양한 물건을 수집한다고. 플라밍고 자석을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스튜디오에 올 때마다 선물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져서 이제 멈췄으면 한다(웃음). 빅토리아 애도 용품에 대한 호기심은 기이하지만 그런 물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망자의 묘비를 머리카락으로 재현해 간직하는 아이디어나,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을 담는 병을 발명한 이야기가 재미있어 수집을 시작했다. 


한국인이 당신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청춘의 이미지에 매료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청춘 서사는 언제나 유효한 법이니까. 작가와 관객, 우리 모두 나이 들어가는데 청춘의 초상을 보존하는 비결이 있는지? 젊음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내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국 관객과 특유의 감수성이 통한다고 생각한다. 미국보다 한국 문화에서 더 스토리텔링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동시에 작품 속 인물들은 내가 나이 들어가며 함께 성장한다. ‘개념주의자’ 연작 속 인물들도 이전 작품보다 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고히 아는 이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꾸준히 화폭에 이야기를 담아왔다. 회화 외에 다른 매체로의 확장을 고민해본 적이 있나? ‘개념주의자’를 준비하며 작품 속 개념미술가들이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이들을 주제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흥미롭지 않을까. 미국에 <다큐멘터리 나우!>라는 코미디 모큐멘터리 시리즈가 있는데, 그중 한 에피소드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현대미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풍자적으로 연기했다. 일주일 내내 핫도그를 먹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미술관에 화장실 칸을 두 개 설치한 뒤 케이트 블란쳇이 울고 있는 옆 칸의 여성에게 휴지를 건네는 식이다.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상상해보았다.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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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지형PHOTO : 김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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