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 단위로 가구와 조명 컬렉션을 소개하는 편집숍 디에디트. ‘편집’의 의미를 강조한 간명한 이름처럼 그들의 큐레이션에서는 담담한 강단이 드러난다.
2025.05.02
발렌틴 로엘만의 가구가 전시된 디에디트 1층 갤러리.
리빙 분야에서 편집과 큐레이션의 개념이 흐릿하던 시절, 에디트(edit)라는 동사를 고유명사화한 편집숍이 등장했다. 오픈 이후 컨템퍼러리 디자인 가구와 조명을 꾸준히 소개해온 디에디트는 2024년 1월, 서울 논현동 학동역 근처 골목에 현재의 전시장 겸 쇼룸의 문을 열었다. 7층 높이 건물은 심플한 이름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외양이다. 높은 층고와 시야를 막는 요소 없이 시원스레 뻗은 공간, 뉴트럴 컬러를 배경으로 아티스틱한 디자인의 대형 가구가 널찍하게 배치된 건물 곳곳에는 최혁재 대표의 손길이 닿아 있다.
누구든 쇼룸을 둘러보면 ‘디에디트답다’라고 할 만한 경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이기보다 현대적인 디자인, 공간을 장악하는 존재감, 독특하고도 우아한 실루엣의 가구와 조명, 그리고 오브제 컬렉션은 디자이너 단위로 큐레이션해온 고집의 결과다. 1층 갤러리에는 지난 9월 전시를 열기도 했던 독일 디자이너 발렌틴 로엘만의 가구가 자리한다. 목재와 스틸처럼 이질적인 소재를 조합한 로엘만의 무게감 있는 가구는 이곳의 인상을 공고히 한다. 그 밖에 나무라는 소재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반 로섬(Van Rossum)의 가구, 공간의 주인공이 될 만한 보치(Bocci), 오존(Ozone), 아파라투스(Apparatus)의 조명 등에 시선이 따른다. 쇼룸을 찬찬히 둘러본 뒤 7층 사무실에서 최혁재 대표와 마주 앉았다. 대형 책상과 직접 제작했다는 회전문이 독특한 오라를 발산하는 공간이었다.

(왼쪽) 보치의 조명. 벽에는 오스카르 지엥타의 도넛 모양 오브제가 걸려 있다. (오른쪽) 발렌틴 로엘만의 계단 모양 파티션과 소파, 콘솔이 어우러진다.
디에디트가 언제 출범했는지 궁금하다. 디에디트라는 상호를 만든 시기는 2014년, 법인을 분리해 지금의 콘셉트로 시작한 건 2018년이다. 2014년 당시 가구 시장은 브랜드 숍 위주였고, 지금 같은 편집숍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가구 브랜드 전체를 수입한다면 원치 않는 디자이너의 제품도 다뤄야 했다. 그러다 우리는 원하는 디자이너 제품만 소개하기 위해 지금의 콘셉트를 확립했다. 그때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현재는 디에디트만의 에디션을 만들거나 자체적인 디자이너 컬렉션도 선보이는 것. 그래서 쇼룸 1층은 디자인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디자이너 위주로 소개하다 보니 고객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스타일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더 세트(THE SET)’를 새롭게 론칭했다.
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다양한 가구를 다루고 있지만, 실은 가구보다 공간에 관심이 컸다. 공간과 관련된 일을 들여다보면,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은 물론 가구나 구성 요소를 접할 수도 있다. 내게 가장 적합한 게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시작한 분야가 가구와 조명이다. 지금도 자료를 모으거나 새로운 브랜드를 서칭할 때 제품 자체의 디자인을 먼저 고민하기보다 기본적인 공간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해보고 그 레이아웃에 맞는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 공간의 콘셉트나 목적, 기능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는 방식이 고객에게도 쉽게 다가간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공간을 채우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나? 사실 어려서부터 가구를 사서 모은 경험이 많지 않다. 물론 좋아하는 디자이너 작품을 한두 점 소장하고 있지만, 심지어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식탁이 없다. 아일랜드 키친 테이블에 사무용 의자를 두고 책상으로도 식탁으로도 사용한다. 예컨대 주방 가구가 필요하면 직접 제작하지 다른 가구를 사서 모으지 않는 편이다. 디에디트 쇼룸을 보아도 인테리어적 요소가 거의 없다. 단순하게 바닥과 벽, 천장으로 구성했고 가능하면 파티션이나 가벽도 세우지 않았다. 빈 공간에 가구를 스타일링함으로써 어떻게 연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미닫이문이나 건축 조명, 화장실 세면대 등 필요한 요소는 자체적으로 디자인했다.

(왼쪽) 빅터 구에디의 브론즈 흉상과 한스 페테르 크래프트의 양처럼 다양한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오른쪽) 발렌틴 로엘만이 디자인한 바에 기대선 최혁재 대표.
쇼룸 건물은 어떻게 구상했는지 이야기해달라.주변이 주택가이고 양쪽 건물 역시 다세대 주택이라 대지 안에서 차별성을 두고 싶었다. 건축법상 일조권 확보를 위한 일조 사선 제한 때문에 사선으로 짓는 공간이 필요한데, 주변 건물은 대개 그곳을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건물을 올릴 수는 없지만 독립된 느낌을 주고 싶어 기능 없는 약 13m의 벽을 가림막처럼 세웠다. 그렇기에 외부 출입구에서 들어오면 주변 시야가 차단되며 중정에서 하늘만 올려보는 듯한 구도가 연출된다. 또한 층별로 개방감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다양한 콘셉트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
묵직한 블랙 톤에 유려한 곡선이 두드러지는 대형 가구가 눈에 띄는데,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결과인가? 솔직히 말해 취향에 가까운 건 미니멀하고 단순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단순히 미니멀, 유려한 곡선, 직선형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결한 디자인이건 곡선형 디자인이건 우리 마음에 드는 걸 선보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차가운 소재보다 가죽, 나무, 패브릭 등 따뜻한 소재를 선호하는 편이다.
넓은 주거 공간에 어울리는 큰 가구가 주를 이루는 듯 보인다. 의도적인 타깃팅인지?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다. 무난한 디자인의 가구도 있지만 유니크하고 존재감 있는 가구가 많은 편이라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특정 디자이너와 작가의 작품을 배치하다 보면 단독으로 놓일 때 가장 멋있더라. 일반적인 형태의 가구와는 달라서 잘 섞이지 못한다. 그래서 여백을 두고 전시하다 보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또한 디에디트의 주 고객들은 작은 가구를 찾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 자신만의 독특한 컬렉션을 원한다.

반 로섬 가구를 주로 배치한 4층.
집은 어떤 분위기로 꾸몄는지 궁금하다.일반적인 아파트인데, 미색의 따뜻한 톤에 가깝다. 필요한 가구 외에는 두지 않아 깔끔하고 미니멀하다.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면서 편안한 느낌의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 소파는 편하게 널브러질 수 있는 가죽 소파를 두었고, 집이 넓지 않다 보니 아일랜드 키친을 조금 큰 크기로 제작해서 식탁 겸 책상으로 쓴다. 의자도 일반 다이닝 의자가 아닌 사무용 의자를 겸용으로 사용한다. 일하기에도, 밥 먹기에도 편리하다.
제품을 큐레이션할 때 첫인상이나 직관을 따르는 편인가? 첫눈에 들었지만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브랜드나 디자이너는 있을 수 있으나, 경험상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첫인상이나 첫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관은 취향과 연결되지 않나. 취향이 형성된 토대나 배경이 궁금하다. 많은 공간을 다니다 보면 공간에 대한 인상이 남는다. 예를 들어 화장실을 디자인할 때는 화장실에 창이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프라이버시에 침해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화장실 디자인할 때 꼭 창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건축적이든 공간적이든 좋았던 경험과 기억이 쌓이며 취향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미지를 모으는 일을 줄곧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방문한 공간과 장소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된다.
그간 디에디트를 운영하며 감지한 고객의 변화가 있다면? 고객의 취향이나 원하는 콘셉트가 이전에 비해 다양해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또 예전에는 40대 이상 고객이 많았다면 지금은 연령층이 낮아져 20대부터 이러한 콘셉트의 가구를 찾는다. 디에디트의 가구는 호불호가 분명한 편이지만, 우리 색깔을 좋아하는 분들은 다른 데서 못 본 가구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러한 반응이 비즈니스의 원동력이다.

아르노 드클레르크 다이닝 테이블과 피에르 어거스틴 로즈 소파가 전시된 2층. 시야를 차단하는 벽이 내다보인다.
대중적이지 않은 디자이너 가구를 소개하는 것이 리스크로 작용하지는 않나? 대형 브랜드나 상업 브랜드 숍과 비교하면 당연히 시장이 작지만, 파고들면 더 깊은 시장이 있더라. 최근 재미있게 진행한 프로젝트는 단순히 이동형 가구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해외 디자이너와 협업한 인테리어 프로젝트다. 공간 스타일링, 나아가 인테리어를 함께하는 점에 메리트가 있다.
더 알려지길 바라는 디자인 가구를 소개한다면? 독일 출신 디자이너 발렌틴 로엘만과는 오래 협업을 진행했다. 1층 갤러리의 바와 벤치, 테이블은 발렌틴 로엘만이 디에디트 공간에 맞춰 제작한 에디션이다. 가구를 넘어 공간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알려지길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소개하는 디자이너들이 제품뿐 아니라 공간을 함께 다루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디자인하는 공간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제작하면서 거꾸로 컬렉션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협업이 국내에서 활발히 이뤄지면 좋겠다.
1층 갤러리에 예정된 전시도 궁금하다.
상반기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샤포의 제품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하반기에는 ‘더 세트’라는 이름으로 자체 기획전을 진행하려 한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쇼룸 5, 6층을 주거 형태의 갤러리로 변화시켜 여러 디자이너의 가구를 모아 선보일 계획이다.
앞으로 디에디트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콘셉트를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디에디트만의 에디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시와 에디션을 기획하여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DITOR : 박지형PHOTO : 손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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