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 한복판에 놓인 장교 프레더릭 헨리와 군인들은 쉴 새 없이 술을 마신다. 카프리 화이트와인과 키안티부터 위스키, 코냑, 베르무트 등 주종도 다양하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자조적으로 말한다. “날마다 자기를 파괴하는 거야.” 어쩌면 이들은 전쟁의 참상을 잊기 위해, 인류가 짊어진 환멸을 견디기 위해 정신을 무뎌지게 할 마취제가 필요했으리라. 주인공 헨리가 위스키 소다를 즐기듯 헤밍웨이 역시 스카치 앤 소다를 자주 찾았다. 헤밍웨이에게는 섬세한 싱글몰트 위스키보다 스모키한 풍미와 피트 향이 두드러지는 블렌디드 위스키가 어쩐지 어울린다.
스코틀랜드의 거친 서부 해안선을 모티프로 한 블렌디드 위스키 ‘와일드무어 30년 러기드 코스트’.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와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했다. 가격 미정.
퓨터 소재 장식의 위스키 잔과 트레이, 디캔터, 아이스 버킷은 모두 코지타 벨리니.
“나는 신문을 펴 들고서 거기 실린 전쟁 기사로 되돌아갔고, 얼음 채운 위스키 잔에 소다수를 천천히 부었다. 이제부터는 웨이터에게 위스키 잔에 얼음을 채우지 말고 위스키 따로 얼음 따로 가져오라고 해야겠군. (…) 좋은 위스키는 사람의 기분을 대단히 즐겁게 하지. 씁쓸한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영물(靈物)들 중 하나야.” _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이종인 역 <무기여 잘 있거라>(열린책들)

파티를 준비하는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하루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이날 클라리사의 배우자인 리처드 댈러웨이와 그의 친구 휴 브레드휘트는 레이디 브루턴의 오찬에 초대받는다. 휴 브레드휘트는 상류층에 아첨하는 속물로 묘사되지만, 20년간 잘 관리한 만년필과 글솜씨는 그의 세심함과 신사다움을 드러낸다. 우아한 실루엣에 섬세한 패턴을 새긴 파카 소네트는 예의를 중시하는 인물의 안주머니에 꽂혀 있을 법한 만년필이다.
실버와 골드 컬러가 조화를 이룬 파카 소네트 프리미엄 실버 미스트랄 GT 만년필 1백20만원.
“휴는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제 은제 만년필은 20년이나 썼지만, 하고 그는 뚜껑을 열면서 말했다. 여전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만년필 제조업자들에게 보여주니, 도무지 닳아질 이유가 없다고들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은 왠지 휴를 돋보이게 했고, 그의 펜이 표현했던 감정들을 돋보이게도 했다 (리처드 댈러웨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_ 버지니아 울프 저, 최애리 역 <댈러웨이 부인>(열린책들)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은 삶의 목적 없이 살아가는 귀족 예브게니 오네긴을 통해 잉여 인간이라 자조하는 당대 지성인의 모습을 조명했다. 넘치는 부와 시간 탓에 되려 권태에 빠지는 주인공에게 시계는 계급을 표상하는 사치품이자 권태로운 일상 속 특별한 이벤트를 알리는 도구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연재되던 19세기 중반, 브레게는 유럽 및 러시아 귀족과 유명 인사에게 각광받는 시계 브랜드였다. 손수 태엽을 감는 수동 방식이 아닌 오토매틱 와인딩 시계를 최초로 개발했으니 ‘서는 법이 없는’ 시계라는 감탄을 살 만하다.
브레게가 발명한 충격 흡수 장치 파라슈트를 적용한 브레게 트래디션
오토매틱 레트로그레이드 세컨드 핸드 7097 5천4백80만원.
“서는 법이 없는 브레게 시계가 식사 시간을 알려줄 때까지 오네긴은 우선 아침 의상을 차려입고 챙이 넓은 볼리바르 모자를 쓰고 시내로 마차를 몰고 가서 확 트인 대로를 활보한다.” _ 알렉산드르 푸슈킨 저, 석영중 역 <예브게니 오네긴>(열린책들)

1922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러시아.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는 하루아침에 모스크바 호텔에 영영 갇히고 만다. 신분을 잃은 백작, 몰락한 귀족은 풍부한 지식과 교양, 식견을 바탕으로 호텔의 이야기꾼을 자처한다. 그의 품위와 특유의 우아함 때문일까. 호텔 사람들은 물론 독자들마저 그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귀족이었던 만큼 신사는 미식과 술에 조예가 깊다. 축하 자리에 빠지지 않는 섬세하고 밀도 높은 와인, 샴페인이 실은 풍성하고 다채로운 향과 응축된 에너지로 인간을 담대하게 만든다는 진실을 알아챈 것이다.
피노 누아 100%로 생산한 메종 멈 RSRV 그랑 크뤼 블랑 드 누아 2018 가격 미정.
“수 세기 동안 샴페인은 결혼을 시작하고 배를 진수할 때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은 샴페인이 본질적으로 축하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샴페인이 결심을 북돋우는 데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같이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_ 에이모 토울스 저, 서창렬 역 <모스크바의 신사>(현대문학)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속 9급 서기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존재감 없고 융통성도 없는, 그래서 어쩐지 측은한 무색무취의 소시민이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추위를 낡은 외투로 견디던 그는 큰마음 먹고 새 외투를 주문 제작한다. 몸에 꼭 맞는 외투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는다. 그는 매 순간 외투의 존재를 인지하고, 길을 걷다가도 혼자 웃곤 한다. 이렇듯 인류에게 옷은 단순히 몸을 보호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직관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가져다 주는 오브제다. 우리의 주인공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지만, 그가 아낀 외투가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1981년 탄생 이후 변치 않는 클래식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막스마라 101801 아이콘 코트 카멜 5백20만8천원.
“비록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이긴 했지만, 그에게도 외투의 모습을 빌린 인생의 소중한 순간이 찾아와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고달픈 삶을 비춰주기도 했고, 견딜 수 없는 불행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 같은 불행이 닥칠 때면 황제도, 세상을 호령하는 통치자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법이다.”
_ 니콜라이 고골 저, 조주관 역 <외투>(민음사)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문학작품 속 아이템
EDITOR : 박지형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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