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무성히 확장하는 정원, 전현선

글로벌 아트 시장에서 급부상한 전현선의 추상 세계가 에르메스와 만났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미스터리한 숲은 낯설고도 익숙한 대화를 품고 있다. editor LEE DAYOUNG(freelancer)

2025.03.31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말을 산책시키는 남자와 산책에서 마주한 풍경들. 

 

도산공원으로 들어서는 길목, 유리창 너머로 무성한 봄의 장면을 마주한다. 시즌마다 산책의 즐거움을 상기시키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근사한 창. 2025년 봄 윈도 디스플레이는 전현선 작가의 ‘숲과 대화들’로 채워졌다. 올해 에르메스의 테마인 ‘드로잉’을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소로, 전통적인 흑백 드로잉 정의에서 벗어나 소묘와 회화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의 드로잉에 주목해 꾸린 것. 아크릴 물감에 물을 많이 타서 별다른 밑그림 없이 속사포 같은 붓질로 화면을 완성하는 전현선의 작업 스타일은 드로잉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 뻔하지 않다. 얇고 맑은 여러 번의 붓질로 이어지는 작품 속 세계는 기하학적 도형과 추상적 사물, 일상의 풍경이 여러 겹으로 겹치거나 나열되며 나아간다. 한 장면 다음에 등장할 예상된 장면 대신 의도적으로 배치된 전혀 다른 맥락의 장면은 겹쳐 칠할수록 스며들고 뒤로 물러나는 수채 기법을 만나 더욱 신비한 분위기를 띤다. 일상 경험을 회화의 제스처로 기록하는 작가의 작업에는 나무, 과일, 생활 물건 등의 형상적 요소와 원뿔, 기둥, 삼각형 등이 뒤틀리고 변형되며 중첩된다. 이번 작업에는 연고 없는 곳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내려간 제주에서 마주한 만남들이 자연스레 담겼다.

 

조용하고 탄탄히 커리어를 쌓아온 1989년생 전현선은 현재 글로벌 아트 시장이 주목하는 젊은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에스더 쉬퍼 갤러리의 서울과 베를린 지점에서 동시 개최된 한국 작가 단체전에 참여, 에스더 쉬퍼의 첫 한국인 전속 작가로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재 파리 르롱 갤러리에서 개인전 <Here and There>가 한창이고, 6월 아트 바젤을 앞두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일 어떤 새로움을 찾기 위해 한다고 말하는 전현선 작가.  평면에 무한히 확장하는 공간을 쌓아 올리는 그녀에게  품은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집을 묘사한 윈도 디스플레이 중 창을 통해 보이는 화가의 집. 

 

윈도 디스플레이는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이면서 제품과의 조화도 고려해야 하기에 작가로서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작업 기간은 얼마나 소요되었나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발전시키는 데 석 달, 실제 제작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사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오히려 느슨해지지 않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반영하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한 것이 저에게 맞았고 그래서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었어요. 에르메스 제품들을 제 그림 속으로 초대하려고 많이 노력했죠. 처음에는 보디랭귀지로 소통하는 것처럼 어렵기도 하고 둔탁했는데,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2차원 평면에 건축적 공간감을 조성하는 작가님 작품의 묘미가 더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저는 평평한 화면에 그림을 그릴 때도, 화면 속에 깊지 않은 얕은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요. 그래서 1m 정도 깊이의 공간 속에 다양한 요소의 레이어를 풀어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림을 구성해나가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림 그리는 일은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 같아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꾸려 하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아요. 너무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가야 더 아름다울 때가 많죠. 


조각조각 분할된 그림들은 스쳐 지나간 장면을 붙들어두고 싶은 것처럼 다가옵니다.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해서 작품에 숨겨둔 비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아요. 어떤 장면을 더하고자 했나요? 
제주에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는, 곳곳에서 낯설고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일이에요. 집 근처에서 꿩과 노루를 만나기도 하고, 본 적 없는 열매나 잎사귀를 보면 마치 새로운 발견을 한 모험가가 된 기분이죠. 영상 속에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제가 발견한 것들을 저만의 테두리 속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때때로 작업하는 스튜디오를 숲속이라고 상상하는데, 1번 쇼윈도에는 실제로 사생하듯 캔버스를 숲속에 놓아뒀습니다.

 

 

 

1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2025 봄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을 맡은 전현선 작가. photo Hwang Jung-wook 2 작가가 숲속에서 사생하는 듯한 장면을 구현했다. 3 중력이 없는 듯한 책상의 풍경. 모든 중요한 일은 책상에서 완성됐다. 

 

그림 그리는 나와 나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최대한 일대일 대응이 될 수 있도록 하신다고요. 
제가 매일 겪는 일상에서 겪는 작고 큰 일들이 모두 작업의 영감이 된다고 믿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삶 전체가 작업이 되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에도 머릿속으로 계속 시각언어를 만들고 있다고 느껴져요. 예를 들어 화가의 집을 묘사한 2번 쇼윈도는 실제적인 집보다는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3번 쇼윈도에서 말을 산책시키는 남자는 강아지와 매일 산책하는 일상에서 힌트를 얻었죠. 제가 강아지를 위해 매일 산책을 하지만 실상은 강아지가 저를 산책시키는 것에 가까워요. 쇼윈도 속 화가도 말을 산책시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시간일 거라 생각해요. 


작업 과정 중 작가님께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오랜 기간 그림 그리기에만 집중한 탓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의 간단한 스케치가 3D로 구현되고 실제 제작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했어요. 작업을 위해 제가 구상한 제작물을 전달하면 패널로 제작해주시고 그 위에 제가 그림을 그려 다시 서울로 보내 세팅하는 방식이었죠. 촬영 팀이 제주 스튜디오에 오셔서 빈 캔버스부터 제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3시간여를 촬영하기도 했어요. 이 영상은 1번 쇼윈도에 영상으로 플레이되고 있어요. 불가능했던 일들이 마법으로 실현되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전체적으로 도형보다는 회화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그림을 그릴 때 붓질과 붓 터치에 집중하는 편인데요,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붓 터치가 쇼윈도에 전체적으로 퍼져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쇼윈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림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고요. 

 

 

 

이번 윈도 디스플레이에서는 작가가 직접 만들고 칠한 펠트 작업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직접 만든 펠트 작업을 보는 재미도 있는데요. 앞으로의 작업에서 소재를 다루는 부분으로 영역이 확장될 가능성이 있나요? 
이번 쇼윈도 작업에서 배운 점이 참 많은데요. 그전까지는 제가 상상하고 떠올리는 모든 것들을 회화의 화면 속에서 풀어보고자 노력했는데, 이번 기회로 아이디어를 좀 더 다른 형태로 표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펠트는 저의 그림과 가장 느낌이 비슷한 재료인 듯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무언가를 만들어왔어요. 언젠가 저의 그림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만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를 하나의 경험 혹은 사건이라 여긴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사건을 경험한 후 남은 것은 어떤 감각일까요? 
어떤 스토리가 있는 연극 무대를 열심히 만들었는데, 연극 무대 자체로도 충분해서 극을 올리지 않기로 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런 느낌이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좋겠어요. 에르메스 제품 중에서는 제 그림과 나란히 걸린 플래드가 가장 마음에 남아요. 담요는 실용적인 물건이지만, 벽에 평면으로 걸리는 순간 그림이 되고, 제 그림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 신기했어요. 에르메스 제품들이 실용성을 떠나 하나하나 아름다운 오브제로 느껴져서 작업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숲과 대화들’이란 제목처럼 이번 작업을 관통하는 대화를 써본다면 어떤 말이 있을까요? 
“나만의 세계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밖으로 향하는 걸음,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경험들로 풍부해지는 나의 언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이다영(freelancer)PHOTO : 브랜드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