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파 레더 재킷, 탱크톱, 팬츠, 실버 네크리스, 볼드한 실버 링, 로고 브레이슬릿 모두 DOLCE&GABBANA.

킹키(Kinky)의 이름은 도발적이다. ‘특이한’, ‘변태적’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가져온 스테이지 네임부터 소속 댄스 크루인 ‘커밍아웃’과 ‘어때’까지, 그가 택한 ‘불온한’ 이름들은 친근하고도 자꾸만 부르고 싶은 고유명사로 맴돈다. 그건 우리가 무대 아래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2022년 방영된 <스트릿 맨 파이터>에서 킹키는 무대 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달리 음악이 멈추면 상대에게 예의 있게 존중을 표하고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방송에서 ‘어때’의 멤버로 얼굴을 알린 그는 이후 레드벨벳, 청하, 스테이씨, 에스파 등 케이팝 아티스트의 안무가로 참여했고, 거제 고등학교 치어리딩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빅토리>의 안무 디렉팅을 맡으며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또한 작년부터 댄서 가비의 유튜브 페이크 다큐멘터리 <디바마을 퀸가비>에서 천연덕스럽게 코미디 연기를 소화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 속 가상 아이돌 그룹 ‘리얼 가이즈’는 ‘디바마을’ 세계관의 주된 재미 요소 중 하나다. 댄스 크루 ‘커밍아웃’의 킹키, 제이미와 유튜버 김똘똘로 구성된 3인조는 흔히 생각하지 못한 ‘리얼 가이’의 면모를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스트릿 맨 파이터>에서 ‘어때’가 다른 댄서는 물론 시청자와 대중의 인식을 바꾸었듯, 킹키는 가벼운 스텝으로 보란 듯 장르를 넘나들고 걸음을 옮긴다. 댄서이자 안무가, 예능인, 그리고 일상을 사랑하는 생활인 킹키를 만났다.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화보 촬영을 준비하던 그는 카메라 앞에 서자 춤추듯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블랙 시퀸 셔츠, 팬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초등학생 때 친구들 앞에서 고전무용을 잘한다고 거짓말했다가 실제로 배우게 됐다는 일화가 범상치 않아요.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요?
나서기 좋아하고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어요. 늘 반장 선거에 나갔고, 장기자랑이 있으면 친구들을 모아 무대에 오르곤 했죠. 춤이 유행하던 시기라 춤을 연습하는 청소년들이 광명 실내체육관에 모였는데, 중고등학생 틈에서 초등학생인 저희가 거울 앞으로 가서 경쟁적으로 춤춘 기억이 나요.
수줍음이 별로 없었나 봐요.
신기하게도 무대에서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는데, 일상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았어요. 학창 시절 제 시그너처 포즈가 있었어요. 사회자가 말을 걸면 아무것도 못하는 척하다가 음악이 나오면 갑자기 안경을 벗어던지며 무대를 시작하는 거죠.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며 춤을 췄던 것 같아요. 학구열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에게 춤바람을 일으킨 걸로 유명했어요.
이후 자연스레 댄서의 길로 향했나요?
고전무용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무용수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중학생 때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두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장래 희망을 ‘춤추는 대통령’이라고 썼는데 그렇다고 춤만 추는 사람을 꿈꾼 적은 없어요. 댄서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무대 위에 오르는 게 좋은 학생이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댄서라는 직업을 찾았어요?
수능 시험을 치고 대학에 입학했는데 체중이 27kg이나 늘어난 상태였어요. 어떻게 다이어트를 할까 고민하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떠올랐어요. 바로 춤이죠. 그렇게 방송 댄스 취미반에 등록했고, 수업 첫날 꺼진 줄 알았던 인생의 조명이 다시 켜진 거예요. 월수금 저녁마다 거울 속에서 춤추는 저를 보는 게 참 좋았어요. 하지만 그때도 댄서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좋아하던 춤을 다시 추다 보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지도자 자격증 시험을 쳤고,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됐어요. 제가 느낀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아간 거죠.

하이넥 레더 재킷, 화이트 가운, 반다나 모두 RICK OWENS.
왁킹 장르는 어떻게 접했나요?
당시 방송 안무를 커버해서 댄스 학원 강사들에게 알려주는 기관에서 일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댄서 와쿤 선생님의 프리스타일 댄스 영상을 봤어요. 그게 왁킹이라는 춤인 줄도 몰랐는데 멋있더라고요. 배우고 싶어 새벽에 개설된 하드 트레이닝 반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왁킹을 할 줄 모르는 애가 높은 레벨 수업에 간 거죠. 선생님이 어려울 거라 했지만 괜찮으니 배워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 시간대만 가능했거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계를 위해 방송 안무 지도와 다이어트 댄스, 에어로빅 수업을 하고, 밤에 왁킹을 배우러 다녔어요. 종일 몸을 움직이니 버스든 영화관이든 콘서트장이든 앉으면 바로 잠들던 그 시절이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왁킹의 어떤 면이 그렇게 멋졌나요?
영화 영향을 많이 받은 장르라 순간순간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춤이에요. 다른 장르와 차별화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스토리텔링이에요. 주어진 시간 동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액팅, 포즈, 표정, 의상, 심지어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음으로써 보여주는 춤이죠. 주목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찰떡이에요.
무대에 설 때의 감각이 궁금해요. 관객이 많건 적건 무대에서 춤추는 순간이 그저 좋은 건가요?
관객이 많거나 무대가 크다고 더 좋은 건 아니에요. 또 <스트릿 맨 파이터>처럼 댄서만 서는 무대와 아티스트 백업으로 춤추는 무대를 비교해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요. 그저 무대 위에서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만으로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껴요. 물론 익숙해지면 매번 가슴 떨리진 않아요. 그러다 작년에 ‘커밍아웃’ 크루가 오랜만에 퍼포먼스 대회에 나갔어요. 숱하게 선 무대임에도 목적이 달라지니 가슴이 세차게 뛰더라고요.
여러 정체성 중 무대 위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인간 김기현이 더 좋아요. 멍하니 있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좋아하는 그런 소박한 일상의 모습이요.
주목받지 않더라도요?
그것만 추구하며 살아와서 그런지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나 봐요. 제일 싫은 건 아등바등하는 거예요. 프리랜서라 일 하나하나에 제 가치를 연결했어요. 일이 안 풀리거나 벌이가 줄어들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뻗어갔어요. 그런 시간을 겪다 보니 의식적으로 일상의 모습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자연스럽게 일상의 내가 좋다고 말할 수 있도록요.

블랙 롱 블레이저, 화이트 스트랩 셔츠, 티셔츠, 블랙 팬츠 모두 FERRAGAMO, 리본 레이스업 슈즈는 CAMPER. 팬츠와 함께 매치한 플리츠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빅토리>에 안무가로 참여했죠. 영화 현장은 어땠나요?
2023년은 정말 바쁜 해였지만 가장 후회하지 않는 일을 꼽는다면 <빅토리>예요. 시간과 노력을 쏟은 만큼 많은 것이 남았어요. 인간적으로 따뜻한 시간이었고, 춤이라는 무기가 어떻게 쓰일지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했죠. 영화 자체의 매력도 크게 느꼈어요. 조명, 의상, 세트, 소품 등 모든 요소가 합쳐져 과거를 구현하는 행위가 예술적이었어요. 무엇보다 모두가 작품 하나만 보고 똘똘 뭉쳐 달려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어요.
<디바마을 퀸가비> 이야기를 해볼까요. 처음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
평소에도 가비와 자주 시시껄렁한 상황극을 하며 놀았어요. 그러다 가비가 콘텐츠를 시작했고, 조찬 모임 에피소드에 초청받았어요. 친구들과 하루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출연했어요.
첫 출연에 재킷에 열쇠를 직접 붙여 리폼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어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달랐을 텐데 친구들과 노는 자리라 더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아요. 화려하게 입고 오라고 하기에 ‘내가 더 튀어야지’ 하며 준비했어요. 또 시즌 2 마지막 화인 기자회견의 까마귀 같은 옷을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검은 옷을 입어달라는 요청에 그 의상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제이미 가발은 웃길 것 같아서 제가 추천했어요. 그런데 가발을 제안하고 보니 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털 달린 모자를 준비하고, 입술을 창백하게 칠했어요.
가비 님과는 어떻게 친해졌나요?
와쿤 선생님 친구로 처음 알게 됐고, 마침 코로나 시기에 같은 동네에 살았어요. 댄서들 모두 일이 없던 때라 자주 만나며 동네 친구처럼 친해졌어요. 동갑내기라는 점도 한몫했고요. 서로 칭찬하는 사이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또 가비는 제가 무슨 말만 해도 웃어서 저도 에너지를 얻어요.
<디바마을 퀸가비>에서도 가비 님은 많이 웃죠. 그런데 킹키 님은 어떻게 웃지 않고 연기를 하나요?
웃음을 참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안 웃겨요. 초반 에피소드를 보면 제가 실소를 터뜨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참을 만한 웃음이었거든요. 이후로는 나까지 웃으면 흐름이 끊긴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맺기 위해 웃음을 참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전혀 웃기지 않아요. ‘웃기는 장면이 아닌데 다들 왜 웃는 거지?’ 생각하는 정도까지 온 거죠.

레드 컬러 프레임이 돋보이는 선글라스 GUCCI, 블랙 퍼 햇과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리얼 가이즈’로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반전의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인데요.
사실 ‘리얼 가이즈’는 또또의 즉흥적인 노래에서 출발해 바로 다음 주에 찍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가이즈’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출발했으리라 생각해요. 특히 ‘남성성 대결’ 등에서 반전의 묘미가 드러난 것 같아요. 이름과는 상반된 복장과 행동으로 ‘우리가 진짜 남자다’라고 주장하는 데서 나오는 즐거움이 있어요. 모든 걸 떠나 그냥 재미있고요.
예전 인터뷰에서 선택이 틀렸는지 맞는지는 해봐야 알 테니 그냥 해보라고 말했죠. 평소 선뜻 도전하는 편인가요?
목 뒤쪽에 타투가 하나 있는데 시칠리아에서 기념으로 새겼어요. ‘fallo’는 이탈리어로 그냥 하라는 ‘do it’의 의미예요. 재미있는 점은 타투이스트가 머뭇거리면서 말하길,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스페인어로는 ‘실패’를 뜻하고요. 목에 실패라는 단어를 새겨야 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그럼에도 ‘그냥 해’라는 의미는 변함없잖아요. 실패든, 남자의 성기든, 비하하는 말이든 상관없이 이 단어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새겼고 이 태도를 지키려고 노력해요. 요즘 러닝을 즐기는데, 러닝이 ‘그냥 해’의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집을 나서기 전에는 너무 하기 싫어요. 그런데 막상 나가서 뛰면 정말 상쾌하고 그리 힘들지 않더라고요. 뛸 때마다 실천의 정신을 느껴요. 전반적인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요.
러닝을 하며 긍정적인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네요.
수치로 보이는 점도 좋아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속도가 느리지만 그런 점에서도 배워요. 어쨌든 완주했고 기분은 똑같이 상쾌하니까요. 기록이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내일 또 뛰어야겠다 싶거든요.
댄서로서 영향력이 커졌어요. 춤추는 사람으로 어떤 꿈을 품고 있나요?
거창한 꿈은 없고, 오래오래 즐겁고 싶어요. 언제 춤을 그만 출지도 모르겠어요. 춤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라 또 다른 즐거운 일이 찾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그걸 할 수도 있고요. 영화에 참여하고 콘서트 디렉팅을 했을 때는 무대 연출을 배우고 싶었어요. 훗날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그건 분명 저를 즐겁게 하는 일일 테고, 제게 조명이 켜진 듯한 느낌을 주는 일일 거예요. 사실 춤이라는 영역 안에서도 제 일은 계속 바뀌었어요. 방송 안무를 수업하다 갑자기 왁킹을 시작했고, 드랙이나 힐 댄스도 했다가, 미국에 다녀온 뒤에는 젠더리스 재즈 안무로 스타일이 바뀌었고, 방송 출연을 계기로 케이팝 안무 창작을 시작했죠. 그러한 변화가 있었기에 앞으로도 또 다른 즐거운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제가 본투비 댄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춤이 없으면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다만 제 삶에 춤만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춤 외에 다양한 취미와 취향이 저를 이뤄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생활인 김기현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나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제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저를 찾기를 바라서예요. ‘기현이가 이렇게 큰 존재였나’ 생각할 정도로요. 저에게는 그런 게 중요해요.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오래 기억하고, 사라졌을 때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STYLIST 이유진 HAIR 강지원 MAKEUP 황보나영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DITOR : 박지형PHOTO :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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