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부드러운 신호탄, 수프

앙증맞고 기발한 아뮈즈부슈에 감탄했다면, 다음 코스는 요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속을 달래는 수프다. 흐름이 고조되기 전 속을 편안하게 이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겨울날 따뜻한 수프는 찬 공기를 지나온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요리다. 그렇다고 익숙하고 친근한 맛일 것이라는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다섯 레스토랑의 수프는 적절한 온도와 다채로운 식감, 조화로운 풍미로 당신을 놀라게 할 테니. 여기에 셰프 5인이 추억하는 수프의 기억도 함께 전한다.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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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eoul Hannam 

모던 한식 다이닝 소설한남에서 수프처럼 코스 초반에 등장하는 메뉴는 ‘고구마 타락죽’이다. 한국인에게 죽만큼 편안하고 다감한 음식이 있을까. 군고구마 속과 찹쌀에 우유를 넣고 쑤어 부드럽게 완성했는데, 고구마 껍질을 우유에 우려 향을 끌어올린 것이 포인트다. 플레이팅은 먼저 그릇 아래 찰옥수수 범벅을 깔고, 타락죽을 담은 뒤 얇게 슬라이스해 토치로 겉을 그을린 무화과, 오세트라 캐비아를 올렸다. 구수한 타락죽 위 무화과와 캐비아가 ‘단짠’의 조화를 이룬다.

 

“미국 하얏트 리젠시 레스턴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시절 랍스터 비스크 수프를 처음 맛본 순간이 떠오른다. 묵직한 크림을 활용해 미국식으로 변형한 수프였는데, 크리미한 식감과 진한 감칠맛이 강렬했다.” _ 엄태철 셰프

 

 

 

 

Restaurant On

레스토랑 온의 수프는 농도와 온도가 핵심이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따뜻해야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콜리플라워 수프’는 콜리플라워 퓌레와 우유, 크림으로 만든 단순한 수프 위에 데친 뒤 오븐에 익힌 랍스터와 소금물에 살짝 데쳐 올리브오일을 두른 애호박을 올렸다. 너무 되직하지도 너무 묽지도 않은 가벼운 농도 덕에 부담 없이 수프가 스며들고, 해산물과 채소의 결이 다른 단맛이 어우러지며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온지음에서는 코스를 화려하게 시작하기보다 속을 정돈하도록 밤 타락죽을 초반에 내놓았다. 밤과 우유라는 단순한 재료로 만든 죽이 알맞은 온도와 농도로 속을 달래주는 경험이 무척 좋았다. 그 경험 덕에 레스토랑 온에서도 수프를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순서에 배치한다.” _ 김준형 셰프

 

 

 

 

Restaurant OY 

레스토랑 오와이의 아뮈즈부슈가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라면, 수프는 식사를 시작하며 인사를 건네는 메뉴다. 겨울 시즌에는 제철 재료를 활용해 
‘전복 감자 사프란 수프’를 선보인다. 버터에 익힌 대파를 맨 아래 깔고, 사프란으로 맛에 포인트를 더한 감자 수프를 담은 뒤 마늘 에스푸마로 덮었다. 여기에 팬에 살짝 구운 전복을 올리고 크루통으로 마무리했다. 아삭한 대파와 부드러운 수프, 쫄깃한 전복, 바삭한 크루통까지 대비되는 텍스처가 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추운 겨울날 파리 14구의 비스트로 라시에트에서 생선 수프를 먹은 적이 있다. 3~4가지 생선으로 육수를 진하게 우리고 추어탕처럼 생선을 갈아 넣은 수프였는데, 이제껏 먹어본 육수 중 생선으로 낼 수 있는 가장 깊은 맛을 느꼈다. 이후 비슷한 맛을 내려 시도해봤지만 도저히 그때의 깊은 맛은 나지 않더라.” _ 오세훈 셰프

 

 

 

 

Hulotte

윌로뜨의 겨울 시즌 두 번째 앙트레인 ‘땅콩호박 수프’는 전채에서 메인 요리로 이어지는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릇 바닥에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깐 뒤 치킨스톡을 가미한 땅콩호박 수프를 담고, 생크림을 혼합한 마스카르포네 크림치즈를 얹어 완성했다. ‘양고기 불렛트’도 메뉴의 일부다. 오븐에 익힌 후 숯불에 구워 훈연 향을 입힌 양고기 미트볼은 지리산에서 직접 채취한 나뭇가지에 꽂아 자연의 향을 전한다. 고기를 수프에 넣어 가볍게 부순 뒤 한입에 떠먹으면 된다.

 

“프랑스에 살던 시절 크리스마스 마켓 한가운데서 맛본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소박한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요리다. 손에 쥔 뜨거운 그릇과 수프에서 
피어오르던 김은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주었다.” _ 이승준 셰프

 

 

 

 

L’oignon 

프랑스어로 양파를 뜻하는 이름처럼 르오뇽의 시그너처 메뉴는 ‘어니언 수프’다. 육류를 배제한 페스코 베지테리언 다이닝인 만큼 수프에도 치킨이나 
비프 스톡 대신 직접 우린 채소 스톡에 약간의 피시 스톡을 배합해 활용한다. 다만 채수는 육류 스톡보다 맑기에 루(roux)를 더해 농도를 조절했다. 
어니언 수프의 핵심은 뭐니 뭐니해도 양파 캐러멜라이징이다. 양파를 버터에 볶다 수분을 날리고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맛을 끌어올렸다. 
직접 만든 바게트와 모차렐라 치즈로 마무리한, 고전적이고 따뜻한 한 그릇이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패밀리 레스토랑 코코스에서 인생 첫 양파 수프를 먹었다. 처음 경험하는 음식을 신기해하면서 맛있게 먹던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립다.” _ 허진석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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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지형PHOTO :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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