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화된 음악을 초월해 사운드의 창작과 조합 그 자체를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사운드 아트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는 예술 매체이다. 그래서 감상자가 어떤 태도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2025.01.13
정해진 규격과 기준에 한해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소리 단위에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 사운드 아트는 한때 비주류 실험예술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최신 트렌드를 대표하는 경향이자 지표로 진화중이다.

한국 전자음악계의 선구자적 이력을 자랑하는 가재발은 사운드를 주요 미디어로 대중적인 범주와 순수예술적 범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술 실천을 펼쳐왔다.
보통은 소음이라 할 법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알 수 없는 도식으로 우리의 시야를 뒤덮는 형이상학적 영상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감상한다. ‘사운드 아트(Sound Art)’라고 호명하는 이 생소한 예술 장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를 아우르는 기간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자적 오디오 신호를 생성하는 장치인 신시사이저(synthesizer)의 발명 이후로 이를 악기 삼아 이른바 전자음악으로 통칭하는 특정한 음악 장르는 예술가들의 도전적인 아방가르드 정신을 대변하는 주요 범주를 이뤄왔다. 전통적인 음악적 표현의 형식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의 음렬주의적 규범에서 탈주해 사운드 아트는 상대적으로 더 근본적이고도 넓은, 상위 개념이라 할 사운드의 세부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관습적 음악 구조와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 생산의 방식을 주창한다. 사운드 아트의 최초에는 그 실험성에 집중해 아트적 측면이 강조된 형태로 범주의 진전이 있었다면, 당대 최신 기술의 예술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테크노(Techno), 앰비언트(Ambient), 드럼 앤드 베이스(DnB), 하우스(House), 트랜스(Trance), 신스팝(Synthpop),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등 다양한 하위 분류가 등장했고, 그로부터 다양한 문화 영역이 확장 생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난해성으로 인해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관심의 후순위에 있었다. 해당 장르의 이러한 상황에서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언제나 대중과 전문성 사이의 괴리를 두고 이를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고심해왔다. 이 분야에서 특히나 척박한 한국 문화예술의 지형에서도 괄목할 만한 노력이 지속됐는데, 그 앞선 입지를 국내외적으로 표상하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이곳 서울에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1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로, 또 시청각 매체 예술가이자 기획자로서 사운드 아트라는 영역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아티스트 가재발. 2, 3 사운드 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창작 수단인 모듈러 신시사이저. 특정 기준으로 체계화된 각 구성요소들의 합으로 이뤄진 이 장비는 창작자 각자가 추구하는 조합의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생성할 수 있다.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청각(audio–visual) 매체 예술가이자 기획자로서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Gazaebal)의 활동은 실험 예술로서 사운드 아트의 영역에 큰 획을 그었다. 그렇듯 한국 전자음악계의 선구자적 이력을 자랑하는 그는 사운드를 주요 미디어로 대중적인 범주와 순수 예술적 범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술 실천을 펼쳐왔다. 작가가 행하는 풍부한 미적 실천의 스펙트럼에서 모듈러 신시사이저(Modular Synthesizer) 장치는 중요한 창작 수단이다. 당대의 혁신적 음향 공학의 집적체인 모듈러 신시사이저는 특정 기준으로 체계화된 각 구성 요소들의 합으로 이뤄진 음악 장비로, 창작자 각자가 추구하는 조합의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생성할 수 있다. 가재발 역시 정해진 규격과 기준에 한해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좀 더 근원적인 소리 단위에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전자 신호 단계의 원초적 사운드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그가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택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각기 다른 조작 기능을 탑재한 개별 모듈을 기초로 그것을 조합하는 사용자 정의(customization) 기반 구조로부터 독립적인 음향 체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모듈러 신시사이저의 역량은 업계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특히 나열(sequencing)이나 변환(mixing) 등 일종의 직관적인 편집(editing) 행위를 통해 실시간으로 맞춤형 디자인을 구현하는 모듈러 신시사이저 특유의 시스템은 기술과의 결합에서 다시금 동시대 예술을 형성하고자 하는 당대적 경향을 뒷받침한다.

1-3 사운드 아트 장르의 발전을 위해 가재발이 설립한 WeSA는 매년 해당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육성하고 작업기회를 제공해온 대표적인 오디오-비주얼 그룹이다. 성수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언리더블 사운드(UN/readable Sound)>, 2024
사운드 아트 장르의 발전을 위해 가재발이 설립한 WeSA는 매년 해당 장르의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작업 기회를 제공해온 국내의 대표적인 오디오–비주얼 예술 단체다. 올해로 벌써 11주년을 맞는 <WeSA 페스티벌>은 실험적 오디오–비주얼 장르를 위한 맞춤 환경을 안정적으로 조성해낸 국내 유일무이한 공연장인 상수동 ‘틸라(THILA)’에서 열린다. “Sound is the New Music”을 주제로 하는 2024 WeSA 페스티벌은 특별히 해당 단체의 수장인 가재발과 함께 프랑스의 권위 있는 하이브리드 및 디지털 아트 국제 페스티벌인 <비디오폼(VIDEOFORMES)>의 대표인 가브리엘 V. 수셰르(Gabriel V. Soucheyre)와의 협업을 통해 한층 폭넓은 아티스트 풀을 꾸렸다. 특히 공연 형식을 중심으로 하는 사운드 기반의 실험 예술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예술가 육성 시스템을 함께 갖춘 WeSA이니만큼,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운드 및 음악 역사에 관한 다양한 강연 프로그램도 제공됐다.

(왼쪽, 가운데) 올해로 11주년을 맞은 2024 WeSA 페스티벌에 참여한 듀오 아티스트 엘리아스 메리노와 타데이 드롤츠. 이 페스티벌은 오디오-비주얼 장르를 위한 맞춤 환경을 안정적으로 조성해낸 국내 유일무이한 공연장인 상수동 틸라에서 열렸다. (오른쪽) 2024 WeSA 페스티벌의 협업자 가브리엘 V. 수셰르
2024 WeSA 페스티벌에 참여한 듀오 아티스트 신스피시즈(SYNSPECIES)는 엘리아스 메리노(Elas Merino)와 타데이 드롤츠(Tadej Droljc)의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들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존재에서 영감을 받아, 무관한 존재들 사이의 갈등적 상호작용을 조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들은 “사운드 아트는 이해하는 것이 아닌, 신체를 통해 감각하는 매체”라 설명하며, “디지털 중심 사회에서 소리란 어떤 종류의 자기표현을 위한 하나의 비가시적 창작의 재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운드 아트에서 우리는 사운드 그 자체의 요소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24 WeSA 페스티벌의 협업자 가브리엘 V. 수셰르는 사운드 아트를 감상하는 데 “감상자가 어떤 태도를 갖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앞으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같은 신기술의 등장으로 예술 창작과 미적 체험의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반응해 사운드를 전에 없는 창작의 조건이자 계기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하는 WeSA의 디렉터 가재발은 사운드 아트를 “이 시대 새로운 차원의 감각 방식을 표상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우리 주변의 일상을 이루는 주요한 물질 혹은 비물질적 조건으로서의 기술 환경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면서, “형식화된 예술을 초월하는 감각 그 자체로서의 사운드가 곧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목표로 하는 이 사운드 아트의 속성에 관심을 가져보기를 관객들에게 제안했다.

전자적 오디오 신호를 생산하는 장치 신시사이저
사운드 아트는 퍽 오랜 기간 비주류 실험 예술을 상징해왔지만, 지금은 그와는 사뭇 달라진 상황이다.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를 사는 요즘 세대에게 디지털 기반의 사운드 아트는 더는 어렵거나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여기에 예술로서의 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당대의 의지가 더해져, 사운드 아트의 범주는 어쩌면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이자 관심의 지표로서 자기 의미를 갱신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과잉의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는 이때, 신체의 원초적 감각에 오롯이 의존해 자기 자신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원한다면 바로 사운드 아트의 영역을 주목해보자.
writer JANG JINTAEK(동시대 예술 연구자)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사운드 아트
EDITOR : 장진택PHOTO : 김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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