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태와 한군. 포크 음악을 하는 ‘선과영’이자 치앙마이 바느질 워크숍을 운영하는 클럽장인 이들은 서로의 실과 바늘이 되어 아름다운 인생을 직조한다.
2025.01.02
일상생활에서 흔히 버려지는 비닐 봉투, 종이 가방 등을 수선하고 장식해 완성한 작품들.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하 죽바클)’이라는 바느질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필사적인 이름과 상반되는 여유로운 치앙마이 정신을 모토로 하신다고요 .
한군_저희가 핵심적으로 공유하고 싶은 건 치앙마이 정신이에요. 수업이 3시간인데 바느질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 설명하는 데 30분을 할애하죠. 저희 바느질은 정말 쉽고 틀려도 괜찮고 삐뚤해도 괜찮고 엉망이어도 괜찮거든요. 저마다의 간격과 속도가 있기 때문에 그저 내 마음에 쏙 들면 그걸로 된 거예요.
치앙마이에서 운명처럼 바느질을 배우셨다고요.
복태_2016년 처음으로 치앙마이에 갔는데, 솔직히 그곳에 대해 잘 몰랐어요. 주변 지인들이 자주 다니는데 너무 좋은 곳이고 왠지 저희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소개해줬죠.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정말 우연히 아이 옷을 손으로 지어 파는 가게를 발견했고, 마침 우리의 바느질 스승이 된 엑(Eak)이 그곳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가가 대뜸 바느질을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치앙마이 바느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복태_저희가 알려드리는 바느질은 태국 치앙마이에 사는 소수민족의 전통 의상에서 차용한 방식인데요. 제작 방식이 정말 단순하고 줄자나 패턴 없이도 옷을 만들 수 있어요. 처음 선생님에게 배운 태도는 정말 느슨하다는 거예요. 바느질하는 것을 보여주더니 “Go” “Run” “Keep going” 끝이에요. 간격은 몇 밀리미터고, 몇 센티미터 접어야 하는지 등 기준이나 원칙이 없어요. 그러니 선생님 말에 더 귀 기울일 수밖에 없죠. 치앙마이 바느질은 힘을 주는 순간 다 틀어져요. 계속 힘을 빼야 균형이 맞춰지죠. 엑이 바느질하는 걸 보면 원단이 다른 건가 싶을 정도로 바늘이 서핑하듯 슥슥 움직여요. 그러고 홈질을 빼면 천이 울지도 않고 펴져 있죠. 이렇게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10년 넘게 지속했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힘을 뺀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힘 빼기의 기술을 익힌 셈이네요.
복태_힘을 빼야 실과 원단이 오히려 탄탄하게 엮여요. 그래서 천천히 급하지 않게 만든 옷일수록 튼튼하죠. 시간에 쫓겨서 만든 옷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거든요. 이게 우리의 삶에도 적용돼요. 얼마 전에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계속 힘을 빼라는 거예요. 힘을 빼야 대여섯 시간씩 연습할 수 있거든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운영하는 복태와 한군.
초심자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나요?
복태_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지어 입는 게 별거 아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패턴 없이 눈대중으로도 만들 수 있게, 한 가지 기술만 터득해도 옷을 지을 수 있게 알려드리죠. 원단을 이을 수 있는 기술, 원단을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계속 제공합니다. 마치 신문지로 옷을 만드는 것처럼 원단에 가위를 대는 일이 두렵지 않게 계속 더 쉽게 만드는 방법, 그렇지만 예쁜 방법을 계속 찾고 있어요. 모두가 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가세요.
죽바클에 오는 분들의 연유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 통성명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신다고요.
복태_치앙마이 친구들은 이름이 다 길어서 애칭을 쓰거든요. 스승님인 엑도 애칭이에요. 저희는 몇 년 동안 진짜 이름이 엑인 줄 알았는데 여권을 주고받다가 진짜 이름을 알게 됐어요. 서로의 정보를 매년 방문할 때마다 새롭게 알아가는 거예요. 자연스레 알아가는 것이 당연한 거죠. 우리나라는 기본 정보를 쭉 살핀 다음 친해지잖아요. 저희는 치앙마이 정신을 지향하니까 워크숍에서도 자주 오시는 분끼리 인사를 나누다 자연스레 알게 되는 정보만 나눠요. 지역도 연령대도 정말 다양해요. 수선 수업에는 가끔 남성분도 계세요.
두 분에게 바느질이 주는 기쁨은 어떤 것인가요?
복태_아이들에게 직접 뭔가를 만들어주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게 매력적이에요. 더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어딘가 몰입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재봉틀을 꺼내면 아이가 깨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흐름이 수시로 끊기니까 시작하기 애매하고요. 그럴 때 이 바느질이 혜성같이 나타난 거예요. 순간적으로 빠르게 몰입할 수 있고 5분만 해도 너무 행복하죠. 아이가 부르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으면서 또 대화하면서 할 수도 있어요. 바늘과 실을 잡는 순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막이 쳐진달까요? 그냥 아이를 돌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생산적인 걸 만들면서 아이와 함게 머물 수 있는 지점이 너무 매력적이죠.
한군_아이들도 악기 연주할 때는 시끄럽다고 하는데 바느질할 때는 건드리지 않아요(웃음).

1 비닐봉투에 실을 꿰면 더 튼튼해지고 보기에도 예쁘다. 2 바느질에 필요한 기본 도구들을 담은 집 또한 같은 것 없이 개성이 묻어난다. 3 생수통을 묶어주던 비닐에 스티치 작업을 하는 한군. 4 비정형의 아트워크 작업들은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다. 5 가방이 될 두 면을 잇고 있는 복태. 누빔 원단을 활용해 한국적인 요소가 도드라진다. 6 한솥갤러리에서 진행된 <손의 시간> 전시에서 죽음의 바느질 클럽 작품들을 함께 전시한 풍경. 7 찢어진 우산 부분을 직조 자수로 면을 만들어 채웠다. 8 버려지는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한군의 작품들. 9 구멍 나고 해진 곳을 티 나지 않게 가리는 것이 아니라 환한 새 무늬를 만들어주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치앙마이식 바느질이다.
죽바클 활동은 생활용품과 수선 아트워크 작업 두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각자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복태_제가 주로 실용적인 걸 만들고 한군이 수선과 아트워크 작업을 해요.
한군_아트워크를 할 때 전체적인 큰 그림은 복태가 아이디어나 의견을 많이 내요. 복태가 2016년에 바느질을 처음 배웠고 저는 2019년도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원래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어요. 자수, 스티치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2019년 치앙마이에서 스승님이 입고 계신 재킷을 보고 꽂혔죠. 프랑스 자수는 정교하게 어떤 형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정말 자유롭게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실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듯한 수가 놓인 걸 보고 그때부터 스티치, 수선 기법 등을 배워서 돌아왔어요. 그후 팬데믹으로 몇 년간 태국에도 못 가고 공연도 없으니 바느질에 몰입한 거죠. 헤드랜턴 끼고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재킷에 바늘을 꽂아놓고 걸으면서도 바느질을 했어요.
비닐, 종이봉투 등 흔히 버려지는 것들에 바느질을 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군_치앙마이에 매년 가서 생활하다 보면 비닐봉투가 원하지 않아도 자꾸 쌓여요. 차마 버릴 수 없는 거죠. 학창 시절부터 분리수거 담당 학생이었어요. 쓰레기랑 인연이 깊은데, 항상 쓰레기를 보고 만지고 정리하면서 쓰레기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같은 묘한 감정이 있었어요. 어쩌면 이걸 다시 살려내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일 수도 있고요. 지구를 위해 급진적인 환경운동은 할 수 없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소한 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 거죠. 일단 예쁘잖아요. 투명하고 반짝이고.
작업을 시작할 때 대상에 대한 계획이 있을 것 같아요.
한군_전 이 비닐봉투를 진짜 다시 쓰려고 이렇게 만들었어요. 예전부터 실험적이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은 걸 좋아했어요. 작고 세밀한 것들을 심미적으로 꾸미는 것, 색을 사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새로운 작업을 하려면 그 일에서 끝을 봐야만 그다음 작업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가장 완성도 있는 첫 번째 작업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비닐봉투를 뀄어요. 비닐을 실로 꿰면 엄청 튼튼해져요. 실제로 1년째 실봉투로도 쓰고 급할 땐 책을 담아 갈 때도 있어요. 이 생수통 비닐은 조명을 넣어 갓등으로 쓸 수도 있고요. 매우 좋은 반려 비닐봉투죠.

치앙마이에서 원단과 원단을 연결하는 법을 배우는 복태.
직접 만든 모자나 조끼의 형태도 남달라요.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복태_소수민족이 입는 벨벳 재질이 아닌 제가 입고 싶은 원단으로 대체하니 현대적으로 풀리더라고요. 그분들의 원피스, 재킷, 바지를 뼈대로 가방과 모자 등 점점 범위를 넓혀가고 있죠. 스승님도 저희도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새로운 기술도 알려주시는데 모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화하기에는 약간 빈티지해요. 요즘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만들어보면서 모양을 찾고 있어요. 또 치앙마이는 더운 나라니까 누빔이 없거든요. 우리나라 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누빔 옷을 만들면서 누빔 가방도 만들게 됐고요. 한군이 오늘 쓰고 온 것도 발라클라바처럼 쓰는 누빔 방한모인데, 조선 말기에 쓰던 볼끼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죠. 모양을 계속 잡아가고 있어요.
한군_자연에서 얻는 것이 많아요. 강아지와 산책하며 바라본 계절마다 달라지는 성미산의 색감에 영감을 받죠. 반대로 완전히 타로 카드 뽑듯 내키는 대로 색 하나를 뽑아 진행한 작업도 있고요. 순간순간 파생되는 리듬과 화음, 하모니가 있죠. 즉흥 연주처럼 따라가다 보면 어떤 맥락이 생기고 여기서 마무리하면 되겠다는 곳에서 마쳐요.
바느질하는 ‘죽바클’ 클럽장과 포크 음악하는 ‘선과영’. 두 직업 사이의 시너지도 있을 것 같아요.
복태_생각 없이 바느질하다 보면 오히려 가사적인 영감이 떠올라요. 여기서 연습한 힘 빼기가 노래 부를 때, 무대에 설 때도 적용돼요. 무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한군_바느질과 음악은 다르지 않아요. 길고 짧은 스티치 땀들은 장단의 리듬이거든요. 화음과 조화, 하모니와 밸런스에 대한 얘기인 거죠. 실제로 연주도 더 세밀해진 것 같고요. 소근육을 사용해 섬세하게 장력을 조절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기타도 현이고 실도 현이죠. 같은 선을 다루면서 어떻게 당겨야 하고 어떤 각도로 바늘을 넣을지를 생각하고 감각하다 보니 같은 곡을 연주해도 다른 느낌이 확실히 있어요. 포크 음악을 하고 있지만 바늘과 음악, 둘을 통합한 어떤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자녀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에서 소수민족의 바느질 기술을 익히며 그들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한다.
새롭게 계획 중인 시도가 있나요?
복태_올해부터 한국적인 것과 어떻게 엮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마침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삼베를 키우고 직조하는 마을, 누에를 키워 명주를 직조하는 마을과 협업할 기회가 생겼어요.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이렇게 기회가 오는구나 싶어요. 그동안 치앙마이 소수민족 분들이 직조한 원단을 썼는데 명주와 삼베를 써보기 위해 연구하고 있어요. 미끌거리고 빳빳해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소재인데 어떻게 다룰지 방법을 찾아 알려드리고 싶어서 만져보는 중이에요.
치앙마이는 이제 두 분에게 여행지 이상의 남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 같군요.
한군_고향이 전주인데 거기 가는 것보다 치앙마이에 가는 게 더 편한 마음이 들어요.
복태_저희는 관광하기 위해 여행을 가지는 않아요. 한 번 가면 짧으면 열흘 넘게, 기본 한두 달 지내죠. 거기서 일상을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치앙마이를 6~7번 갔지만 오히려 관광지는 잘 몰라요.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올드타운, 사원 같은 데도 가지 않으니까요. 다만 그곳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친구가 또 친구를 소개해주며 해마다 친구가 늘어요. 음악 하는 친구, 빵집 하는 친구, 공예 하는 친구 등과 같이 캠핑 가고 축제 가면서 일상을 공유해요. 좋아하는 바느질과 수영만 내리 하는 날도 있고요. 그렇게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받아 오는 거죠. 지금 살고 있는 성미산 마을만큼 좋아하는 곳이에요.
치앙마이 바느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에게 팁이 있다면?
복태_저희가 치앙마이 바느질을 알리고 있지만 치앙마이에서도 바느질하는 사람은 소수예요. 소수민족 분들은 기본적으로 다 바느질을 하시지만 대부분 숨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들이 도시에 와서 물건을 파는 건 아니거든요. 치앙마이에 가면 바느질 워크숍이 많이 열릴 것 같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소수민족을 보러 가려면 목에 링 차고 있는 카렌족 마을을 돈 내고 관광하는 식이에요. 그건 진짜 소수민족을 만나는 게 아니거든요. 저희를 통해서 스승님인 엑을 찾아가야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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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다영PHOTO : 김네오, 전시 이미지 한솥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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