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카 브랜드가 SUV를 만드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익을 좇느라 순수함을 잃었다’는 비난은 이제 원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SUV가 스포츠카 브랜드의 정체성을 흔들지 않음은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고, 오히려 스포츠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마세라티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마세라티는 스포츠카 브랜드면서도 럭셔리함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장르인 GT, 즉 그랜드 투어링 카의 정통파다. 그런 브랜드가 첫 SUV인 르반떼를 내놓았을 때는 곱지 않은 시선이 꽤 있었지만, 두 번째 SUV인 그레칼레를 두고는 기대와 환영의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다. 르반떼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데 이어 MC20가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라는 마세라티의 정통성에 쐐기를 박아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한 덕분이었다.

Maserati Grecale Folgore 마세라티 그레칼레 폴고레 길이 4,865mm 너비 1,948mm 높이 1,651mm, 최대출력 410kW(558마력), 최고속도 220km/h, 0→100km/h 가속시간 4.1초, 주행 가능 거리 501km(WLTP 고속 기준), 최대 충전 전력 150kW, 배터리 용량 96kWh, 가격 미정.
그처럼 좋은 탄생 배경에도, 그레칼레의 어깨는 무거웠다. 전동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마세라티의 캐릭터를 지키면서 더 폭넓은 소비자를 매료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레칼레는 고르는 즐거움이 있는 차로 태어났다.
동력원 측면에서는 아랫급 트림인 GT와 모데나에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로 성능과 효율의 균형을 기대할 수 있고, 고성능 트로페오 트림은 마세라티의 헤일로 모델인 MC20의 심장을 가져와 짜릿함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모델이든 섬세한 맞춤 주문 프로그램인 푸오리세리에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수 전기 동력원을 얹은 폴고레가 그레칼레 라인업에 더해졌다. 이는 고성능 럭셔리 차를 소유할 때 느낄 수 있는 ‘길티 플레저’에서 죄책감을 날려버리는 한 수다.

이탈리아어는 무슨 표현이든 예술적 느낌을 주는 마력이 있는데, 마세라티가 순수 전기 라인업에 붙이는 이름인 폴고레도 예외는 아니다. 폴고레(Folgore)의 뜻은 번개. 전기에너지를 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세라티 유전자에 담긴 짜릿함을 전기차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세라티는 럭셔리 브랜드로는 비교적 발 빠르게 전동화에 힘을 실었다. 우리나라에는 그레칼레 폴고레를 가장 먼저 선보였지만, 이미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의 폴고레 버전도 공개되었다. 그리고 곧 마세라티의 헤일로 모델인 MC20에도 전기에너지로 움직이는 심장이 담길 예정이다. 다른 이탈리아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첫 순수 전기 모델을 공개할 무렵이면, 마세라티는 거의 모든 모델에서 전기 동력원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시선을 넓히면 비슷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브랜드 중 전동화에 더 적극적인 곳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마세라티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차를 만들고 파는, 즉 럭셔리보다는 프리미엄 성격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레칼레 폴고레는 확실히 특별한 차로 기대할 만하다. 제대로 된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순수 전기 SUV라는 지극히 드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레칼레 폴고레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전기 동력원 특유의 직접적인 가속감, 그리고 배터리 덕분에 낮아진 무게중심은 마세라티 특유의 스포티한 주행 특성과 주행 모드에 따른 감성적 변화를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실내는 내연기관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과 탁월한 소재가 어우러지고, 특히 뒷좌석은 동급에서도 넉넉해 어떤 목적으로도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나아가 그레칼레 폴고레의 소너스 파베르 오디오 시스템은 전기차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주행 사운드를 통해 더욱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전기차는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다. 언뜻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레칼레 폴고레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기 동력원이 있기에, 디지털 시대에도 럭셔리 스포츠 SUV의 감성과 여유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류청희 프리랜서 자동차 저널리스트 겸 자동차 평론가. <비테스>,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등 자동차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역사와 문화, 기술 및 산업과 관련된 다채로운 자동차 이야기를 특유의 담담한 시선과 필력에 담아 명쾌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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