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쉐 타이칸 길이 4,963mm 너비 1,966mm 높이 1,379mm, 최대출력 408마력, 최고속도 230km/h, 0→100km/h 가속시간 4.8초, 주행 가능 거리 458km, 최대 충전 전력 270kW, 배터리 용량 89kWh, 가격 1억2천9백90만원부터.

‘타이칸’이라는 이름은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전기차’가 더 이상 낯선 물건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인 타이칸이 발표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새로운 도전을 검증하려 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타이칸이 많이 팔린 나라다. “포르쉐에서도 전기차가 나왔다며?” 하는 말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다.
포르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떤 회사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저 값비싼 차를 만드는 회사 중 하나로 여기기엔 이상한 점이 많다. 고급차 회사면서 대형 세단을 만들지 않고, 자동차 회사라면 다 만드는 세단도 만들지 않는다. 유럽 브랜드인데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해치백 스타일도 만들지 않는다. 중국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공장 증설을 발표하는 시점에도 “생산을 늘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얼핏 보면 돈 버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는 회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브랜드다. 스포츠카만 만든다. ‘스포츠카가 무엇인가’라는 건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철학적 영역이지만, 포르쉐는 ‘스포츠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차만 만든다. 2000년대 초반까지 포르쉐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작은 자동차 회사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높은 인지도에 걸맞지 않게 911과 박스터, 단 두 종의 자동차만 만들었다. 둘 다 투 도어에 성인 두 명밖에 앉을 수 없는 차였다. 엔진이 운전석 뒤에 위치한 탓에 트렁크가 좁거나 아예 없는 데다 무게중심 때문에 제대로 운전하기는 또 무척 까다로워서 실력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몰기가 어려운 차였다. 판매량은 당연히 많지 않았고,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회사 규모는 작았다.

회사는 세 명의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만들고 키웠다. 첫 번째 페르디난트 포르쉐, 즉 할아버지 포르쉐는 19세기 말 독일 최고의 엔지니어링 천재였다. 1930년대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국민 누구나 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민심을 샀는데, 그걸 실현해낸 게 포르쉐 박사였다. 포르쉐 박사에게 아빠, 엄마와 아이 둘이 탈 수 있는 국민차를 만들도록 하고 독일 전역에 아우토반을 건설했다. 포르쉐 박사가 만든 차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딱정벌레 모양의 ‘폭스바겐 비틀’이었다. 비틀은 군용으로 개조되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전 세계의 산과 강을 누볐다(수륙양용 버전도 있었다). 독일 최강의 전차로 연합군을 벌벌 떨게 만든 티거 전차의 시제품도 포르쉐 박사가 개발했으며, V1 로켓도 그의 힘을 빌렸다. 끔찍한 것만 만든 것은 아니었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로 꼽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SSK(세계 두 번째로 비싸게 낙찰된 차로 기록되어 있다), 1936년 시속 415km를 기록한 아우토우니온(현재의 아우디) 레이싱카도 그가 만들었다. 농작물 생산량 증대를 위한 트랙터도 만들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시 기술력이 필요한 모든 곳에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숨결이 필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포르쉐 박사가 전범 재판을 받게 되자 아들 페르디난트 포르쉐(아버지와 이름이 같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페리 포르쉐’로 부른다)는 재판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어 팔기로 결정한다. 아버지가 만든 폭스바겐 비틀을 베이스로 만든 첫 번째 ‘포르쉐 브랜드’가 356이었다. 이 차는 세계 전역의 레이스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 미국을 비롯한 민간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내놓은 다양한 모델은 제임스 딘과 스티브 맥퀸을 비롯한 시대의 아이콘에게 사랑받으며 금세 가장 유명한 자동차가 됐다.
손자 페르디난트 포르쉐(할아버지, 아버지와 구분하기 위해 ‘부찌’라는 별명으로 부른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헤리티지를 기본으로 좀 더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편하고 날렵한 디자인의 911을 개발한다. 이 차는 고장을 달고 사는 이탤리언 스포츠카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뢰도는 물론 일반도로, 서킷을 가리지 않는 주파 성능을 인정받았고, 지금까지 스포츠카의 아이콘이 되어 전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도 포르쉐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9년 4도어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선보였고, 마칸과 박스터, 카이엔까지 전동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해야 하는 새로운 전기차 시장에서 다른 브랜드들은 헛발질을 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지만, 포르쉐는 기술력이 전기차 시대에도 유일한 차별점임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전기모터의 수치상 성능을 중시하는 시점이었지만, ‘포르쉐 오너들은 수치보다는 포르쉐의 기준을 믿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포르쉐는 엔진 시절에도 최대출력은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가장 빨랐다). 오히려 정숙성과 승차감에 초점을 맞췄다. 엔진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정숙성을 얻었고, 그리고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승차감은 기존의 대형 세단을 능가하는 영역에 도달했다. 다른 전기차들이 마치 미끄러지는 듯한 낯선 승차감이라면, 포르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이면서도 지금까지의 기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신형 타이칸은 신형 파나메라에서 액티브 라이드 서스펜션까지 장착하면서 한 단계 위의 승차감을 노린다. S클래스나 레인지로버 등 이 분야 최고봉들도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 승차감을 손에 쥐었다. 기존 타이칸 오너들은 이미 저세상 승차감인데 여기서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는지 의아하겠지만, 포르쉐는 누군가 뒤따라오는 걸 지극히 싫어한다. 이전 모델도 아직 따라잡지 못했는데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모습을 본 다른 브랜드 엔지니어들은 좀 허탈한 심정일 게다.
완충 시 주행거리도 600km대로 늘어나 이제는 내연기관차보다 멀리 달릴 수 있다. 충전 속도는 포르쉐가 현재 생산된 전기차 중 가장 빠른데, 총주행거리까지 늘어나면서 눈이 높은 국내 소비자도 만족시킬 수 있게 됐다.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은 귀신과도 같다. 무서울 때도 있지만, 사실 무섭지 않은 게 정상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위험과 발생률이 낮다. 교통사고가 무섭다고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추락이 무서워 비행기를 피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전기차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검증을 통해 안전도를 높이고 있다. 화재가 겁난다면 통계적으로 볼 때 내연기관보다 전기차를 타는 게 더 안전하다.
누구나 타이칸을 타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디자인이 눈을 끈다면 직접 경험해볼 만하다. 이제 더 이상 포르쉐는 운전자를 가리지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풍요로운 승차감을 느끼는 차로 활용해도 충분하다. 원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신동헌 유튜버이자 칼럼니스트. 남성지 <에스콰이어> 에디터를 거쳐 <레옹> 편집장으로 일했다. 자동차, 음악, 패션, 디지털을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이슈를 특유의 관점과 시선으로 글과 영상 매체를 통해 날카롭게 크리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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