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가 드리운 그림자는 한없이 넓고 짙어 무엇이든 숨어들 수 있다. 슬픔도 환희도, 그리움도 사랑도, 당신의 그늘마저도.
2024.09.26
새틴 드레스 Lehho, 실버 이어링 Cos, 테일러드 재킷 에디터 소장품.
지난 7월 정규 앨범 <너머(Beyond)>의 파트 1을 발매했고, 10월 파트 2 ‘White Shade’ 공개를 앞두고 있죠. 두 파트 사이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좋아하는 일이지만 지옥입니다(웃음).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연재하듯 짧은 텀을 두고 발표하는 방식은 표현하는 데 궁극적으로 도움이 돼요. 파트 1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파트 2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파트 1 활동과 파트 2 작업이 맞물리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3집 때도 이런 방식으로 앨범을 작업하다 ‘도망가자’를 썼어요. ‘더 이상 못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궁지에 몰렸을 때 나온 곡이 ‘도망가자’예요.
힘든 과정을 겪었음에도 다시 이러한 방식을 택했군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장르도 다양하게 다루다 보니 선택이 항상 어려워요. 그런데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하면 선택에 확신을 얻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파트 2의 ‘Used Star’는 파트 1 활동 도중에 넣기로 결정한 곡이에요. 그 결과 앨범의 색깔이 더 선명해졌어요. 아끼던 곡이라 손에서 놓지 못했는데 파트 1 활동을 하면서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앞선 활동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너머>를 작업하며 훌륭한 연출이 무엇인지 이해했다고 언급했어요. 어떻게 생각을 정리했는지 궁금해요.
쉽게 말하자면 싱어송라이터로서 ‘레벨 업’했다는 의미예요. ‘이런 게 연출이구나’ 어렴풋이 손에 잡히는 듯해요. 이전에는 뚜렷한 선이 보이지 않는 스케치를 했다면, 지금은 일필휘지로 그리는 분들처럼 진화한 느낌이 들어요. 결정을 번복할 때조차 더 확실해졌어요. 이제껏 제 청사진은 에너지가 크지만 꿈처럼 실체가 흐렸다면, 지금 그리는 건 더 명확하고 빠르게 표현할 수 있어요.

퍼넬넥 셔츠 Cos.
어느 순간 돌아보니 ‘한 단계 넘어섰구나’ 깨닫는 진화의 단계 말이죠.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까요?
계속 시도했다는 것? 정규 앨범은 오랜만이지만, 싱글 앨범을 내지 않은 해가 없어요. 부딪치고 반성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죠. 특히 작년에 싱글 앨범 <싸움>과 <포옹>을 발매하며 집중한 부분이 이미지의 연결이었어요. 물론 늘 앨범 커버나 스타일링 등의 이미지를 중시했지만, 작년에는 더 세세한 부분까지 완성도를 높이려 노력했어요. 완성도 면에서 성과를 얻었고 정규 앨범에도 반영되었죠. 작사 작업도 예전에는 내가 느낀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출발점과 조금 다르더라도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기로 했어요.
청사진이 뚜렷해진 느낌은 어떤가요?
‘이게 만드는 맛이구나’ 싶어요. 실체가 불분명할 때도 물론 표현하는 재미가 있었죠. 하지만 나이가 들고, 업계가 돌아가는 속도도 빨라져서 버거웠는데 한 단계 올라서니 덜 무거워요.
‘포옹’과 같은 사랑 노래에서는 한없이 로맨틱하고, ‘별사탕’에서는 여유롭고도 자신만만하고, ‘what the hell’에서는 시니컬하면서도 달콤한 보컬이 두드러져요. 결이 다른 노래를 녹음하기에 앞서 어떤 준비를 하나요?
배우들은 촬영 전 캐릭터의 역사를 준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갈수록 그런 준비를 해요. 이전에는 ‘찬란한 슬픔’, ‘끈적한 슬픔’ 정도로 키워드를 정했다면, 이제는 화자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머릿속에 그려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가 그 사람이라 상상하면서 노래한 적도 있고요. ‘별사탕’은 정말 힘든 곡이었어요. 공연 때 펑키한 곡을 많이 불렀으니 막연히 잘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제대로 녹음하려니 너무 부족한 거예요. 우주적이고 외계인 같으면서 디바이기도 한 느낌이 나오지 않아 온갖 난리를 쳤어요. 마이클 잭슨이나 프레디 머큐리 흉내를 내보고, 마이크를 위로 들거나 점프하며 부르기도 했어요. 다양한 미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할 정도로요.

화이트 플레어스커트를 장식한 블랙 저지 드레스 Lehho, 슬링백 Toteme.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유가족이 출연한 ‘기도’ 뮤직비디오가 선공개되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세월호 참사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곡은 어디서 출발했나요?
예전에 써둔 곡이에요. 사실 이 노래는 돌아가신 아빠의 영향이 컸어요. 종교가 없어도 삶의 무게가 커서 종종 신을 찾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무래도 죽음과 아버지를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삶이 버거울 때 자연스럽게 아빠나 신을 떠올리니 내려다보는 존재가 있다면 나를 안쓰럽게 여길까, 하는 생각을 담았어요.
조현철 감독과의 협업은 어떻게 성사되었나요?
뮤직비디오는 음악의 호흡에 맞추는 ‘뮤직’ 비디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노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으면 좋겠다고 회사에 의견을 전했어요. 마침 조현철 감독님이 예전에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인연이 있던 차에 요청을 드렸고 바로 수락하셨어요. 뮤직비디오 내용은 감독님 제안이에요. 이 노래를 담을 배우를 떠올려봤지만 누구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공감했어요. 특히 뮤직비디오의 레퍼런스를 받았을 때 계속 걷는다는 아이디어가 크게 와닿았어요.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노래를 만든 것이라 인물들이 걸어가는 장면이 참 좋았어요.
‘저 구름 너머 하늘 어딘가 있을 그대를 봐요’라는 가사가 앨범 제목 <너머>와 연결되며 시공간을 확장하는 듯해요.
‘기도’의 ‘너머’는 삶 너머이기도 해요. 다른 곡들이 현재 시각의 이야기라면, ‘기도’는 가장 먼 곳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트랙에 배치했어요.

독특한 구조의 시폰 드레스 Ferragamo, 골드 네크리스 Hermès.
작년에는 아이브의 ‘Either Way’ 작사에 참여했죠. 시니컬한 화자의 이야기를 아이브 목소리로 들으니 짜릿하더라고요.
열심히 작업한 곡이에요. 기획사의 가이드라인이 아주 상세해서 좋았어요.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면 막연히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자유만으로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없어요. 결국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선택해야 하는데, 남이 정해주니 시야가 더 넓어지더라고요.
최근 함께 작업하고 싶은 팀이 있다면요?
사심이지만 뉴진스와 작업해보고 싶어요. 코러스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아요(웃음).
전체 앨범 발매 후 단독 콘서트가 기다리고 있죠. 약간의 스포일러를 한다면?
<너머>의 연장선인 공연인데, 이 앨범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시간의 ‘너머’, 공간의 ‘너머’예요.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를테면 공간감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위치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아이디어가 있어요. 얼마나 구현 가능한지 확인 중이에요. 시작하자마자 바로 끝낼 수도 있겠죠. “여러분은 방금 <인터스텔라> 속 블랙홀을 통과했습니다. 사실 3시간이 지났어요(웃음)!”
5년 만에 발매한 정규 앨범이에요. 어떤 점에 집중해서 감상하면 좋을까요?
나름의 방식으로 곱씹으며 오래 들으면 좋겠어요. 1, 2년에 한 번씩 떠올라서 한참 듣고, 잠시 잊었다가 종종 되새기는 것처럼 곁에 오래 머무는 앨범으로 남았으면 해요. 그리고 이 앨범을 통해 여러분의 ‘너머’를 느낀다면 행복하겠어요. 사랑 너머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삶 너머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혹은 지난 너머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STYLIST 윤대연 HAIR 구예영(고원) MAKEUP 안희정(고원) ASSISTANT 이혜빈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DITOR : 박지형PHOTO :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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