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여전히 강력하고 이토록 유연한, 수퍼플렉스

덴마크 시골의 새 고속도로를 관계자인 양 누비던 세 명의 미술학도는 이제 종말 이후의 미래를 상상한다. 한결같은 호기심과 위트로 무장한 채 인간과 수중 생물이 공존하는 세계를 꿈꾸는 수퍼플렉스(Superflex)를 만났다.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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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라스무스 닐슨,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야콥 펭거.

 

 

1993년 결성된 덴마크 출신의 3인조 컬렉티브 그룹 수퍼플렉스. 예술적 방향을 결정한 스웨덴 여행을 마친 뒤 여객선 ‘수퍼플렉스 브라보’호를 타고 덴마크로 돌아온 20대 청년들은 이후 30년 넘게 현대사회 시스템을 향해 뜨거운 화두를 던져왔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해온 것은 물론 최근 10년 동안은 해양 생태계와 기후 위기에 관한 작업에 집중해왔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피시 & 칩스(Fish & Chips)> 개막에 맞춰 수퍼플렉스의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ør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슨(Rasmus Rosengren Nielsen)이 한국을 찾았다.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의 한국 전시다.
이번 전시작의 테마는 크게 환경과 경제로 구분된다. 먼저 영어 관용구를 담은 네온 작품과 신용카드 마이크로칩에서 착안한 회화, 투자은행을 본뜬 조각 작품이 K1 전시실을 채운다. 한편 K3 전시실은 바닷속 세계를 무대로 한다. 심해처럼 어두운 푸른빛 공간에는 해양 생물을 위한 조각 작품과 회화, 그리고 바다 생물을 묘사한 인터랙티브 영상 작품이 전시된다. 
사진 촬영을 위해 K3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라스무스 닐슨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거닐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촬영팀은 결국 모든 멤버에게 물속에서처럼 신발을 벗을 것을 제안했다. 기성세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유연한 그들의 세계에 맨발로 진입하고 싶어졌다.

 

 

수퍼플렉스, ‘Chips 7’, 2024, Acrylic and silicon on canvas, 122×87cm, Courtesy of the artists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피시 & 칩스>라는 전시 제목처럼 K1, K3를 각각 경제와 환경에 관한 작품들로 채웠다. 이처럼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야콥 시각적으로 꽤 다른 작품들이므로 전시장을 둘로 나누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공간 자체가 곧 디자인 경험을 제공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흰색 회화 ‘칩스(Chips)’ 시리즈와 조각 작품은 부드러운 회색 벽의 전시실에 모았다. 반면 K3는 수면 아래 풍경을 닮았다. 관객이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 안으로 진입하기를 원했다. 


신작인 ‘칩스(Chips)’ 시리즈는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 
야콥 수퍼플렉스는 오랜 시간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를 다뤘다. 예컨대 몇 년 전 선보인 ‘프리숍(Free Shop)’ 작업이 있다. 일반적인 편의점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원하는 물건을 담아 계산대에 입력하면 가격이 0으로 표시된다. 즉 모든 물건이 무료다. 이 작업은 우리가 속한 경제 시스템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칩스’ 시리즈는 경제 체제의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칩은 신용카드에 내장된 금속 칩, 즉 인간을 위한 인터페이스다. 우리는 마이크로칩의 주재료인 규소로 캔버스를 칠해 검정으로 채운 뒤 검은색이 가려질 때까지 다시 흰색 층을 덮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같다. 우리가 잠을 자고 쇼핑하고 무언가를 하는 동안 언제나 자본주의 체제는 곁에서 작동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을 응시할 때만 그것이 존재하는 셈이다. 눈을 감았다 먼 곳을 응시하면 잔상이 남지 않나. 작품에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다. 또한 전시장에 역동성과 시적인 공간을 부여하기 위해 작품 7점의 배치를 통해 리듬을 만들었다. 


‘투자은행 화분(Investment Bank Flowerpots)’에 한국에서 자라는 협죽도를 심었다. 지리적 다양성을 반영하고자 한 것인지?
야콥 식물을 전 세계로 배송하는 건 슬픈 일이다. 그렇기에 전시 장소에 따라 로컬 식물을 찾는다. 협죽도는 향정신성 식물로, 일정 용량을 섭취하면 환각을 유발한다. 환각은 은행과도 연관된다. 화분은 세계 10대 투자은행인 뉴욕의 시티그룹을 본뜬 것인데,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희열을 주며, 취하는 느낌을 일으킨다. 무언가를 사서 더 비싸게 팔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수퍼플렉스, ‘As Close As We Get’, 2024, Lioz coral, gray basalt, pink marble, and steel plate, 150×60×20cm. Courtesy of the artists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수중 세계를 배경으로 한 K3 전시실은 현재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 ‘Beyond the End of the World’처럼 종말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기후 위기를 서늘하게 묘사한 2009년 작 ‘Flooded McDonald’s’를 지나 미래를 상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동안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나?
라스무스 ‘Flooded McDonald’s’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관점일 수 있다. 15년 전에 제작한 그 영상은 기후 변화로 수면이 상승하면 벌어질 일을 담았다. 수면이 높아지면서 지면이 물에 잠길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잠재적인 수중 세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이 미래의 클라이언트라고 상상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어류에 기반한 미학을 개발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Flooded McDonald’s’에서 묘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평평한 나라에서 왔다. 가장 높은 언덕이 해발 170m에 불과한 덴마크는 인류가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가장 먼저 물에 잠길 나라 중 하나다. 수퍼플렉스는 지대가 높은 한국으로 이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웃음).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배송할 때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3~4주 일찍 운송한다고 밝혔다.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야콥
약 5년 전 스튜디오에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전문가를 고용했다. 당시에 그것은 우리의 상황을 탐구하는 방법이자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 위한 시도였다. 항상 가능하진 않지만, 우리는 비행기 대신 다른 방식으로 운송한다. 샌디에이고의 현재 전시가 그 사례다. 그리고 너무 많은 물건을 운송하지 않기 위해 작품의 몰드만 옮기는 방법도 개발했다. 예컨대 하나의 틀로 작품 200개도 찍어낼 수 있다. 우리가 구축한 또 다른 방식이 있는데, 곧 일본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퍼 리프(Super Reef)’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설치한 작품들이 실제로 해양 생태계에 변화를 불러왔나?
라스무스
모래와 진흙이 주를 이루는 덴마크 땅은 갯벌이나 모랫둑과 비슷하다.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인간은 바닷속의 돌을 가져왔지만 사실 그 돌은 어류의 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원래대로 어류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했다. 그들의 집으로 인간의 집을 지었으니 이제 우리가 그들의 집을 지을 차례다. ‘수퍼 리프’의 첫 번째 작품은 덴마크의 왕(2022년 당시 왕세자)과 함께 바다에 내려놓았다. 프로토타입을 설치한 이후 그곳에 ‘행복한 게’가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첫 고객인 셈이다.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 다른 이들이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기를 바란다. 
브외른스테르네 수퍼 리프 조각 작품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구멍이 많아 해양 생물이 숨을 수 있다. 그것을 관찰하며 해양 생물의 습성을 상상해 보라. 사람들이 상상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세 멤버가 30년 넘게 우정과 협업을 지속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야콥
우리의 협업은 개인보다 컬렉티브로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옛날 방식으로 뭉친 아티스트지만, 그룹으로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다른 이유는 세 사람이 수퍼플렉스를 네 번째 멤버로 보기 때문이다. 이때 수퍼플렉스는 솔로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수퍼플렉스를 탓할 수도 있고 말이다(웃음).
브외른스테르네 일정 수준의 호기심,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학자, 그래픽 디자이너, 영화감독, 농부 등과 협업했고, 그들은 수퍼플렉스의 일원이 되어 동등하게 대우받았다. 모르는 분야에 지속적으로 호기심을 품는 것은 시민이자 예술가가 되는 데 중요한 태도다. 
라스무스 한국에 ‘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우리에게는 ‘수퍼 정’이 있다(웃음).


각자 분야가 다를 텐데 분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야콥
역할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변화를 시도한다. 현재 코펜하겐 스튜디오에는 약 15명의 직원이 있는데,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다. 누군가를 그래픽 디자이너로, 포토그래퍼로 고정해두는 것보다 더 유동적이며, 작업에 중요한 역동이 발생한다.


개인적인 관심사나 취미도 궁금하다.
야콥
나는 와인 메이커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의 부작용 중 하나는 덴마크에서도 포도를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콤 씁쓸한 상황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수퍼플렉스, ‘Vertical Migration’, 2021, LED screen, Mac mini, sensor, Raspberry Pi 4, and speakers, 300×150×150cm. Courtesy of the artists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수퍼플렉스는 늘 신기술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 관심을 둔 기술은 무엇인가?

브외른스테르네 아주 많다. 그중 하나는 큰 바위를 낭비 없이 자르는 기술이다. 대리석으로 테이블을 만든다면 여러 번 자른 뒤 대개 자투리 부분을 버린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버리지 않을지 연구했고, 와이어 커팅 기술을 찾아냈다.  
라스무스 360도 카메라와 AI도 언급하고 싶다. 360도로 세상을 보는 어류의 시점을 이해하기 위해 영상으로 촬영하고, 어류가 생각하는 방식을 상상하기 위해 AI에게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브외른스테르네 어떤 종류의 기술이든 관심을 두어야 하지만, 기술을 신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AI를 감시하고 조종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가 하면, 창의적으로 대화하는 일에 활용할 수도 있다.


지난 30년 동안 기후 위기는 점차 심각해지고, 정치, 경제적 상황 또한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야콥
누군가는 우리가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세상이 나빠지거나 좋아졌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호기심에 달려 있다. 인생의 장애물에 늘 궁금증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브외른스테르네 기후 위기와 같은 과제를 다루는 흥미로운 방법이 많다. 이를테면 고대인은 섬의 주변 해역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 조각으로 한계 지점을 표시했다. 이처럼 고대 방식을 차용하거나 AI 로봇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고, 바다에 음파를 보내 엔진을 차단할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다.
라스무스 야콥이 말한 것처럼 흥미로운 시대 아닌가? 나는 인류 역사의 다른 시기에 살고 싶지 않다. 현시대는 대단히 펑키한 시대다. 나는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일주일 전에 태어났고, 냉전 시대를 겪었는데, 어느 순간 유럽에서 냉전이 사라졌다. 그러다 인터넷이 등장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나. 흥미로운 동시에 어두워 보이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악화된다고 했지만 그저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1980년대 산성비가 재앙이던 시기에 자랐다. 하지만 분사 장치가 개발되었고 더 이상 산성비 문제는 없다. 물론 현재에 다른 문제가 존재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종말을 상상하곤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력과 같은 인간의 독창성에 대한 희망이 있다. 그것이 인류의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유머.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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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지형PHOTO : 임한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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